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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풍속 규제 두울 Corean Clio

세종대 사헌부의 풍속 규제는 태조 초기의 풍속 규제의 확대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법제의 게시 문제다. 규제 내용이 정해졌음에도 그에 따르지 않아 적발되는 관료들이 있을뿐더러, 한문을 모르는 일반 인민들은 말할 필요까지 없겠다. 그래서 아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게시를 하자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규제 내용에서는 현직 관료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 산직 관료와 가족, 사찰과 승려, 일반 인민과 노비까지 이르고 있다. 먼저 혼례와 상례 때 입는 의복과 꾸미개에 관한 규제가 보이고 있다. 유밀과의 금지는 이미 태조대에 보이고 있는데(태조 5(1396) 1월 계미(24)), 고려 후기에도 금지 사례가 보이고 있다. 종묘와 대궐 앞의 승마 금지, 잿빛과 황색 옷의 금지, 부녀자의 사찰 출입 금지, 중의 과붓집 출입 금지, 불교식 노제 금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은 그릇의 사용 금지는 물론 철기 또한 사사로이 거래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조치는 이후 몇 차례 살핌을 거치는데, 다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 예조에서 아뢰었다: “명부命婦의 인신印信 체제가 등급이 없으므로, 이제 주현의 인신에 따라 상정詳定합니다. 1, 2품의 아내는 1, 3품에서 6품까지의 아내는 2, 6품 이하의 아내는 3등으로 하여, 1등의 인신은 방17, 2등의 인신은 방 14, 3등의 인신은 방 1촌으로 하였으되, 모두 조례기척造禮器尺을 썼습니다. 위에서 아래로는 통용할 수 있으나, 아래에서 위로는 참람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대소 인원의 안장(鞍子)이 차등이 없어서 저마다 사치를 숭상하여 물가가 오르니, 금후로는 안장을 신하는 대랑피大狼皮와 백어피白魚皮 안을 쓰지 못하게 하고, 집현전 부제학 이하는 귀비아龜飛兒청사피 수아靑斜皮穗兒삼록칠첨三綠漆韂삽등자鈒鐙子황동사건黃銅事件삽사건鈒事件수우 각변水牛角邊청록 각아사靑鹿角牙絲 등을 쓰지 못하게 하여 높고 낮은 신분을 분별하고, 그 전에 만든 것은 유사로 하여금 기한을 정하고 표를 붙이게 하소서.”(세종 15(1433) 5월 갑술(22))

 

) 사헌부에서 아뢰었다: “상하上下를 분별하고 명분을 정하는 것은 오로지 의장儀章에 있으니, 모든 여러 가지 복색을 이미 일찍이 품계에 따라 제도를 정하여 등위等威를 소상히 보였는데, 자색紫色은 진상進上과 궐내에서 소용되는 것 외에는 입지 못하도록 영갑令甲에 실려 있습니다. 지금 자색에 가까운 비슷한 짙은 염색을 하여 비록 사리를 아는 조사朝士라 할지라도 공공연하게 입고 다니므로, 등위가 분별없고 분수에 넘침이 막심하오니, 청하옵건대 지금부터 엄히 금지하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지난해에 복색의 금장禁章을 금년 정월 초하룻날까지 한정하였는데, 비슷한 색깔을 금하는 것은 어느 때까지 한정할 것인가.”

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니, 모두 아뢰었다: “다음 달 초하루까지 한정할 것이고, 또 안장에 귀비아는 당상관 이외에는 일찍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는데, 지금은 연좌아軟坐兒라 칭하고 푸른 자주빛 사피로써 가를 둘러서(緣邊) 꼭 귀비아와 비슷하여 등위가 분별이 없으니 아울러 금지하도록 하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이 일도 역시 비슷하다는 조목 안에 아울러 기록하여 금하게 하라.”(세종 32(1450) 1월 계사(17))

 

) 상정소에서 아뢰었다: “1. 대소 인민의 기자화起子靴금은 입사 마장金銀入絲馬粧과 홍색 표의紅色表衣대복첩帶袱䩞의 그 홍색 속옷을 금하고, 평상시 융복戎服을 겉에 입는 것을 아울러 금하소서. 1. 당상관의 어미나 아내 및 유음有蔭의 신부新婦 외에는 옥교자屋轎子를 금하소서. 1. 당하관의 협금화夾金靴4품 이하의 자대紫帶를 금하소서. 1. 서민의 홍자의紅紫衣와 복교기초袱交綺稍산호珊瑚마노瑪瑙호박琥珀명패明貝청금석靑金石입영자笠纓子입식삽笠飾鈒등자황동사건사피를 금하게 하소서. 1. 공복公服조복朝服제복祭服과 기생공인工人의 관대冠帶의 홍색紅色은 예전대로 하소서.”(예종 1(1469) 7월 경인(9))

 

) 승정원에 전지하였다: “근래 듣건대, 법사法司에 금란禁亂하는 아전들이 금령의 본뜻을 알지 못하고 사피로 장식한 신발을 신은 자와 붉은 색 재전裁剪을 가진 자들을 모두 구속하고, 심지어 사람들 가운데 떡을 파는 자들을 금하여, 그들로 하여금 생활을 할 수 없게 하니, 사람들이 몹시 이를 괴로워한다. 사헌부를 불러서, 이를 말하여 이와 같이 하지 말도록 하라.”(성종 1(1470) 6월 기미(12))

 

예종대에는 꾸미개와 탈 것(옥교자)에 대한 규제가 나타난다. 성종대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규제 완화 조치가 보이고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았지만, 신라의 사치 풍속에 대한 규제와 조선 초기 사치 풍속에 대한 규제가 있었다면 고려 때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틈이 나는대로 정리하여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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