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포천’은 과연 물을 품은 도시일까 백두산 이야기

올 이른 봄날 나른함을 쫓으려 억지로 포천아트밸리에서 열리는 “포천 한탄강 자연유산 및 유물 특별전”에 다녀온 적이 있어영

맛깔나게 해설해주시는 앳띤 여성을 따라 구경하다 전시 유물 가운데 토기가 놓여 있고, 그 뒤에 포천 지명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서 잠시 머리가 갸웃거렸어영

“「포천(抱川)」이란 지명은 ‘물을 품고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로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지방제도의 개혁 때 만들어진 지명으로 2013년 ‘포천’ 지명이 탄생한지 6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설명문 옆 연표에서도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포천의 지명은 역사적 왕조 때마다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굳이 ‘포천’을 강조하고 있음에 제 고개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어영

오늘날 포천은 1413년 당시에는 포천현과 영평현으로 각각 독립하였던 곳이지영(아래 ≪광여도≫ 영평현)

△ ≪광여도≫ 영평현

△ ≪신증동국여지승람≫ 포천현 건치연혁_한국고전번역원 누리집에서 얻음


게다가 고려 500년 동안에는 ‘포천’이라 불리지 않고, ‘포주抱州’로 불리고 쓰였지영(위 ≪신증동국여지승람≫ 포천현 건치연혁  푸른빛 줄)

남북국 신라 300년 동안에는 ‘견성堅城’으로 불렸고영(위 ≪신증동국여지승람≫ 포천현 건치연혁  노란빛 줄)

더욱이 고구려 700년(900년이라는 설도 있지영) 동안에는 ‘마홀馬忽’과 ‘명지 命旨’로 불렸답니다영(위 ≪신증동국여지승람≫ 포천현 건치연혁  보랏빛 줄)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홀馬忽’, ‘명지命旨’, ‘견성堅城’, ‘포주抱州’라는 이름말고도 ‘청화淸化’라는 이름도 군명으로 소개하고 있지영

조선 후기 포천 출신 실학자로 이름난 성대중 선생과 그의 아들 성해응 선생은 포천을 ‘청성淸城’으로도 부르셨고, 성대중 선생은 ‘청성淸城’이라는 호를 쓰시기도 하셨지영(≪청성집≫ㆍ<청성효열전>)

아시다시피, 이 땅 이름에 본격적인 갈벌(中國)투 이름이 들어가게 된 때가 남북국 때지영

그런데, 그 때만 하더라도 ‘주州’는 오늘날 광역에 해당하는 지명이었어영(발해 5경 15부 62주, 신라 5소경 9주)

그러다가 남북국 말기 신라 인민들이 다라니 은화隱話로 벌떼처럼 일어나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그 마무리 역사 열매가 바로 고려였지영

이전 신라보다 독립적이었고, 발해 새터민까지 끌어 안음으로써 개성을 뚜렷이 하였기에 이제 ‘주州’라는 이름은 광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려 건국에 자그마한 공을 세운 고을이라면 거의 다 붙게 되었답니다영(제가 아직 ≪고려사≫ 지리지를 다 살피지 않아 모르겠지만, 고릿적 고을 이름에는 거의 ‘주州’자가 따라다니지영)

그러면 1413년 조선 태종은 뜬금없이 창조적(?)으로 지방의 이름을 바꾸었을까영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태종의 폭력적 즉위와 집권 과정에 불만을 품은 지역에 대한 ‘앙갚음’이라고나 할까영(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영)

다시 말해, ‘포천’의 ‘천’은 깊은 뜻이 담긴 이름은 아니라는 것이지영

다만, 우리 땅의 오묘하고도 진솔한 지명에 숨겨진 비밀들을 들을 때(신복룡 2001 ≪한국사새로보기≫ 풀빛, 34~42쪽), 적잖이 머뭇거리기도 하였지만 말이어영

이렇게 볼 때, 국가 공식 명칭인 마홀馬忽/명지命旨→ 견성堅城→ 포주抱州→ 포천抱川으로 옮겨옴을 생각하게 되네영

솔직히 “마홀馬忽/명지命旨→ 견성堅城”의 관련을 설명하기는 힘드네영

“견성堅城→ 포주抱州→ 포천抱川”에서는 ‘견堅’이 굳셈/튼튼함을 뜻하면서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굳세고도 튼튼한 모습이 그려지면서 ‘포抱’가 저절로 떠오르네영

그래서였을까영 ‘포抱’자는 즈믄 해의 역사를 지니면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지영

마침 멀리 포천처럼 조선 태종 때 이름이 바뀐 목천에 계시는 형님께서 병천 순대를 주시면서 넌지시 건네신 말씀이 떠오릅니다영(아래 ≪신증동국여지승람≫ 목천현 건치연혁)

“포천은 ‘포抱’를 뚜렷이 나타내면 좋겠다. 어머니가 사랑스럽게 아이를 안은(抱) 모습으로 포천의 지역문화자원 스토리텔링을 그리면 좋겠다.”고영

뜻 맞는 포천 시민, 또 포천을 아끼시는 분들의 발칙하고도 알흠다운 상상력을 기다려보아영

△ ≪신증동국여지승람≫ 목천현 건치연혁_한국고전번역원 누리집에서 얻음




덧글

  • 솔까역사 2014/07/20 13:42 # 답글

    고려 700년은 아닐 겁니다.
    고려는 313년 낙랑을 병합하였고 475년에는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켰으며 553년에는 신라가 한성을 차지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고리아이 2014/07/20 22:41 #

    잘 간직해 두겠습니다영
    촘촘하고도 따스한 지적 고맙습니다영
  • 솔까역사 2014/07/20 20:59 # 답글

    포천에 대해 잠깐 찾아 보았습니다.
    포천의 출발은 마한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삼한 초기에는 낙랑, 말갈 그리고 백제의 각축지였다가 백제가 성장하며 대체로 백제의 차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 때에는 마수(馬首)라고 불렸는데 이후 고려가 차지하며 마홀(馬忽)로 개칭된 것입니다.
  • 고리아이 2014/07/20 22:51 #

    제가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마홀/명지라는 지명에서 견성으로 옮겨감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상하기가 힘들더군영
    님께서 지적하신대로 백제 지명 '마수(馬首)'와 관련한 사료를 만날 수 있을까영???
    솔까말, 요즘 들어 포천 시내를 둘러보면 신복룡 선생께서 지적하셨듯이 지명의 오묘하고도 진솔함을 느낍니다영
    왜냐하면, 조선 시대까지는 군내면이 포천의 근거지였는데, 이 때는 현재 포천 시내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뒷녘으로 흘러 가는 한내가 군내면 바깥에 자리하고 있어서 '포천'을 "내를/물을 품은" 곳이라기보다는 "내가/물이 품은" 곳으로 새길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영
    그러다가 20세기 이후 한내를 넘어 신읍을 형성하면서 한내를 사이에 두고 신읍과 군내(구읍)이 자리하여 '포천'을 "내를/물을 품은" 곳으로 새겨도 무방할 정도 바뀌었답니다영
    그럼에도 고려의 포주에서 조선의 포천으로 옮겨감은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느낌을 받아 제 선배님의 지적처럼 '포抱'에 중점을 두고 포천 미래의 지역문화자원 스토리텔링을 엮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데데하나마 정리하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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