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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산 입구 대진대학교 정문 소감 : 김연성 의병부대 전투지 Modern Corean Clio

독립기념관에서 펴내어 인터넷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인천경기북부 독립운동사적지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http://sajeok.i815.or.kr/webbook/lists_contents)에 따르면 대진대학교 교정이 있는 왕방산이 1907년 12월 의병장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40여 명이 기습작전을 벌인 곳이라 한다

 

△ 왕방산 입구


△ 대진대학교 정문


1907년 9월에 이르러 포천 일대에서도 군대 해산 이후의 의분에 찬 해산 군인과 지역 의병이 연대함에 따라 의병의 역량이 배가되었다

김연성은 성균관에서 수학한 후 박사가 된 뒤충청남도 관철 도주사 및 양주군 지방위원을 역임했다. 1907년 가을 양주출신 황순일黃順一의 권유로 의병 소모장이 된 이후 양주와 포천을 무대삼아 의병 전투를 전개하였다

 

△ 제1회 의병장 김연성 열사 추모제 현장 걸개와 추모비


올해 동두천 일대에 모여 살고 있는 강릉 김씨 후손들(강릉김씨 판윤공파 동두천종중)이 동두천 안흥동 선영에서 제1회 의병장 김연성 열사 추모제를 열기도 하였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찾은 대진대학교 정문에서 왕방산을 주름잡고 일본군들을 전율케 했던 김연성 의병부대의 모습을 현현하게나마 그려보며 증산의 깊고도 넓은 대순의 뜻을 알지는 못하지만, ‘개벽과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진취적 신앙의식을 가짐으로써 운회運回와 주유周遊를 통해 혼란과 비겁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광제廣濟하여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고자 천지를 개벽하고 새로운 배포配布를 꾸미는 진법으로서의 대순大巡에 더하여 대한제국시기 이름 없이 스러져 갔지만 밤하늘 미리내처럼 아직도 우리들 눈에 반짝이는 의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항쟁의 역사를 펼쳐 더불어 놀면(配布周遊​) 어떨까 

△ 1930년대 왕방산 주변_독립기념관에서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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