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수출지상주의가 경제 망친다_요한 갈퉁 고리아이는 누굴까?

“수출지상주의가 경제 망친다” 

<권두인터뷰> 평화학자 갈퉁 

IMF는 오직 한 가지 치료법밖에 모르는 의사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애초부터 잘못된 발상 
농업과 대체에너지산업 육성만이 살길 
남북한의 경제위기는 남북협력의 절호 기회 
글 오연호 기자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들 말한다. 위기의 근원을 뼈아프게 되새겨 보면 새 출발의 길이 열린다는 말일 게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도전이라는 경제파국을 맞고 있는 한국.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숱한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제안은 대부분 IMF해법 수용, 시장개방, 재벌개혁, 정리해고 도입, 수출증대, 근검절약 등으로 모아진다. 

그런데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 학자가 있다. 세계적인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 그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죽을 길이다”고 주장한다. IMF가 ‘만국의 만병을 통치하는 의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농업 재육성과 대체에너지산업에 대한 투자만이 한국을 근원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갈퉁 교수를 지난 1월 4일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나 봤다. 

“IMF의 치료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요한 갈퉁 교수는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했다. 오슬로대학에서 수학과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현재 유럽평화대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4~5개 대학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70을 바라보는 갈퉁 교수의 얼굴은 어쩌면 노르웨이의 이미지를 닮았다. 평화를 애호하는 인구 4백만의 나라. 그는 2시간의 인터뷰에서 호텔 커피숍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보다 높은 목소리를 한번도 내지 않을 만큼 온화했다. 평화학자인 갈퉁 교수의 평생 연구대상은 세계의 갈등현장이다. 1백20여 나라를 방문했고 50여 권의 저서를 낸 그는 간디 비폭력평화상(95), 소크라테스 성인교육상(90) 등 6개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을 담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는 국내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는지를 알아보고 내 나름대로 도움말을 주고 싶어서 왔습니다. 또 정권교체와 경제위기라는 남한의 상황변화가 남북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러 왔습니다.”갈퉁 교수는 한국 체류 이틀간 김대중 당선자측의 외교 안보참모들을 만나 자신의 대안을 설명하는 데 보냈다. 그와 김대중 당선자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10여 차례에 걸쳐 방문했던 그는 김대중씨가 가택연금을 받던 시절 제지하던 경찰을 뿌리치고 집에 들어가 면담을 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김대중 당선자 진영을 포함한 한국의 여론주도층은 ‘IMF가 시키는 대로 해야 산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IMF해법을 따라야 하는 겁니까. 

갈퉁 교수는 고개를 저으면서 “IMF는 오직 한 가지 치료법만 갖고 있는 의사”라고 혹평했다. 

“만약 당신 가족 중에 한 명이 아프다고 칩시다. 의사를 불렀는데 가방을 들고 왔어요. 도대체 이 의사는 어떤 치료제를 갖고 왔나 확인하려고 그 가방을 열어 봤더니 조그마한 약병만 있습니다. 그 약은 그 의사가 모든 질병에 사용하는 단 하나뿐인 처방약이죠. 그 약의 효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대가로 자본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거죠.”갈퉁 교수는 IMF의 치료법은 “언제나 그러했다”면서“나는 그 어떤 예외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IMF해법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금이 일회용일뿐 재투자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입된 해외자금이 취한 이득은 재투자되지 않고 투기자금화할 것입니다. 왜 다시 투자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단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투자시 과잉생산될 것임을 잘 알고 있지요. 나는 한국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큰 시장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재투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곧 제2의 위기가 올 터인데 왜 재투자합니까?” 

―IMF의 해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멕시코의 성공사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노노.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진실을 모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인들 70%가 IMF지원 이후에 더 생활이 나빠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질 임금이 낮아진 거죠. 반면에 실업률 등 경제지표들은 나아진 게 사실이죠. 문제는 경제지표에 의미를 둘 것인지 인간이 피부로 느끼는 실물경제에 기준을 둘 것인지입니다. 물론 후자지요. 어쩌면 상위층 30%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었을 것입니다. 가진자 30%의 향상은 못 가진자 70%의 박탈감보다 그 수치적 파워가 훨씬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는 멕시코경제가 나아진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갈퉁 교수는 멕시코의 사정을 피상적으로 파악해 성공의 모델인 양 호도하는 사람들에겐 심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 들은 머리도 좋지 않을 뿐더러 가슴도 좋지 않다”고 했다. 

갈퉁 교수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 IMF의 해법이 일방적이고 일회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면, 우린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IMF의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단 말씀입니까. 

“IMF의 자금은 받아야지요. 당장 돈이 급한 처지이지 않습니까. 또 그 돈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협박당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요컨데 내 충고는‘받아라, 그러나 지혜롭게 써라’는 것입니다.”갈퉁 교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대안을 제시했다. 

