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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허생을 통해 북벌론의 허구를 비판하다 Corean Clio

17세기 조선 정계의 표면에 나타난 북벌론北伐論에 대해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북벌론은 소중화사상에 입각하여 문화수준이 낮은 청나라의 오랑캐에게 당한 병자호란삼전도의 굴욕등의 수치를 씻고,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 명을 대신하여 복수하자는 주장​이다"


이어 이 주장의 발단은 인조조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에 있으며, 효종의 북벌 계획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로 노론에서 주창, 강조하였다가 청이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1680년(숙종 6) 남인이 실각함에 따라 사실상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다고 한다


지난 18일 서계 종택 가까이에 있는 카페 끌림에서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하시는 박경하 교수님을 모시고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향촌사회>라는 주제로 신색경프로젝트를 위한 네 번째 세미나를 가졌다


박경하 교수께서 조선 후기 국가 재조론再造論과 ​북벌론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허생전>의 내용을 인용하셨다


이에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에 실린 <허생전>을 살펴본다

 

"허생은 묵적골에 살고 있었다줄곧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터 위에 해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고사립문이 그 나무를 향하여 열려 있으며초옥 두어 칸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한 채 서 있었다그러나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였고그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변씨는 애초부터 정승政丞 이완李浣과 친했다이공李公은 때마침 어영대장御營大將에 취임되었다... 그는 일찍이 변씨와 이야기하다가,

지금 저 위항委巷과 여염閭閻 사이에 혹시 기이한 재주가 있어서 커다란 일을 같이 할 만한 자가 있더냐.’

했다변씨는 그제야 허생을 소개했다이공은 깜짝 놀라며,

기특하네정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그의 이름은 무어라 하던고.’

한다변씨는

소인이 그와 상종한 지 삼년이나 되었습니다만아직껏 그 이름은 몰랐소이다.’

했다이공은 또,

그 이가 곧 이인異人이야자네와 함께 그를 찾아가 보세.’

하고는밤들어 이공은 수행한 이들을 다 물리치고 변씨만을 데리고 걸어서 허생의 집을 찾았다변씨는 이공을 말려 그 문밖에 세워 놓고 혼자서 먼저 들어가 허생을 보고 이공이 찾아온 사연을 갖추어 말했다허생은 들은 체 만 체 그저 하는 말이,

자네가 차고 온 술병이나 빨리 풀게.’

한다그리하여 서로 더불어 즐겁게 마셨다변씨는 이공이 오랫동안 바깥에 있음을 딱하게 여겨서 자주 말을 하였으나 허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어느덧 밤은 이미 깊었다허생은 그제야,

손님 좀 불러 볼까.’

한다이공이 들어왔다허생은 굳이 앉아서 일어서지 않았다이공은 몸둘 곳이 없을 만큼 불안했다황급히 국가에서 어진 이를 구하는 뜻을 진술했다...

이공은 굳이 물었다허생은,

의 장병將兵은 자기네들이 일찍이 조선에 묵은 은의恩義가 있다 하여 그의 자손들이 많이 동으로 오지 않았나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떠돌이 생활에 고독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니네 능히 조정에 말씀드려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골고루 시집보내고김류金瑬와 장유張維 따위들의 집을 징발해서 살림살이를 차려 줄 수 있겠느냐.’

한다이공은 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그것도 어렵소이다.’

했다허생은,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못한다 하니 그러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가장 쉬운 일 하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한다이공은,

듣고자 원하옵니다.’

했다허생은,

대체로 대의大義를 온 천하에 외치고자 한다면첫째 천하의 호걸을 먼저 사귀어 맺어야 할 것이요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間諜을 쓰지 않고서는 이룩하지 못하는 법이야이제 만주(滿洲)가 갑자기 천하를 맡아서 제 아직 중국 사람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판 아닌가그럴 즈음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솔선率先하여 항복하였은즉 저편에서는 가장 우리를 믿어 줄 만한 사정이 아닌가이제 곧 그들에게 청하기를우리 자제들을 귀국에 보내어 학문도 배우려니와 벼슬도 하여 옛날 당의 고사故事를 본받고나아가 장사치들의 출입까지도 금하지 말아 달라 하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친절을 달콤하게 여겨서 환영할 테니 그제야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세민細民들은 멀리 강남江南에 장사로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虛實을 엿보며그들의 호걸을 체결하고선 그제야 천하의 일을 꾀함직 하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지 않겠어그러고는 임금을 세우되 주씨朱氏를 물색物色해도 나서지 않는다면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려 사람을 하늘에 추천한다면우리나라는 잘되면 대국大國의 스승 노릇을 할 것이요그렇지 못할지라도 백구伯舅의 나라는 무난할 게 아냐.’

한다이공은 무연憮然,

요즘 사대부들은 모두들 삼가 예법을 지키는 판이어서 누가 과감하게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겠습니까.’

했다허생은 목소리를 높여,

이놈소위 사대부란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의 땅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고 뽐내니 어찌 앙큼하지 않느냐바지나 저고리를 온통 희게만 하니 이는 실로 상인喪人의 차림이요머리털을 한 데 묶어서 송곳같이 찌는 것은 곧 남만南蠻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니무엇이 예법이니 아니니 하고 뽐낼 게 있으랴옛날 번오기樊於期는 사사로운 원망을 갚기 위하여 머리 잘리기를 아끼지 않았고무령왕武靈王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고 호복胡服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거늘이제 너희들은 대명大明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 오히려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끼며또 앞으로 장차 말달리기칼치기창찌르기활 튀기기돌팔매 던지기 등에 종사하여야 함에도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고서 제 딴은 이게 예법이라 한단 말이냐내가 평생 처음으로 세 가지의 꾀를 가르쳤으되너는 그 중 한 가지도 하지 못하면서 네 딴에 신임받는 신하라 하니소위 신임 받는 신하가 겨우 이렇단 말이냐이런 놈은 베어 버려야 하겠군.’

하고는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이공은 깜짝 놀라 일어나 뒷들창을 뛰어나와 달음박질쳐서 집으로 돌아왔다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으나 허생은 벌써 집을 비우고 어디론지 떠나버렸다.”


아마도 박경하 교수님께서 <허생전>에 보이는 북벌론/국가재조론 비판은 끄트머리에 나타난, 허생이 소리 높여 외친 번오기와 무령왕의 사례라 여겨진다 

연암은 어영대장 이완이 놀라 달아날 정도라고 허생의 호기를 표현하였다

21세기에 이른 한 가을, 허생의 호기를 닮은 이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 신색경프로젝트 네 번째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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