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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응成海應과 한탄강 고리아이는 누굴까?

허목과 신경준, 이긍익에 이어 한탄강을 역사지리학/인문지리학 시각으로 접근한 이가 성해응(成海應, 1760: 영조361839: 현종5)이다. 그는 포천 소흘읍 초가팔리가 고향이며, 가산면 금현리에 영면해 있다고 한다. 성해응은 동시대 이덕무(李德懋, 1741: 영조171793: 정조17유득공(柳得恭, 1749: 영조25?)박제가(朴齊家, 1750: 영조261805: 순조5) 등 북학파 인사들과 적게는 10여 살의 나이차에도 규장각 검서관을 지내면서 교유하고, 각종 서적을 광범위하게 섭렵하여 학문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의 학문은 본집외집별집으로 구성된 연경재전집(188102. 간행 연대는 1840(헌종6)경으로 추정)의 방대한 문집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풍속서적, 심지어 금수곤충에 이르기까지 넓은 폭을 보이지만,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이 사람에게 절실한 학문으로서 서로 표리가 된다고 하여 그 두 학문에 진력하였다. 특히, 경학에 주력했으며 예기시경에 대한 저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 연구는 체계를 갖춘 큰 저술은 없으나, 우리나라의 전승과 지리, 중국의 역대 제왕과 왕실 및 유민遺民, 조선과 중국의 관계, 풍속과 법제, 그리고 경제에 대한 자료 등을 남겼다. 실학 전성기의 인물로서, 조선 후기 주자학에 대한 발전적 비판 내지 저항이 줄기차게 계속될 때 경학의 이념적 굴레를 탈피하려는 박학적博學的이고도 고증학적 경향을 보인 학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김기빈(金圻彬) <해제 연경재전집>, 한국고전번역원누리집; 吳洙彰 1991 <성해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5567; 朴性學 1991 <연경재전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5; 2812). 성해응의 학문적 이력과 내용을 볼 때, 감히 한강 이남에 다산이 있었다면, 한강 이북에는 연경재가 있었다고 호언할 수 있겠으며, 앞으로 경기 북부의 지역 문화 자원과 관련하여, 청성잡기靑城雜記로 이름난 그의 아버지 성대중(成大中, 1732: 영조81812: 순조12)과 함께 꼭 짚고 가야할 인물이라 하겠다.

성해응이 한탄강과 관련하여 남긴 글은 먼저 영평현 지역의 산수를 기행하고 살핀 <기동음산수記洞陰山水>에 보이고 있다.

 

화적연禾積淵의 수원水源은 청화산에서 발원하여 화강의 물과 합치고, 철원을 지나면서 일곱 못()8만 바위가 된다. 영평永平 북쪽에 이르러 못이 되는데, 서지점西池店에서 몇 리 정도 들어가면 이른다. 소나무 숲을 뚫은 한 기슭 아래 내가 그 앞에서 가로 지르는데, 물빛의 맑음이 푸른 옥(碧玉) 같다. 좌우의 비취빛 벼랑에는 여러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고, 내 가운데 바위의 힘찬 생김새는 거북이 엎드린 모습 같다. 바위 한 봉우리가 국자 자루처럼 서있는 것이 벼낟가리 같아 이 때문에 이름이 되었다. 봉우리 위에는 단 샘(甘泉)이 있는데, 아주 맑고, 곁에 용굴이 있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바위 아래 작은 구멍은 깊이를 알 수 없고, 빛깔은 아주 검다. 만일 신물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용은 바위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돌이 가로 세로로 뚫려 있는데, 혹 과연 그럴까. 바위 위에 제단이 있는데, 가뭄에 희생과 제물을 쓰고, 중사에 올라 있다(<기동음산수> 연경재전집50).

