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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에서 통일그리기 Corean Clio

연천군 미산면 외진 곳 아미리. 그곳에는 고려 태조를 비롯한 고려의 일곱 임금과 공신들을 제사하는 숭의전지가 있다.

숭의전지라고 부름은 본래의 숭의전 모습을 온전히 갖추지 않기 때문이리라.

앞에는 임진강 징파도의 너울이 세차게 흐르고, 뒤에는 야트막한 잠두봉이 자리하였다.

13928월 조선 태조가 고려 태조의 주상鑄像과 위패 따위를 당시 마전군으로 옮겨 봉안하게 함으로써 숭의전이 비롯되었지만, 막상 숭의전이라는 이름은 한참 뒤에야 붙여진다. 같은 해 811일과 12일 예조 전서 조박의 글에 태조묘라는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잠두봉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미편하고도 슬프게 들린다. 잠실처럼 말이다. 조선 태조는 개국한 지 불과 3년이 채 안 된 1394년 삼척으로 유배 보낸 공양왕을 비롯하여 강화와 거제로 몰아넣은 고려의 왕족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왕씨의 남은 자손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이들을 모두 목 베었다(태조실록3(1394) 4월 기축(20)).

그러고도 모자라 혹시나 있을 고려 왕족들의 후손 번창을 막고자 태조묘=숭의전의 뒷산 이름을 잠두봉이라 부른 것일까. 잠실은 1970년대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당시 정관수술을 한 가장에게 영순위입주 자격을 주었다고 한다.

숭의전에는 또 다른 전설이 남아 있다. 숭의전을 지키는 고려 왕족의 후손이 흥선대원군의 파락호 생활과 다를 바 없는 이었다는 전설이다. 오죽하였으면 그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여 선조들의 제사를 지켰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슴 아린 전설과 이름마저 고약스런 잠두봉을 뒤로 하니, 오늘도 숭의전 앞을 도도히 흐르며 남에서 다시 북으로, 국토를 하나로 이어 잇는 임진강이 붉게 탄 시퍼럼을 넘어 쿨렁쿨렁 웅성거리며 쏟아져 내리는 황토 빛과 함께 두 눈에 문득 다가온다.

아시다시피 이 땅 역사에는 통일의 경험이 둘이 있다. 하나는 신라에 의한 백제와 고구려의 통일이고, 다른 하나가 고려의 후백제와 신라의 통일이다.

신라에 의한 통일은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고, 광활한 고구려의 영토를 포기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최초의 통일임에도 오늘날 고려의 통일보다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과정을 성글게나마 살펴보면, 8세기말부터 서서히 그 사회적 모순을 노출시킨 신라는 9세기 말에 이르러 지방민들의 전국적인 조세저항에서 비롯하여 점차 이들의 기운은 반신라라는 정치적 행동을 거쳐 후백제와 후고구려라는 거대한 적들을 다시 만나는 후삼국의 정립이 개시되었다.

그 정립은 새로운 세기인 10세기 초에 다시 한 번 변화한다. , 자신의 임금인 궁예를 몰아낸 뒤, 태조는 이른바 중폐비사重幣卑辭로 지방 실력자들을 통할하는 한편, 신라 멸망의 교훈을 뒤돌아보면서 예산진의 조서를 통하여 가혹한 수취를 막아 농민들의 무거운 조세 부담을 덜어주었다.

또한,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하고 그 유민들이 고려로 대거 넘어오자 이들을 반가이 맞이하여 삶터를 마련해주었다. 신라의 경우 경순왕의 귀순을 받아들여 무혈로써 통합하고, 후백제는 연산 전투로 마감하여 개태사의 웅장한 석불을 남겼고, 이 땅을 통일로 하나 되게 하였다.

오늘날 이 땅이 남과 북으로 국토의 허리가 쇠말뚝보다 더한 철책으로 잘린 지 70년이 다 되어간다.

금강산 관광이 멈추고, 개성으로 향하는 도로가 끊긴 통일의 길이 아득한 바로 이 때, 민족의 물줄기가 되게 하여 이 땅의 통일을 가로막는 돌무더기를 박차고 넘어가게 하자, 임진강을. 숭의전 앞 뜰 임진강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아미리 외진 곳이지만, 붉고 푸르고 누른 임진강처럼 이제라도 숭의전에서 한껏 그려보자, 이 땅의 통일을.

 

# ≪경기북부포커스≫780(2013년 9월 10일), 23쪽에 실은 글의 원문입니다영^_~))




덧글

  • 零丁洋 2013/09/14 11:53 # 답글

    헤겔은 현실과 이상을 말하며 진정한 현실이란 이상이 현실화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하더군요.(해석에 조금은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상만을 말하는 것은 허구이지만 놓여진 현실에만 집착하는 것도 허구라고 봅니다. 인간이 의지를 갖고 실천하여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라면 민족의 통일은 우리의 이상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실천 속에서 달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위의 컬럼 처럼 통일의 당위성을 확보하여 우리 안의 회의를 제거하는 것이라 봅니다.
  • 고리아이 2013/09/15 01:23 #

    데데한 글에 덕담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헤겔의 지적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올 여름 숭의전에 들렀을 때, 숭의전에서는 한창 "고려 황제국" 관련 행사와 홍보가 눈에 보였지요
    그래서 감히 이 땅의 통일을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님의 끊임없고 가열찬 채찍을 멀리서나마 바랄 뿐입니다
    꾸우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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