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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아홉번째 현충일에 월남 이상재 선생 묘소를 찾다 가벼운 발걸음

현충일이라고 하는군요

쉰아홉번째라고 하는군요

오전 묵념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서야 깨달았기에 의정부에서 가까운 양주에 영면해 계시는 순국선열을 찾아 뵐 요량으로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 묘소와 삼균 조소앙 선생 묘소를 떠올렸어요

점심을 의정부에서도 이름난 시청 앞 칼국수집에서 콩국수로 대충 때우고는 먼저 가까운 월남 이상재 선생의 묘를 찾아 뵈었어요

지난 해 가을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북부지부에서 가진 제2회 경기북부 항일독립운동사적지 답사 뒤풀이 때 남주우 광복회 의정부지회장님께서 월남 이상재 선생 묘소에 대한 아쉬운 감회를 들었던 터이기도 하였지요

티맵에는 월남 이상재 묘소는 검색이 되지 않아 금바위저수지로 검색해 삼하리 마을회관까지는 쉽게 찾았고, 그곳에 돌로 새겨진 "월남 이상재 선생 묘소 입구"를 만났어요


양주 누리길 종합안내도에도 표시가 되어 있었지만, 예전 독도법에 익숙한 탓에 서투를 수밖에 없어 근처 가게 주인께 물어 다시 한 번 확인의 화살을 날리고는 좁다랗지만 추억만은 가득할 듯한 삼하리 마을길을 따라 금하리저수지까지는 찾아 올라갔지요


금하리저수지 상류 입구에 한 켠에 동래 정인보 선생이 지은 월남 이상재 선생 신도비를 만나면서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차를 세웠어요

노고산 등산로 한켠에는 굿당의 쟁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다른 한 길로 올라가 좁다란 길을 따라 올라 드디어 선생의 묘소에 이르렀지요

초여름 열기가 한껏 뜨거운 가운데 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찰나의 묵념을 마치고는 담배 한 개비 사르고는 양주에서 만드는 불곡산 막걸리를 부어드렸어요

아시다시피 선생께서는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창립을 주도하였고 헤이그 밀사를 도우셨다고 하며, YMCA운동에 전념하면서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고, 소년척후단 초대총재와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시기도 하였지요

1905년 을사늑약 직후 광무 황제의 간절한 요청으로 의정부 참찬을 지냈지만,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직후 정계를 떠났어요

1927년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탄생한 신간회 창립회장에 추대되었지만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지요 

당시 서울 인구 35만 가운데 20만이 참례하는 사상 초유의 성대한 사회장으로 치러진 선생의 장례는 당시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하네요 

이름모를 들꽃을 바라보며 흐르는 땀과 함께​ 제법 맑은 구름과 더불어 있는 푸른 하늘을 넘어 보며 흐릿한 생각에 잠겨 보았어요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날이지요

안타깝게도 어느 덧 순국선열을 점점 잊히고, 호국영령 가운데서도 일부만 기억하도록 강요당하는 날로 퇴락(!)하였다는 개인적 느낌이 들었어요

아쉽게도 월남 선생을 뵙는 길이 초행이었기에 엉뚱한 데서 시간을 보낸어요

삼균 선생의 가묘는 찾아 뵙지 못했지만 곧 틈을 억지로 내어서라도 가려해요


이 글은 ≪경기북부포커스≫ 문화칼럼에 투고, 게재하였습니다

http://kbfocus.com/read.htm?ns_id=8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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