“나 같으면 그 돈을 받되 가능한 한 그것을 농업과 에너지 분야에 많이 투자하겠습니다.”농업? 에너지? 경제위기 타개책은 이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내 정치인이나 경제인, 학자, 언론들은 ‘수출만이 살길이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한국이 수출위주 전략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상품을 소비해 줄 만한 시장이 세계에 과연 존재하느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산업국가들이 생산해 내는 상품들은 세계에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계 인구의 절반은 매우 가난해서 그 상품들을 살 수 없습니다.”해외에서의 한국상품 경쟁력은 둘째치고 그것을 소비해 줄 기본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IMF지원을 통한 수출제일주의로 일회적으로 극복한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퉁 교수가 분석하는 한국 경제위기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달러의 부족이나 수출부족이 아닌 ‘생존의 기본’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식량과 에너지는 생존의 기본입니다. 이 두 가지만 국내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든 생존할 수 있고 어떤 위기도 이겨 낼 수 있지요. 한국의 수출위주 전략은 농업과 대체 에너지산업에 대한 철저한 무시를 당연시했습니다. 한국의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생존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수출산업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갈퉁 교수는 한국이 오늘날의 위기를 맞게 된 데에는 국가경제의 기본전략을 잘못 세우는 데 기여한 남한 경제학계의 ‘원리주의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한 면만을 강조하고 시각이 좁고 책상머리적인 사고를 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위기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갈퉁 교수는 “남한의 원리주의자들은 북한의 원리주의자들과 사고방식에서 비슷하다”면서 “북한은 주체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무역을 너무 하지 않아서 고통받고 있고 남한은 무역을 너무 많이 해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현 경제위기는 농업 육성의 호기” 

갈퉁 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안하는 장기대책은 우리에게 비현실적 혹은 이상주의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갈퉁 교수는 “남북한 모두 농업에서 기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농업을 되살리는 것을 장기적인 경제위기 탈출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남한은 식량자급도가 25%선에 불과한데 가치저하된 원화를 가지고 계속 농산물을 수입하다 보면 그 부담이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다. 

―농업 재육성을 강조하는데 구제적인 방법이 있다면.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 경험들을 보면 도시에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도시 주변에서 슬럼가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농업 무시정책으로 일관해온 한국이기에 현재의 농촌이 그들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업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새로운 노동력과 발전된 농기구를 결합시킨다면, 그리고 국산식량을 선호하는 바람이 불면 농업을 재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농업 중시정책에 대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저을텐데. 

“그들은 지난 50년간 수출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쳐왔습니다. 내가 이번에 만난 정계와 경제계의 전문가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나 단언컨대 그것은 잘못된 길입니다. 식량자급보다 수출이 우선이다고 외쳐대는 그 사람들은,이 나라 사람들이 배를 굶주릴 때가 오면 다른 방도로 먹을 것을 구할 수있는 사람들입니다.”갈퉁 교수는 “작년에 방한해서 시골길을 드라이브한 적이 있는데 소를 단 한 마리밖에 못 봐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많던 소들을 누가 다 죽였습니까. 비교우위론이라는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비교우위론은 이제 철 지난 경제이론입니다. 이제 그 논리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를 보호하는(preserve all sectors)’정책을 써야 합니다.” 

“남북 고속도로와 철로 개방해야” 

갈퉁 교수는 농업과 함께 “대체 에너지산업을 최대한 발전시켜라”고 했다.“태양, 바람, 생태, 석탄, 조수 에너지 등을 생각해볼 수 있지요. 특히 남한 해역은 삼면이 바다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조수 에너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천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개발하기까지는 적잖은 투자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비용이 싼 것은 태양이나 바람, 생태 에너지등입니다. 석탄에너지는 싸지만 공해가 심하다는 문제가 있지요.”갈퉁 교수는 현재 남북한 모두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남한은 ‘북한의 자주노선도 문제 있지만 우리의 길도 문제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 동안 남한은 너무 오만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둘다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 자세가 서로를 협력하게 만들 것입니다.”갈퉁 교수는 김대중 당선자가 당장 남북간의 농업과 에너지 개발에 관한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협력 증진의 한 방안으로 남북간에 철도와 고속도로를 서로 개방하자고 했다. 

―남북 모두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데 결국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까, 아니면 공멸할 것으로 봅니까. 

“극복해 낼 것입니다. 남북 모두 엄청난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35년을 이겨 낸 민족 아닙니까.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각자 일어서지 않았습니까. 그 저력이면 남한의 경제위기나 북한의 식량난은 충분히 이겨낼 수있는 것입니다. 평양과 서울이 손을 잡는다면 남북한의 위기들을 극복해 내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

 

1998년 1월호 말지에 실린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인터뷰입니다. IMF를 "극복"한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견한 글이라 볼 수 있겠지요. 

지금 오마이뉴스의 CEO인 오연호 기자가 인터뷰를 했다고 하네요. 갈퉁의 이야기가 그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아마 지금 오마이뉴스따위(?)를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모두가 IMF 처방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했던 그 시절,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갈퉁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노무현대통령추모

김대중대통령추모

언론악법 원천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