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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풍속 규제 하나 Corean Clio

삼국사기의 편찬 책임자 김부식金富軾은 고려의 관복이 당시 송 관료의 눈에 보기에 하상주夏商周 때의 것으로 보였다고 전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당의 제도에서 비롯한 것처럼 전하고 있다. 한편, 삼국사기33 잡지2에 실려 있는 색복色服차기車騎기용器用옥사屋舍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 국가의 규제가 매우 심하였다는 이면에 그만큼 사치스럽고 화려한 풍속을 유지한 신라 인민들이 떠오른다. , 신라 흥덕왕이 즉위한 지 9(단기 3166, 서기 838)에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린다: “사람은 위 아래가 있고, 지위에도 높고 낮음이 있어서 명식과 법례가 같지 않으며 의복 또한 다르다. 풍속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민들이 사치와 호화를 다투어 외래품의 진기함만을 좋아한 나머지 도리어 우리의 순박함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에 옛 법전에 따라 명확하게 법령을 선포하니, 고의로 이를 어기면 진실로 국법대로 처벌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골부터 일반 인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입었던 옷부터 꾸미개는 물론이고, 소와 말 등 탈 것, 그릇, 집의 크기와 재료 따위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보이고 있다.

 

도평의사사에서 아뢰었다: “내년 설부터 비로소 조정에서 제정한 관복冠服을 입게 하고 예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정하게 하니, 예조에서, ‘1품은 홍포紅袍서대犀帶, 2품에서 판각문判閣門 이상은 홍포紅袍 여지금대荔枝金帶, 3, 4품은 청포靑袍흑각혁대黑角革帶상홀象笏이요, 5, 6품은 청포靑袍흑각혁대黑角革帶목홀木笏이요, 7품 이하는 녹포綠袍, 와 홀5, 6품과 같고, ()은 모두 검은 빛깔로 사용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태조 1(1392) 12월 무오(12))

 

여기서 조정은 명의 조정을 가리킨다. 개국한 지 불과 4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관복을 명의 형태로 바꾸고자 한다. 비록 이듬해부터 실시한다고 하였지만, 아마도 개국 직후 들락거리는 명의 사신들의 눈을 염두에 둔 까닭이리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아직은 궁궐 출입 관료에 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신라 흥덕왕 때의 규제와 비슷한 사례가 나타난다. , 궁궐 출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치품이라 여겨질 수 있는 물품을 규제하고 있다.

 

도평의사사에서 예조가 자세하게 정한 장계狀啓를 갖추어 아뢰었다: “진상하는 의식 용품 이외에는 신하들은 금을 쓰지 못하고, 의정부와 중추원 이외에는 명주와 비단과 옥영자玉纓子옥환자玉環子를 쓰지 못하며, 가선대부嘉善大夫 이하 6품 이상은 술잔 외에 은을 쓰지 못하고, 7품 이하도 술잔을 은으로 쓰지 못하게 하되, 품대品帶와 대성臺省 관원들의 정자頂子는 여기에 구애되지 말 것입니다. 서민이나 공업자상업자들과 하인들은 비록 직품이 있더라도 은과 명주며 사피斜皮는 쓰지 못하게 하고, 혼인하는 사람들이라도 역시 직품에 따라 참람하게 쓰지 못하도록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태조 3(1394) 6월 갑오(26))

 