 

 

화적연

 

오늘날 한탄강 영북면 지경에 있는 벼낟가리[禾積淵, 어릴 적 동네에서는 이렇게 불렸다.]로 흐르는 물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는데, 대체로 허목의 기록과 닮았다. 다만, 앞서 허목이 살핀 한탄강에서도 칠담七潭일곱 못’, ‘팔만암八萬巖‘8만 바위로 새겨 보았는데, 특정 지명인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야 할 내용이다. ‘서지점이라는 지명은 오늘날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소나무 숲을 지나 화적연에 이르면, 바위의 힘찬 생김새는 거북이 엎드린 모습과 같다고 하였는데, 정말 닮았다. 다만, 소나무 숲은 없어졌다. 바위 한 봉우리가 국가 자루처럼 서 있는 것이 벼낟가리 같기 때문에 이름이 화적연이 되었다고 전한다. 봉우리 위에는 단 샘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곁에 용굴이 있다고 했는데, 이 또한 확인하지 못했다. 바위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구멍이 있다는데, 이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바위 위에 제단이 있다고 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바위 위에 작은 인공의 구멍을 볼 수는 있었다.

이어 <동수경>에서는 한탄강의 전체적인 소개를 보여주고 있다.

 

대탄강 근원은 회양 쌍령의 송관리다. 남으로 흘러 말흘천이 되고, 당탄唐灘이 된다. 적실원을 지나 고랑의 명승지가 되고, 남으로 평강의 정자가 된다. 물이 큰 벌판 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평탄한 언덕을 휘휘 도는데, 강기슭 돌벼랑은 병풍 같다. 정자와 다락이 숲 가운데 이르고 무릉武陵이라는 다리가 있다. 철원 지역에 들어와 체천砌川이 되는데, 양 기슭에 가로지른 돌이 섬돌을 가지런히 쌓은 것 같아 이름 하게 되었다. 또 고석정孤石亭, 순담蓴潭이 있는데, 정자는 절벽에 있고, 위에 오르려면 작은 굴을 통하여야 한다. 신라 진평왕이 비가 있다고 전하는데, 이제는 없다. 못에 순채가 있기에 이름 하게 되었다. 그 서쪽 끝에는 청간정聽澗亭, 동쪽 끝에는 한서정閒栖亭이 있다. 물빛은 검은 빛을 띤 푸른빛으로 아주 검다. 또 남으로 흘러 영평永平의 화적연이 되는데, 높게 솟은 돌이 낟가리를 쌓은 듯하며 10자 정도 된다. 위에는 아주 맑고 단 물이 괴어 있다. 곁에는 용굴이 있는 가뭄 때마다 기도를 한다. 물의 맑기가 벽옥 같고, 여러 바위에서 물이 올라오는 것이 거북이 엎드린 듯하다. 왼쪽과 오른쪽에 소나무 숲이 있다. 또 흘러 마하천이 되고 양주 청송리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대탄大灘이 된다. 대탄大灘 위로는 큰 내가 둘이 있는데, 김화金化 불정산佛頂山의 남천南川, 양주 축석령祝石嶺의 백호천으로 영평 백운산白雲山의 내로 함께 들어간다. 종담의 하류에 서쪽으로 가사평袈裟坪이 이르러 연진淵津, 신직진神直津, 술탄戍灘이 되며, 적성현積城縣에 이르러 동포銅浦가 된다(<동수경> 연경재전집외집44).

 

이 글은 <기동음산수>와 약간 다르다. 대체로 신경준의 기록을 따르고 있다. 다만, 무릉이라는 이름이 다리와 고석정의 진평왕 빗돌, 그리고 순담 서쪽 끝에 있는 청간정과 한서정을 더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신경준은 양주 불곡산의 초촌천에서 대탄이 된다고 하였는데, 성해응은 양주 청송리에서 대탄이 된다고 하였다. 살펴볼 일이다. 선생이 영면한 곳이 가산이라고 한다. 억지로 틈을 내어서라도 막걸리 한 잔 부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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