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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를 보는 단재의 생각 고리적 이야기

10월 3일을 단군 탄일이라 하여 이날에 제례를 올리는 것은 오늘날까지 민간에 유행하는 것이다. 10월 3일을 혹은 ‘태백의 날’이라 하고, ‘향산의 날’이라 하는 것은 단군이 태백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여서 일컫는 것이고, 향산은 ≪여지승람≫에 “태백산은 곧 묘향산이다.”고 한데서 와전된 것이다. ≪문헌비고≫에도 “마한이나 예나 고구리나 가락이나 다 10월에 대제를 지낸다”고 하였고, “고구리는 10월에 제사를 ‘동맹’이라 부른다”고 하였으니, 10월의 단군 탄일에 제례를 행하였음은 곧 역사상 고사이다.
그러나 ≪고리도경高麗圖經≫에 이르기를, 고려에서는 “전조, 곧 고구리의 10월 ‘동맹’의 대제를 ‘팔관재’라고 하여 10월 보름에 이를 행한다”고 하였고, ≪고리사高麗史≫에서는 이르기를, “매년 11월에 ‘팔관재’를 행한다”고 하였다.
무릇 단군 탄일의 동맹회에서 팔관재를 행한 것은 대개 삼국 말엽에 단교壇敎와 불교 두 교를 조화시키면서 언제나 양 교의 의식을 혼합한 것이 많으므로, 불교의 팔관 재계의 의식을 단교에서도 썼다는 의심한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고리도경≫에서는 동맹을 10월 보름이라고 하여 그 날짜가 3일과 틀리고, ≪고리사≫에서는 11월이라고 하여 달이 틀린다. 대제의 달과 날을 후세 사람들이 마음대로 변경하지는 못하였을 것이고, 11월 팔관회는 열왕조에서 거의 해마다 행하였음이 ≪고리사≫의 기록에 나오므로, 문자를 잘못 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차이가 나는 것인가?
이르기를, 고리에서 2개의 팔관회가 있었는바, 그 (일)은 서경 팔관회로서, ≪고리사≫에 이르기를, “서경에 팔관회를 특별히 설치하고 원조의 어의를 두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고구리 동맹회의 달과 날을 따라서 단군을 제사하고 동명성왕과 원조(元祖 : 주몽)로써 배향한 것이다.
그 (이)는 중경 팔관회로서, ≪고리사≫에 이르기를, “태조 원년 11월에 담당 관리가 청하여 전주 때부터 전해오는 제도를 좇아 팔관회를 행하였다”고 하였는데, 전주란 곧 궁예를 가리킨 것이다.
태조가 남긴 유훈에 이르기를, “팔관재로 하늘을 섬기고, 연등제로 부처를 섬겨라”고 하였다. 대개 고대에는 하늘과 단군을 똑같이 높였기 때문에,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서는 고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 하고 또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권람의 ≪응제시주≫에서는 해모수를 천왕랑이라 하고 또 단군의 아들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중경팔관은 이미 하늘에 제사 드리는 의례이므로 이는 또한 단군에게 올리는 제례이기도 한 것이다.
이로부터, 서경 팔관회는 고구리의 단군 탄일재이고, 중경 팔관회는 곧 신라에서 받들던 단군 탄일재였음을 알 수 있다.
……≪고리사≫의 팔관회 의식이나 ≪금사≫의 배천의례는 그 형식이 거의 같은데, 구장(毬場 : 격구장) 가운데 높은 계단을 쌓아 놓고(≪금사≫에서는 ‘축대’라 하였음 : 단재가 쓴 딸림글)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다 함께 모여서 제례를 행하는 것이다.
……≪고리사≫ 팔관회 끝에 “신라의 고사대로 백기百技와 가무를 행한다”고 하였으나 백기의 종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사서를 참조하면 그 몇 가지는 알아낼 수 있다.
(일)은 ‘한맹寒盟’이다. 한맹은 그 이름과 같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좌우 양편으로 갈라서서 물과 돌로 서로 쳐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수서≫에는 고구리가 연초에 이런 기예를 전습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고구리가 10월로 세수(歲首 : 정월)를 삼았던 때이므로 연초라고 한 것이다.
(이)는 ‘수박手搏’이다. 이는 곧 무기를 갖지 않고 맨손과 맨몸으로 서로 후려치는 것이니, 후에 일본에 전해져서 ‘유술(柔術 : 유도)’이 되었고, 중국에 전해져서 ‘턱견’이 되었다. 조선에서는 수천 년 동안 이를 매우 숭상하여, 다만 10월 3일의 대제 후뿐만 아니라 어느 명절에든지 매번 조정의 문무 신하들을 양편으로 갈라서 수박을 행하고 임금이 구경을 하였는데, 고리 의종 때에는 이로 말미암아 문무당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으므로 폐지하였다.
(삼)은 ‘검술’이다. 부여의 무사나 고구리의 선인이나 신라의 화랑이 가장 중시하였던 것이다.
(사)는 ‘궁시弓矢’이다. 태고에 중국인이 우리를 ‘夷’라고 불렀던 것은 동방의 큰 활(大弓)을 멘 사람이라고 하여 동이라고 하였던 것으로, 한자에서 ‘夷’는 ‘大’와 ‘弓’을 합한 자라고 한다. 동이족은 활쏘기에 있어 그 재주가 뛰어나게 정확하고 세련되었다고 한다.
(오)는 ‘격구擊毬’이다. 대회 때 큰 구장을 설치하여 남녀노소가 국풍을 이룰 만큼 크게 즐겼는데, 현대의 동서양 사람들의 축구가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육)은 ‘금환金丸’이다. 금환(둥근 쇠뭉치)으로 사람을 치는 것이다. 최고운의 시 ‘금환’은 곧 대회 날에 금환 놀이를 하는 것을 두고 지은 시이다.
(칠)은 ‘주마(走馬 : 말 달리기)’이다.
(팔)은 ‘사냥 시합(會獵)’이다.
팔관회의 의식도 역대에 걸쳐 어느 정도 바뀌었을 것이며, 기예와 놀이도 가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단군 왕조 때 처음 시작된 것이다.
단재 신채호 지음ㆍ박기봉 옮김 2007 ≪조선상고문화사≫, 비봉출판사, 78∼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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