여기서 의정부와 중추원은 원문에서는 양부兩府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고려의 제도에서 비롯한다. 아직은 고려의 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명주와 비단은 원문에서는 각각 사라紗羅능기綾綺로 되어 있다. 사라는 깁이라고 하는데,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이라고 한다. 능기는 무늬가 있고 광택이 나는 비단 정도로 새기고자 한다. 옥영자는 옥으로 만든 갓끈, 옥환자는 옥으로 만든 망건 단추 정도로 새기고자 한다. 품대는 관복에 두르던 띠다. 정자는 증자鏳子라고도 하는데, 전립 따위의 모자 위에 꼭지처럼 만들어 달던 꾸밈새 정도로 새기고자 한다. 서민 이하에 보이는 명주는 원문에 으로 되어 있는데, 얇고 성기게 짠 무늬 없는 흰 깁이라고 한다. 사피는 장구의 줄을 늦추었다 졸랐다 할 때 쓰는 가죽고리 또는 돈피獤皮라고 한다. 여기서는 뒤의 돈피 곧, 잘가죽이라 여겨진다. 국역 실록에서 이를 가죽고리라고 한 것은 분명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빛깔을 나타내는 꾸밈씨가 앞에 오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남사피藍斜皮청사피靑斜皮자사피紫斜皮청자사피靑紫斜皮흑사피黑斜皮홍사피紅斜皮각색사피各色斜皮 따위가 그것이다. 주로 혜등의 신발과 어울리고 있어서 신발의 주재료라 여겨진다. 일단 자료를 통해 조선 초기 규제 대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위 관료라 할지라도 금을 비롯하여 명주비단옥영자옥환자 따위는 쓰지 못한다.

2) 가선대부 이하 6품 이상은 술잔 외에 은을 쓰지 못하고, 7품 이하는 술잔도 은으로 만들지 못한다.

3) 직품이 있는 서민이나 공노비들은 명주와 사피를 쓰지 못한다.

 

태조 3년의 풍속 규제 실록 원문

_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얻음

 

사헌부에서 금은金銀채단彩段의 금령을 더욱 엄하게 하였다.(태조 3(1394) 10월 신미(5))

 

앞서 6월 도평의사사에서 개진한 금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듯하다. 4개월 만에 사헌부에서 더욱 엄하게 한다는 조치가 나온다. 그리고는 불과 3일 만에 시쳇말로 시범케이스에 걸린 이지숭과 김천구가 벼슬을 파면당하고 순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장군 이지숭李之崇의 벼슬을 파면하고, 전 전서典書 김천구金千具를 순군巡軍에 가두었다. 이는 사헌부에서 채단 옷을 입었다고 탄핵한 까닭이었다.(태조 3(1394) 10월 갑술(8))

 

이어 대간의 관모에는 도리 옥관자를 못 붙이게 한다.

 

대간의 도리 옥관자玉貫子를 못하게 하였다.(태조 3(1394) 12월 기축(24))

 

이러한 규제 조치들은 세종대에 들어와 손질을 거쳐 법제화된다. 


사헌부에서 아뢰었다:

대소 인원들 또는 해마다 수교受敎를 알지 못하여 법을 범하는 자가 꽤 많으니, 청컨대 금령의 조문을 요약하여 글판을 만들어서 광화문 밖과 도성의 각 문과 종루鍾樓 등지에 걸어서 다 알게 하소서.

1. 혼인하는 집에서 사위를 맞는 날 저녁에, 성찬盛饌을 차려서 먼저 사위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3일에 이르러 유밀과油蜜果 (태종 18(1418) 1월 계유(22); 세종 즉위년(1418) 12월 임진(17)일 참조)으로 큰 상을 거의 사방 열 자 폭이나 되도록 가득하게 차려서 사위와 신부에게 주고, 그 퇴물을 거두어 싸서 시집으로 보내며, 또 사위를 맞은 이튿날에 축하객이 뜰을 메우도록 밀려 와서 잔치하고 즐기는 등의 일은 일절 금지할 것이며,

