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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許穆과 한탄강 고리아이는 누굴까?

한탄강과 관련한 역사지리학/인문지리학 자료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와서야 비로소 풍부해진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 가운데 한탄강의 자연과 지리에 처음 관심을 둔 이가 허목(1595: 선조28~1682: 숙종8)이다. 그는 1680(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 때문에 경기도 연천으로 낙향한 뒤 학문과 후진을 양성하였다(金吉煥 1980 <許穆學問思想> 韓國學報18, 一志社). 그러던 그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탄강 가에 있는 볏가리못(禾積淵)을 방문하고 남긴 <화적연기禾積淵記>(기언記言27)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체천砌川의 물은 청화산靑華山에서 발원하여 화강花江의 물과 합치고, 육창陸昌을 지나면서 일곱 못(七潭)8만 바위(八萬巖)가 된다. 영평永平 북쪽에 이르러 화적연禾積淵이 되는데, 동쪽 기슭이 길며 소나무 숲이다. 그 아래 바위마당이 있는데, 모두 흰 돌이다. 북쪽에 석봉이 있는데 물속에서 나와 서 있다. 100 자 위의 장마에 괸 물이 달고도 아주 맑아 사람이 마시면 기운을 북돋운다. 곁에 용굴이 있고, 돌 아래 끝이 없는 작은 구덩이와 구멍이 있다. 물은 굽이 쳐 돌아 남쪽 기슭에 닿아 푸른 벼랑에 가라앉은 못이 된다. 돌 위에는 소나무가 많고, 바위 마당은 제단(祀壇)이 되는데, 가뭄에 희생과 제물을 쓰고, 중사中祀에 올라 있다. 상류에 고석정이 15리 정도에 있다. 화적연의 물은 서쪽으로 흘러 청송靑松에 이르러 북으로 백운계白雲溪와 합치고, 그 하류가 대탄大灘이다. 또 대탄 아래 소나무 숲 절벽이 있는데, 송우松隅가 된다.

