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현대 한국 역사학의 흐름_노태돈 ≪제3판 한국사연구입문≫

이 시기(해방 직후) 진단학회의 주도층은 서울대학 사학과와 역사교육과 등 교육기관에 진출하여 후진 양성을 주도하였고, 조선사편수회의 업무를 수습하여 국사관國史館을 설립하였다(1946). 후자는 1949년 국사편찬위원회로 확대개편되었다.

중도 우파적 성격을 띤 이념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로 구체화한 신민족주의사학의 역사 서술 방향은 자연 민족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관념적이고 교설적인 면을 강하게 띠었다. 역사교육을 중시하여 교과서를 집필하고 한국 정부의 교육정책에 직접 참여하였던 것도 이런 면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차츰 격해지는 이념 대립과 미소 갈등의 현실 앞에서 신민족주의 시학의 역사인식은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균등사회의 건설이 비교적 용이한 일이라 여긴 소박한 현실 인식과 선린 우호의 국제질서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인식한 안이한 국제관계의 이해에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 그동안 사회경제사를 연구해 왔던 이들은 유물사관사학의 재건에 나섰다. 이들은 조선과학자동맹이나 민족문화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이 시기 좌익의 실천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를 연구하였다. 그래서 현 단계에 필요한 반봉건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대한 이론적 바탕을 제시하기 위한 사회경제사 연구라든가, 우익의 임시정부 정통론의 입장에 선 삼일운동론을 비판하면서 좌익 중심의 민족해방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의 시도 등을 하였다. 해방 공간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유물사관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비타협적인 배타성과 당파성을 견지하였다. 그에 따라 좌우 대립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통일민족국가의 건립을 위한 새로운 역사관의 모색이나 역사가들의 역량 결집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이들의 활동 공간을 좁게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 194610월 김일성대학의 개교 때 상당수의 사학자들이 평양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어 19484월 남북협상을 계기로 다수의 사회경제사학자들이 월북하였다. 194910월에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를 골간으로 하는 조선민족해방투쟁사를 펴냈다. 이 책은 북한의 국가건설노선과 사회주의 인민정부 수립의 역사적 정당성 및 김일성정권의 정통성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북한에서의 분단사학의 형성을 말해주는 바이다.

참혹한 전쟁으로 좌우의 이념 대결은 극단으로 치달아,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북 양측에서 역사학은 분단 체제를 옹호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미소 중심의 세계질서를 묵종하게 하는 데 기여하여야 했다.

1950년대 한국사학계는 활기를 잃고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세워 놓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형편이었다. 국가 예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외국원조 물자를 판매한 대충자금에 의존하고 정부 주요 부처마다에 미국인 고문단이 주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역사의식은 소극적이 되게 마련이었다.

<고등학교 국사교육개선을 위한 기본 방향>(1969, 이기백이우성한우근김용섭 등)한국사(국사편찬위원회) 편찬 요강의 내용은 식민주의 사학에서 내세웠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내재적 발전을 강조하던 1960년대 한국사학계의 역사의식과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연구 경향은 당시 집권층이 추진하던 근대화론과 맞물리면서 일세를 풍미하였다. 이러한 학풍은 1970년대 초로 이어져 그 뒤까지 한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유신체제의 집권세력은 개발독재를 수식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을 강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분단극복사학론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의 근원적인 뿌리가 분단에 있으며, 이 분단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국사학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현재성의 수행이라고 보았고, ‘통일 민족국가 수립에 공헌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개발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통일 지향의 민족주의론을 정립할 것등을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분단시대라는 상징적인 말에 압축된 이런 주장은 통일을 국사학의 중심 과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곧이어 계몽적인 당위론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역사연구의 마당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통일 지향적인 역사학을 수립할 수 있으며,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이 잇따랐다. ‘통일 민족국가 수립에 공헌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의 개발에 대해, 그것은 자칫 초역사적인 감계주의鑑戒主義나 소재주의素材主義로 흐르기 십상이고, 그럴 경우 과연 한국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통일의 역사적 정당성과 필연성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한국사의 발전과정의 주된 흐름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로 분단시대의 파행성을 인식하고, 극복을 위한 연구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할 때 자연 한국사의 발전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고찰은 그 대상 시기나 주제가 무엇이든 모두 현재성을 띠는 연구가 되며, 소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역사학에서 분단 극복의 과제가 역사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보편적인 일반 과제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일제 말기까지의 민족독립운동은 좌우익의 절충을 거쳐 민주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지적한 연구, 해방 뒤 좌우합작운동과 이런 회색노선이 정착하여 광복 정국을 주도하여야 했다는 근대 한국민족주의의 특징에 관한 연구, 진보당 등 혁신정당운동에서 그러한 맥이 계승되었음을 강조하는 연구 따위에서 강하게 배어 나오는 당위론적인 주장이 객관적 분석과 실증을 거쳐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을까가 주목된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한 이후에도, 남북 사이의 분단 극복의 논리가 그 전과 같은 좌우 절충론적인 차원에서 견지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 제기에 직면하여야 한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사회경제적 모순과 계급갈등은 고난받는 민중이 나의 삶과 직면하는 존재임을 확인하여, 또는 내가 그러한 민중의 일원임을 자각하여, 민중을 변혁의 주체로 인식하고 민중의 삶을 역사연구의 주 대상으로 하는 민중사학론이 제기되었다(1987년 한국근대사연구회, 1989년 한국역사연구회). 그런데 이 민중사학론은 얼마만큼 이념이 아닌 민중의 역사로 구체화하여 재현해 낼 수 있느냐에 여전히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근래 탈근대사학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구술사口述史나 미시사적微視史的인 연구는 민중사를 재현하는 데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기존의 민중사의 연구 경향과의 관계가 유의된다.