1. 혼인할 때, 본래 은대銀帶를 띠지 못하는 자는 시산時散의 직품에 따라 각대角帶와 실 때(絛兒)를 사용하게 할 것이며, 횃불은 2품 이상의 집에서는 열 자루, 3품 이하는 여섯 자루로 하되, 여자의 집에서도 이와 같이 하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대소 부녀를 수종하는 여종의 복장은 말군襪裙을 입지 못하게 하고 입모笠帽는 다만 모시와 베만을 써서 만들고, 비단을 쓰는 것은 허락하지 말며, 모첨帽襜의 길이도 주부主婦와 같게 하지 못할 것이니, 주부의 모첨 길이가 한 자이면, 수종하는 종의 것의 길이는 반 자로 하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뵙는 날에 가지고 가는 찬품饌品은 오성五星 2, 2(), 삼미三味의 탕 등 합계 7이며, 거느리고 가는 사람은 유모乳母 1, 시비侍婢 2, 노자奴子 10인을 넘지 말 것이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대개 부녀로서 부모나 시부모나 남편의 상복을 입는 자는, 종실로부터 사서인士庶人에 이르기까지 1백 일 안에 복을 벗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3년의 상기를 마칠 때까지의 입모와 의복은 모두 거친 생베(生麤布)로 하여야 하며, 남자로서 참최斬衰의 복을 입은 자는 말을 타고 서울 큰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기년期年의 복을 입어야 할 친족의 상을 당하면, 비록 30일에 복을 벗더라도 백 일이 지나지 않고서는 혼인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대소 신민은 종묘 앞길이나 대궐문 앞길에는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은 금지할 것이며,

1. 대소 인원이 궁궐 안에서 호궤胡跪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각 관청에서의 조회례朝會禮를 마친 뒤에 옷을 터는 일을 금지할 것이며,

1. 산직時散職을 막론하고 대소 인원의 회색 의복을 금지할 것이며,

1. 대소 인원 및 공상인工商人의 기자화起子靴를 금지할 것이며,

1. 상하 의복의 샛수(升數)는 등분이 없으나, 모시베와 명주무명과 무늬를 놓아 섞어 짠 것은, 1품부터 양반의 자제에 이르기까지는 12 새 이하로 하고, 공인상인과 천인과 하인배는 8새 이하로 하며, 잘옷(貂裘)은 양반의 자제 이외에 공인상인과 천인과 하인은 그것을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어기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금이나 은으로 불경을 베껴 쓰거나, 불상에 도금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대소의 남녀를 막론하고 황색 의복을 금지할 것이며,

1. 대소 인원의 주육색肉色의 말다래()는 금지할 것이며,

1. 각 품관의 금은대에 홍색 가죽으로 장식함은 이를 금지할 것이며,

1. 진상하는 의대衣襨와 대궐 내에서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색紫色 의복은 경술년(세종12, 1430)부터 이를 금지할 것이며,

1. 서민과 공인상인천인하인은 사피로 만든 화혜와 초자綃子로 만든 의복은 금지할 것이며,

1. 부녀자가 사찰에 가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중이 과붓집에 출입함을 금지할 것이며,

1. 5, 6품 관원으로서 쌍수아雙穗兒, 참외관參外官으로서 수아穗兒가 있는 추비鞦轡를 사용함을 금지할 것이며,

1. 양반의 부녀자로서 모첨을 걷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토홍土紅옥색玉色의 의복은 사신의 영접과 대소의 조회에서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를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대소 인원이 노제路祭에 불법 의식을 배설함을 금지할 것이며,

1. 불가의 법을 써서 망자의 명복을 빌고자 할 때에는, 대부사서인을 막론하고 모두 산과 물이 정결한 곳으로 나아가서 다만 수륙재만 베풀 것이며, 그 일을 마련하고 거행하는 것은 속인으로서는 하지 못하게 하고, 모두 중이 이를 주관하게 하고, 빈소를 지키는 상주 이외에 자손 1, 2인이 가서 참여할 것이며, 이밖에 잡인은 비록 재를 베푼 다음날이라도 참예함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를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대부와 사서인의 상사에 법석을 베푸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금과 은은 본국의 소산이 아니므로 진상하는 의복과 기명, 또는 대궐 안의 술그릇, 중국 사신에게 접대하는 기명과 조관의 품대, 명부의 수식, 사대의 자제들의 귀고리(耳環), 기생의 수식 이외의 기명과, 은을 녹여 부어 만들거나 도금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진상하는 복식과 어용 기물 이외에는 주홍칠을 하거나, 자사피를 쓰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철물로 주조한 기명은 사사로이 매매함을 금지할 것이며,

