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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불곡산 숲길과 양주향교 탐방 상두야~~!!! 향교가자

지난 은봉산 숲 탐방에 이어 양주시 숲해설사 이정은 선생님과 함께 829일 양주시청 청사 바로 옆에 있는 불곡산 숲을 탐방하였습니다영

 

 

아홉 구비의 계곡(이정은 선생님께서 일일이 셈을 하셔서 알았습니다영)을 넘으면서 산불이 난 듯한 흔적과 여러 참나무들을 구경하고, 불곡산 회양목 자생지 안내판을 돌아 나올 무렵(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는데,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영), 양주향교를 지키시는 관리사 분을 뵈었습니다영

 

 


가을볕을 무릅쓰고 향교 곁 텃밭을 일구시던 관리사 분께서 일손을 놓으신 채, 저희들을 다정하고도 친절히 안내해주셨는데영_대성전도 직접 보여주시고 명륜당 안에 있는 <양주목학중수기楊州牧學重修記>(단기 4183, 서기 1850, 철종 1)도 보여주셨습니다영

 

 

이 날 관리사님으로부터 얻어 들은 양주향교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여기에 간단하게 정리해보아영

 

 

1) 양주향교의 왼쪽(명륜당을 등지고 볼 때) 은행나무의 나이가 100년 남짓 되었다(위 사진의 은행나무)

_1896 9, 양주향교에서 근대식 양주공립소학교가 개교하면서, 그 사실을 기리고자 당시 첫 양주군수(양주목에서 양주군으로 바뀌었기 때문) 조정구(趙鼎九, 18621926: 흥선대원군의 사위,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자는 미경米卿, 호는 월파거사月坡居士, 초명은 석구皙九. 부승지, 부제학, 대사성, 이조참의, 규장각직제학, 예조참판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한일강제병합 이후에 일제가 내린 남작의 직위를 거부하였으며, 자결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차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으며, 이후 봉선사에서 지냈다.

아들 조남승과 조남익이 있다. 딸 조계진은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아들 규학과 혼인하여, 이종찬李鍾贊을 낳았다. 융희제 붕어 전 유언을 구술 받아서 신한민보에 공개한 장본인이다._양주향교와 양주시에서 가이없이 현창해도 결코 흠이 없으실 분이다. 양주시청 문화관광 누리집http://tour.yangju.go.kr에는 양주의 미이 있는데, 양주의 인물과 관련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네영)가 심었다고 한다.

2) 양주공립소학교의 후신인 의정부중앙초등학교는 1919 8월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하는데, 금오동 영부사(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조선 중추부中樞府의 으뜸 벼슬인 영사領事로 정일품正一品, 정원 1) 댁으로 옮겼다고 하시는데, 영부사는 누구이며, 영부사 댁은 어느 곳인지 참 궁금해지네영

3) 대성전 곁 무의 쓰임새 :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성현들의 위패가 있고, 동무와 서무에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데, 일종의 차별이라 하신다. 그러다가 고종이 광무제로 등극하면서 대성전에 모두 모시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이는 좀 더 살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지네영

대부분의 향교에서는 해방 후인 1949년에 전국유림대회의 결의로 동·서무에 모셨던 18현의 위패를 대성전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고 하거든영(전북향토문화원에서)

4) 양주향교에는 재건물이 없다 --> 요건 제가 경기북부포커스(아래 그림)에 간단하게 설명하였답니다영^_~))

 

 

이어 향교 근처에 있는 닥나무랑 가래나무를 만나본 뒤, 양주별산대마당과 양주문화원 뒤 시원스러운 폭포 구경에 나섰습니다영 


△ 양주목(청구요람)_규장각에서 얻음


 

양주 불곡산 숲길과 등산로 안내도 바로가기↯↯↯

http://tour.yangju.go.kr/site/tour/sub.do?Key=3403

 

불곡산 회양목 자생지 탐방 글 보러가기↯↯↯

http://www.sanrimji.com/site/websolution/menu/1368.do?p_2518_m_1_scene=article-detail&issueNo=783&categoryNo=8&articleNo=1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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