1980년대 종반 이후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는, 먼저 그것이 지닌 양면성이 지적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주요한 추동력으로 작용하였음이 객관적인 사실임을 지적하고, 작금의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쉽게 방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인식인가를 되묻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 역사서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제기한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조선을 하나의 독립된 경제 단위로 보아 분석하였는데, 이는 식민지 조선 지역의 경제 발전과 조선인의 경제 발전을 동일시한 표피적인 현상의 파악에 지나지 않으며, 식민지 조선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본질적인 것은 소유관계와 분배에서 민족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하였다. 즉 개발이 조선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면서, 식민지 시기의 경제 성장의 현상개발없는 개발로서 해방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려져 버린 것이었다고 규정하며, 조선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는 개발을 저해하고 식민지적 개발로 대체한 것이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일제 시기의 긍정적 변화는 한국인이 산업교육사상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차별에도 좌절하지 않고 분투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의 경제 개발은 식민지 경제 유산과 무관한 것이었다고 이해하였다. 이제 민족지상주의도 민족허무주의도 함께 지양되어져야 하며, 쟁점을 분명히 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논의의 진전이 요망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논의가 활성화된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에서는 식민지 근대를 원형으로서의 근대, 곧 서구의 근대가 미완성된 또는 왜곡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교배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근대의 한 유형으로 설정하여, 그 안에서 전개된 권력과 지배의 새로운 양식을 분석하려 하였다. 이런 식민지근대성론에서는 권력문화지식욕망 등에 주목하는 미시微視담론에 주력하였다. 이들은 역사의 과학성을 해체하고 진보로서의 역사를 부정하였으며, ‘하나의 역사대신 복수의 역사의 존재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새로운 큰 틀의 수립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거대 담론을 경시하는 역사연구가 근대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라는, 특히 통일과 양극화 현상의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역사 귀속과 영토 분쟁이 격화하고 있어 역설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다. 역사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갈등 또한 쉽게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의 확충과 함께 일국사를 넘어서는 미래지향적인 역사인식의 구축이 요망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 변화가 양극화의 덫을 넘어서서 민족 통일과 다원화한 민주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겠다. 이를 위해 한국사학계가 지난 60여 년의 사색과 고뇌를 밑거름으로 삼아 새로운 역사상과 역사인식을 정립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노태돈 2008 <현대 사학의 흐름>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 3판 한국사연구입문(한국사연구회 엮음), 지식산업사, 1937.

 

△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상표지(다음책http://book.daum.net/에서 얻음)

 

# 일찍이 1981년 한국사연구회에서 한국사연구입문을 펴냈다. 이어 19872판 한국사연구입문이 나왔다. 그리고 2008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 3판 한국사연구입문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1987년 민주화 이후 2008년 반동적 정권의 성립 이전 남한 한국역사학계 연구 동향을 총정리 하였다고 여겨지기에 행간을 살펴 읽어볼만하다. 1장에서 짧게나마 조선민족해방투쟁사등을 언급하여 남북의 한국역사학계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지만, 2(식민주의사학 비판과 민족주의사학)부터는 남한 한국역사학계의 연구 동향만을 서술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행간을 살펴볼 만한 글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노무현대통령추모

김대중대통령추모

언론악법 원천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