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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 단군 전위표를 바라보는 한 시각 Corean Clio

위 그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엮어 도서출판 중심에서 2001년에 펴낸 고조선력사개관≫ 40쪽에 실린 규원사화≫ 마흔 일곱 단군의 전위표다아울러 다음과 같은 지적이 있다.

 

표는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여 있는 규원사화≫ 필사본에 의거하여 작성하였다이 필사본에 43대 물리가 빠졌기 때문에 보충하였다또 제13대 단군 흘도는 흘달로 쓰기도 하였다규원사화≫ 등 비사들의 사료적 가치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적어도 47대 임금의 이름만은 일정한 자료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비사들 가운데서 규원사화와 단기고사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양자 사이에는 구체적인 기사내용에서 공동적인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서로 다르지만 47대 임금의 이름만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두 비사의 기사내용에서 공통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련계없이 씌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47대 임금의 이름이 두 비사에 다같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두 책이 씌여지기 이전에 47대 임금의 이름이 올라있는 그 어떤 오랜 력사기록이 실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이러한 근거 밑에 비사들에 실린 47대 임금의 이름을 일단 참고하기로 한다그러나 47대 임금의 이름을 참고삼아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1500년 이상 존재한 단군조선시기의 임금 수가 47대 뿐이였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단군조선시기에 실재한 왕대수는 47대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다(사회과학출판사 엮음 2001 고조선력사개관≫ 중심, 41).

 

곧 1,500년의 역사를 지녔을 조선의 역사에서 단군이 마흔 일곱밖에 되지 않은 것에 의문을 두고 더 많았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화랑세기를 살피면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 기년紀年 조정調整을 단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김태식은 삼국유사에 실린 진훤(甄萱김태식은 견훤으로 쓰고 있는데 안정복의 지적에 따라 진훤으로 쓴다)의 족보삼국사기≫ 미추왕의 계보를 살피면서 계보의 탈락과 보충(? 생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한편북사에 보이는 진평왕의 왕대수가 30세임과 제왕운기의 백제 임금이 서른 네 명이라는 기록에 주의하면서 고려와 조선(각 500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이해하고 고려는 서른 넷 임금조선은 스물 일곱 임금)의 임금 숫자와 비교하며 의문을 둔다(김태식 2002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37090).

규원사화의 역대 단군 전위표를 만들면서 환단고기의 내용과 간단하게 비교한 적이 있는데(http://coreai84.blog.me/130004092551 http://blog.daum.net/coreai84/7093130), 그때는 위와 같은 생각을 미쳐 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먼저 제주고씨계보와 개성고씨문충공파계보에 보이는 탐라 왕의 계보다단군기원보다 4년이나 빠른 기원전 2337년에 비롯하는 탐라 임금은 모두 마흔 여섯 임금을 두고 있다(http://coreai84.blog.me/130023725154 http://blog.daum.net/coreai84/11351926). 여기에서 즉위년이 나타난 34대 처량왕處良王까지 대략 계산을 하면 3천년이나 된다그렇다면 이 계보 또한 탈락/생략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둘째 가락국의 계보다서기 42년에 개국하여 532년에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490년의 역사를 지닌 가락국의 임금이 겨우 열 분이다탐라와 가락 또한 위 두 사례를 통해 볼 때 제주고씨의 전위계보 또한 탈락/생략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김태식의 추정처럼 모계 혈통으로 즉위한 임금의 탈락/생략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도 있다.




덧글

  • 지나가다 2014/09/10 13:22 # 삭제 답글

    http://orumi.egloos.com/3519105 <- 왜 규원사화가 근대에 창작된 위서인지 초록불님이 친절히 설명해 놓으셨네요.

    단기고사나 규원사화나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일제에 침탈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분들의 정신무장에는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사를 공부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되는 근대에 창작된 현대판 한국판 일본서기들입니다. 오히려 진짜 한국사를 연구하는데 방해만 되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없는 위서들입니다.
  • 고리아이 2014/09/10 13:50 #

    꾸우벅
    데데한 글 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영ㅇㅇㅇ
  • 지나가다2 2014/09/10 13:59 # 삭제 답글

    규원사화가 위서인지 진서인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논문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다룬 논문은 있었지만, 그 쪽에서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주장하려 한다면, 논문을 발표해서 규원사화에 대해서 논하면 됩니다.
    하지만, 네티즌이나, 아마추어 초록불님이 인터넷에서 깨작깨작 쓴 글 이외에는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단정하는 논문은 없습니다.

    그리고 님이 현대판 한국판 일본서기라고 했는데, 일본서기에 온통 전부 다 거짓말만 써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학계에서 인용을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학의 기본이 역사서의 진실과 거짓을 분별, 구별하는 것 입니다.
    역사학자라면 응당 규원사화를 연구해서 그 책에 어떤 진실이 있고, 어떤 거짓이 있는지 밝혀내는게 마땅한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뒤에서 뒷담화만 까고, 앞에서는 정정당당하게 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이제 무슨말인지는 잘 알겠죠? 그래, 그간 안녕들하셨나요?
  • 고리아이 2014/09/10 14:42 #

    님의 귀한 지적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영ㅇㅇㅇ
  • 고리아이 2014/09/27 22:16 # 답글

    그런데, ≪고조선력사개관≫에서는 단군조선을 ‘전조선’이라 부르고 있고, 이른바 ‘기자조선’을 ‘후조선’이라 하면서 전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세력관계의 변화로 하여 그 왕조가 교체되였을 뿐 거의 모든 면에서 전조선을 계승한 나라였다고 주장(102쪽)하는 한편,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내용을 완전히 위작(107쪽)인 바, 중국 봉건사가들의 위작에 불과하며, “기자조선설(기자동래설)”은 허무맹랑한 것이라 주장(109쪽)하면서 후조선은 조선 사람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단군조선의 계승국이며 기자가 생존하던 기원전 12∼11세기보다도 훨씬 앞서 세워진 나라였으며 그러므로 후조선을 일명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부당하며 완전한 날조(110쪽)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금 전조선의 역대 단군의 전위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앞서 지적한 탈락/생략 단군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고 있다.
    곧, 전조선(=단군조선)의 존속 연수를 1500년으로 이해하는 설의 중요 근거의 하나로 전조선 단군 세대를 44세대, 단군 평균 통치년간을 약 34년으로 산출하였다. 그러면서 이 통치년간을 고구려와 중국의 하ㆍ은ㆍ주 전위 세대수와 통치년간 따위와 비교하면서 현실적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보이고 있어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규원사화≫를 비롯한 일련의 단군관계 비사들에서는 전조선 모두 47대 왕이 있고 그중 3대 왕은 아우가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세대수로서는 44대로 된다. 고구려의 경우 왕 세대수는 26인데 존속년간은 945년이므로 1왕 세대당 평균 36년으로 되며 중국의 하 나라로부터 서주까지(기원전 2205∼770년) 1435년 간 48왕 40세대로서 세대당 평균 35.7년이므로 전조선은 이들보다 현저히 짧으며 따라서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사회과학출판사 엮음 2001 ≪고조선력사개관≫ 중심, 104쪽).
  • 닷근 2015/07/07 16:25 # 삭제 답글

    일본, 중국은 없는 역사도 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있는 것들도 거짓이라고

    폄하시키는 이 현실 참담하네요.
  • 닷근 2015/07/07 16:25 # 삭제 답글

    일본, 중국은 없는 역사도 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있는 것들도 거짓이라고

    폄하시키는 이 현실 참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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