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삼일운동을 삼일혁명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보였다
그 까닭은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삼일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반왕정과 공화정을 지향하였고, 민중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일절 아침 경기도 지역의 만세시위 일자를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페이스북에 올려보았다
3월 3일 : 개성
3월 7일 : 시흥
3월 9일 : 인천
3월 10일 : 양평
3월 11일 : 안성과 양성
3월 13일 : 양주 미금면 평내리/ 포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뒷산 만세시위/ 포천 영평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 기도
3월 15일 : 양주 의정부 금오네거리
3월 21일 : 연천 두일리 장터, 마전향교 앞, 백학면 통구리
3월 24일 : 포천 영중면 영중리 영평면사무소와 헌병분견소 습격/ 포천 송우리
3월 27일 : 양주 백석면 가래비 장터
3월 29일 : 의정부, 횃불시위/ 포천 소흘 무봉리, 포천 군내면 유교리
3월 30일 : 양주 주내면 양주관아터 앞/ 포천 신북면, 일동면, 이동면, 영중면 주민 신북면사무소 앞에서 시위, 신북면 가채리 격렬 시위, 소흘읍과 가산면 송우리 헌병분견소 습격
3월 31일 : 파주 적성면 장파리(덧붙임: 야간 횃불시위)
3월 하순 : 고양, 부천, 용인, 이천, 김포, 파주, 포천, 연천, 광주, 여주, 장연, 강화
4월 1일 : 연천 중면 삼곶리/ 일동면 기산리
4월 2일 : 고랑포리
4월 3일 : 포천 이동면 장암리, 노곡리/신북면 삼정리
4월 4일 : 포천 영북면 자일리
4월 10일 : 연천(현 포천) 관인면 삼율리에서 주민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남창동으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했다(덧붙임: 조아당과 박용길 등이 주동)

△ 제 페이스북에 정리한 경기도 1919년 독립만세시위
(3월 27일 : 양주 백석면 가래비 장터는 3월 28일 양주 광적면 가납리 가래비 장터로 바꿉니다^_^))
이 내용은 독립기념관 누리집 독립기념관 > 자료검색(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 독립기념관 간행물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 제19권 국내 3.1운동Ⅰ 중부ㆍ북부로 찾아 들어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서투르게나마 제시한 1919년 독립만세시위 내용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째, 이 땅의 독립을 바라는 삼일만세시위가 결코 삼월 일일 하루에 끝나지 않았음을 뜻한다
둘째, 지역 조직(R.O. as Regional Organization: R.O.가 꼭 Revolutionary Organization이라 고집해보세영!!!)이 1919년 당시에 이 땅 전국에 존재하였음을 뜻한다
셋째, 그런 까닭에 오늘날 삼일절 행사는 3월 1일 하루로 끝날 수 없음을 뜻한다
오히려 3월 1일은 삼일절 행사의 시작이다
1919년 독립만세시위의 시작일 뿐이다
그제 3월 1일 삼일절 행사가 서울을 시작으로 했으니까 이제 지자체에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자신들의 사는 곳에서 삼일만세시위를 개시한 날을 기렸으면 어떨까
다시 말해 시흥시의 경우 3월 7일에 삼일절 행사를 하고, 남양주시의 경우 3월 13일 평내리에서, 의정부시의 경우 3월 15일 금오네거리에서, 양주시의 경우 3월 28일 가래비 장터에서 , 포천시의 경우 3월 13일 포천초등학교에서, 고양시의 경우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행주산성과 일산 시장에서, 나아가 포천시 관인면은 4월 10일 삼율리 앞 마을회관 앞에서 삼일절 행사, 아니 1919년 독립만세시위 행사를 벌이면 어떨까
1919년 독립만세시위 행사가 서울 위주가 아닌 지자체가 온 주민과 학생들이 즐겨 참여하는 잔치play party처럼 벌였으면 어떨까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1919년 독립만세시위가 더 이상 서울 중심의 행사가 아닌, 오늘날 지방자치제도의 뜻에 따라 지역적 기억으로 자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적 기억이 강한 1919년 독립만세시위였으니 말이다
서둘러 정리하다 보니 몇 군데가 빠져 아래에 적어 둔다(이 또한 경기 북부 위주로 정리한다)
3월 14일 : 양주군(현 남양주시) 와부면
3월 16일 : 양주군(현 남양주시) 화도면
3월 18일 : 강화읍내 2만명 참여 군청에 붙잡힌 사람들을 구출/ 양주군(현 남양주시) 마석우리 1천 명의 시위대, 체포된 사람들을 구출하고자 헌병주재소 습격
3월 24일 : 양주군(현 남양주시) 진접면/고양 지도면 행주리/고양 중면 일산리
3월 26일 : 양주군 이담면 동두천시장/고양 벽제면 대자리ㆍ관산리 야간 횃불시위
3월 27일 : 양주군 구리면 상봉리(현 중랑구 상봉동?)
3월 28일 : 양주군 장흥면/고양 지도면 행주내리
3월 29일 : 양주군(현 남양주시) 별내면 퇴계원리/양주군 노해면 창동리(현 서울 노원구 창동)
3월 31일 : 양주군(현 남양주시) 봉선사 승려 이순재ㆍ김성숙ㆍ강완수 등이 동리 사람들과 함께 광릉천변에서 만세시위
3월 하순 : 양주 별내면 고산리(현 의정부시 고산동) 유해정, 19살의 나이로 일본 천황에게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편지를 써서 동경부청에 보냄
△ 독립기념관 누리집에서 1919년 독립만세시위자료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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