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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Modern Corean Clio

최근 한국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032133205&code=990303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57772

한 달 전 즈음 마거릿 맥밀런Margaret MacMillan 교수가 짓고 권민님이 옮긴 역사 사용 설명서: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2009, 공존)을 우연히 만나 즐겁게 읽었다
그런데 제
7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역사전쟁

여기서 교수님은, “역사는 과거를 상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잊을 과거를 가려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운을 떼시고는, 캐나다를 비롯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독일과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역사 교육의 실제를 소개하고 있다_영국에서는 학생들이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할지를 두고 논쟁이 거듭되곤 한다(170)고 소개하고 있다_다민족, 다문화의 새로운 한국에 대해 한국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자!!!

과거를 가르치는 일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의 핵심으로 모든 역사를 한 방향으로만 서술해버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런 역사는 인간의 복잡한 경험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과거를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고 경고한다

여기에서는 최근 한국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떠올라 오는 험악하고 음울한 시각의 역사”(175), “해체주의의 역사”(177), “혼란”(178), “오류와 왜곡”(179), “끝없는 논란”(184), “불균형”(186) 따위의 용어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두웨이윤杜維運 교수가 역사학연구법의 과학적 방법과 예술적 방법 사이에서 고민하시면서, “역사는 과학이 아니며 예술도 아니며 어떤 다른 학술도 아니고 역사는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역사의 신 클리오는 영원히 침범될 수 없다. 역사는 변함을 연구하는 학술이지만 과학은 불변을 연구하는 학술이다. 사가에게서 유일한 절대는 변화다. 역사는 예측할 수 없고, 사가의 임무는 이미 발생했던 것을 연구하는 것이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나 발생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杜維運 著/權重達 譯 1984 歷史學硏究方法論, 一潮閣, 417)”고 강조한 것 또한 이심전심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맥밀런 교수는 역사는 현세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서는(written) 안되고,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187)

다시 한 번 두웨이윤 교수의 지적과 마거릿 맥밀런 교수님의 혜안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2010년에 개봉한 라운드업La Rafle; The Round Up의 포스터를 보다가 맥밀런 교수의 프랑스 역사 교육,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시 정권과 관련한 글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를 통치한 우익 부역자 비시 정권은 프랑스인들로서는 특히나 다루기가 힘들었다. 1945년 이후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은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만 했다. 비시 정권이 나치에게 빈번히 열렬하게 행한 부역이나 주민들 사이에서 얻은 지지 따위는 무시했다.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인 샤를 드골 장군이 1944년 파리에 개선했을 때 그는 비시 정권이 없었던 일이고 의미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의 군대와 레지스탕스가 진정한 프랑스를 대변했다(한국은 광복군이고 독립군이고 대변조차 못했다!!!). 나치에 부역한 극소수의 프랑스인들은 처벌될 것이고, 프랑스인들은 합심해서 위대한 조국을 재건할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신화 덕분에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경찰이 자진해서 유대인을 체포해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일을 잊을 수 있었다. 도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비시 정권의 많은 관리들이 나치에 부역하고도 1945년 이후 자리를 보전했다는 사실도 잊을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리옹의 도살자클로스 바르비Klaus Barbie 같은 악명 높은 전범들을 체포해 재판에 넘기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전범들은 교회나 고위 정치가들의 보호를 받았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프랑수아 미테랑Francis Mitterrand은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기 전에 잠시 잠깐만 비시 정권에서 일했다고 주장했는데,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그 주장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은 어느 진보적인 언론인이 밝혀낸 것처럼 프랑수아 미테랑은 자기가 인정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비시 정권을 위해 일했고 훈장까지 받았다.

프랑스가 비시 정권이라는 과거와 화해한 과정은 실로 고통스러웠다.(1912)

 

프랑스의 비시 정권에 대한 역사 교육과 관련한 맥밀런 교수의 이 글을 보면서 한국의 해방공간기 민족반역자처벌과 그에 대한 반동의 역사와 서로 겹쳐져 눈앞에 떠오름을 느꼈다

프랑스는 실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면, 한국은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특정 정권에 기생하도록 강요하는 한편, 그렇지 않은 이들을 빨갱이와 좌빨, 종복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던가

마치 향원과 좌도라는 딱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보면 이 땅의 역사는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남이 무엇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마거릿 맥밀런 교수는 박물관이 밀랍인형전시관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181)는 것도 알려주면서 역사는 자위행위나 요양원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 ≪라운드업La Rafle; The Round Up포스터 하나

_다음 영화에서 얻음




덧글

  • 零丁洋 2013/06/09 09:51 # 답글

    역사 전쟁? 참 강렬한 표현이군요.^^

    저도 역사적 지식에 대한 앎의 의지는 자기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독도에 대한 권리는 무엇에서 나오나요? 우리의 앎의 의지가 우리의 조상이 영유해 온 역사적 사실들을 확보함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라 봅니다.

    앎의 의지가 있음으로 역사적 사실을 모으고 해석하고 권리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또한 앎의 의지가 있음으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무리의 역사적 지식을 해체함으로 그들의 권리없음을 들어내고 그들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화석화된 역사적 지식 이외에 새로운 해석이나 논의를 이미 실증적 오류로 단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증이 중요하나 이런 경우는 거의 비실증적인 도그마로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한 과학도 이지경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지금도 열심히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이들은 사료의 행간에 엄청난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자신감의 부족? 객관적이고 정확하다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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