1. 대군大君 이하 동서반 각 품관으로서 조회 길에 거느리고 다니는 구사丘史는 공사인을 물론하고, 대군은 10, 1품은 9, 1품은 8, 2품은 7, 2품은 6, 3품 중에 통정通政5, 통훈通訓4명이며, 3품부터 4품까지는 3, 5, 6품부터 9품까지는 2, 양반의 자제로서 관직 없는 자는 1명인데, 비나 눈이 올 경우에는 사구사私丘史 2명을 더하고, 2품 이상의 관원이 노병老病으로 교자轎子를 타게 될 경우에는 사구사 6명을 더하며, 5, 6품의 대간원臺諫院1명을 더하게 하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대선大選에 합격한 자 이외에 도첩이 없는 중은 그 소재지의 관사에서 율에 따라 논죄하여 환속시켜 차역差役하게 하고, 도첩을 빌린 자와 빌어 준 자를 아울러 함께 율에 따라 논죄할 것이며,

1. 우마牛馬의 도살은 일찍이 금령이 있었으니 대소 인원은 그 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며, 저절로 죽은 것은 서울에서는 한성부에서 검사하여 낙인烙印하고, 외방에서는 그 고을에서 검사한 공문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 매매를 허락하고, 어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진상할 것 이외에 패가 없이 응자鷹子를 놓아 사냥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전지傳旨를 받은 긴급한 일 이외에 성내에서 말을 달리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대소 인원이 집정 가문執政家門에 분경奔競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화문석花紋席은 명에 헌납하거나 국가에서 사용할 것 이외에는 일절 모두 금지할 것이며,

1. 배표拜表할 때에 각 품 관원의 말은 직품에 따라 대궐문 밖에 동서에 나누어 두었다가 차례로 나와서 타고 가게 하고, 이를 어기는 것은 금지할 것이며,

1. 직사職事가 있는 인원으로서 백색 옷을 입는 것은 금지할 것이며,

1. 성내에서 풍악을 울리며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상인常人들이 성내에서 말을 타는 것을 금지할 것이며,

1. 공인상인천인하인들은 진수정眞水精이나, 산호珊瑚로 만든 영자纓子와 운월아雲月兒를 착용함을 금지할 것이며,

1. 승려들의 흑세마포黑細麻布 의복을 금지할 것이며,

1. 상인들은 투혜套鞋를 금지하게 하소서.”

그대로 따랐다. 처음에 임금이 금령의 조문을 보고 말하였다: “만일에 부자 형제나 족친族親이 먼 곳에 있어 왕래하는 이가 있으면, 그 영접과 전송의 연회가 없을 수 없고, 부모에게 헌수獻壽하게 되면 연회와 음주가 없을 수 없으며, 그 밖에 간절하지 않은 영접과 전별에 연음宴飮은 엄중히 금하는 것이 옳으나, 하나 같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 하고, 드디어 삭제하라고 명하였다.(세종 11(1429) 2월 신사(5))




덧글

  • 곰늑대 2013/05/27 08:26 # 답글

    사치에 대한 문제가 분명 없을 수는 없겠지만서도 중점을 즐길수있을만큼의 경제적 향상이 아닌 절약과 소비억제로 몰아가는건 문제네요.
  • 고리아이 2013/05/27 09:30 #

    조선이 성리학을 지배 이념을 삼았기 때문에
    신라나 고려보다 더 사치에 대해 규제가 심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지영
    그렇지만, 성종대에 접어들면 "압구정"으로 대표되는 사치풍조가 서서히 달아올라
    연산군이 그 꽃을 피운다고 하지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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