△ 볏가리못(禾積淵) 중사中祀 제단祭壇 유적 

조선 후기 인물 가운데 한탄강의 발원지와 경유지, 그리고 임진강 합류지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라 하겠다. 여기서 체천은 앞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한탄강 상류 부분의 이름이다. 청화산은 강원도 회양에 있는 산이다. 화강은 허목의 <증정군산수지로기贈鄭君山水指路記>(기언별집記言別集9)에서 영평 서쪽 우두연牛頭淵에 있다고 되어 있고, 우두연은 금수정金水亭이 있는 곳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육창이 철원의 옛 이름(세종실록지리지경기 철원도호부; 신증동국여지승람47 강원도 철원도호부)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화강은 철원보다 상류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허목은 철원보다 하류인 영평 서쪽 금수정이 있는 곳을 화강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가 있어야겠다. 어쨌든, 영평 북쪽에 이르러 강물은 볏가리못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동쪽 기슭은 소나무 숲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볏가리못 바위 마당은 돌이 흰빛을 띠고 북쪽에 돌로 된 봉우리가 있는데, 길이가 100자라고 한다. 그 위에 움푹 파인 부분이 있는지 장마에 물이 괴어 달고도 아주 맑아 사람이 마시면 기운을 북돋운다고 한다. 그 곁에는 용굴이라는 이름의 굴이 있고, 그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작은 구덩이와 구멍이 있다고 한다. 흰빛을 띤 바위마당은 제단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가뭄에 제수를 차리고 기우제를 지내며, 국가의 중사에 올라 있다고 한다. 볏가리못의 상류는 고석정, 하류는 청송에서 백운계와 합치고 대탄이 된다고 한다. 한편, 위에서 짧게 소개한 허목의 다른 기록인 <증정군산수지로기>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강烏江은 호리병 아가리와 같은 골짜기를 지나는데, 그 위에는 소나무 돌벼랑에는 소나무가 빽빽하고, 옛 성이 있는데, 절경이라고 한다. 또 그 위에 대탄이 있는데, 청송골 입구가 된다. 골짜기에는 놀만한 산과 물이 많다. 대탄 동쪽 20리에는 창옥병이 있고, 박 정승 사당이 있는데, 물 가운데 석봉을 볼 수 있고, 돌에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동쪽으로 몇 리 너머에 금수정金水亭이 우두연牛頭淵 위에 있는데, 못 위에(淵上) 또한 봉래 시가 새겨져 있다. 그 글씨 또한 뛰어나다. 그 상류 20리에는 백로주白鷺洲라 하여 칠리탄七里灘 아래에 있다. 물이 서쪽으로 흘러 백운계白雲溪의 물과 더불어 합치고, 영평 서쪽을 질펀하게 돌아 우두연牛頭淵 화강花江의 물이 되고, 영평 30리에 미치지 못하여 화적연이 된다. 못 가운데(淵中) 석봉이 있는데, 높아서 오를 수가 없고, 못 위는 모두 기이하고 험하며 가파른 기슭으로 되어 있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진달래가 많다. 또 그 북쪽 상류 10여 리 고석정에 물 가운데 돌들이 쌓여 있다(層石). 푸름이 아주 뛰어나고, 물이 깊으며 이끼가 미끄러워 사다리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그 상류에는 또 일곱 못(七潭)8만 바위(八萬碞)가 있고, 그 위에 황씨黃氏의 별장(別業)이 있다. 화적연에서 10여 리에 용화산龍華山이 있는데, 산에는 삼대폭포(三大瀑)가 있다. 폭포 아래에 세 개의 돌 못(石潭)이 있어 삼부三釜라고 한다. 맥족 풍속(貊俗) 방언에 폭포를 이라고 일컫는데, 삼부락三釜落이라고 하는 것이 이곳이다. 그 위에 용화사龍華寺가 있다. 백운산白雲山은 영평 동북쪽 60리에 있는데, 물은 아주 멀고, 산은 아주 깊어 서울 북쪽 산수의 오지라 하겠다. 백운산 물과 돌은 가장 뛰어나다(最奇)고 한다. 그 밖의 춘천(壽春)의 사탄史呑 또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이다. 지나 온 기록을 정군에게 주니 산수를 놀러 다닐 때, 지침(指路)으로 삼았으면 한다. 병오년(1666, 현종7) 9(菊秋) 하순 미수 씀.

 

이 내용은 볏가리못 뿐만 아니라 대체로 한탄강 상류와 지류인 오강, 창옥병, 우두연, 칠리탄, 고석정, 삼부연, 백운산 등을 돌아 본 허목이 짤막하게 소개한 글이다. 창옥병 가까이에 있는 박 정승 사당은 박순(朴淳, 1523: 중종181589: 선조22)을 기리는 옥병서원을 가리킨다. 볏가리못과 관련해서는 <화적연기>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바로 볏가리못 주변 자연 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기이하고 험하며 가파른 기슭으로 되어 있으며, 소나무 외에도 단풍나무와 진달래가 많다고 전하고 있다. 볏가리못의 인문학적 보고인, 바위마당은 제단으로 쓰여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고, 중사에 올라있다는 내용이 빠져 있다. 또한 볏가리못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북쪽 석봉의 길이와 그 위에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괸 사실(이 부분도 물이 사람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이야기와 함께 미루어볼 때, 사람의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보고에 가깝다)도 빠져 있다. 허목이 1628(인조 6) 인조의 정원대원군 국왕 추숭론追崇論에 반대하여 임금으로부터 정거停擧의 벌을 받자 명승고적을 유람하면서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하는데(위키백과), <증정군산수지로기>를 지을 때(1666)와 경신환국 때문에 연천으로 이거할 때(1680)를 염두에 둔다면, <화적연기><증정군산수지로기>보다 나중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자연 환경에 관한 이야기가 인문학적 보고보다 먼저 나오고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특정 단일한 보고보다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대해 딱 꼬집어 과학적Scientific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느껴지기에 <증정군산수지로기>보다 <화적연기>가 나중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허목의 <소요산기逍遙山記>(기언별집9)<종담수석기鐘潭水石記>(기언별집9)를 통하여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대탄大灘에 관한 짧은 기록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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