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의 전면전(1948, 1965, 1971)과 함께 일상적 총격전이 인도 반도에서 되풀이하고 있다면?
인도 반도는 왜 분할되었는가?
영국의 분할통치 정책 : 배타적 종파주의
인도 독립투쟁을 주도한 정당 ‘국민의회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해심 결여 : 여성참정권과 불가촉천민의 차별 언급, 무슬림에 대한 몰이해, 느슨한 연방국보다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바람
정당 ‘무슬림 연맹’의 ‘세속적인’ 야심 : 두 민족론(two-nation theory)
분리독립 당시 파키스탄 쪽에서는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인도 쪽에서는 무슬림이 약 1,000만 명 이주하였고, 종파 간 폭동으로 100만 명 정도가 희생당함.
파키스탄의 상황
1. 경제와 사회 발전, 인프라 정비 등 많은 부분에서 열악한 조건
2. 정당 조직과 경험의 차이가 있음
3. 진나의 사망(1948), 리아가트 알리 칸의 암살(1951) : 지도자의 부재
4. 중간층 지도자가 이주민으로 국가적 기반이 약해 군과 관료에 의지하는 중앙집권국가를 지향하게 됨
5. ‘무슬림국가’의 건설 문제 : 원리주의와 온건파의 대립(인도의 경우 힌두교도가 82%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세속국가’로 독립함. 인도의 국가 원칙은 세속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카슈미르 문제
1. 카슈미르 지역의 마하라자Maharaja는 힌두교, 주민은 무슬림이라는 문제
2.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할 당시 망설이고 있었다.
3. 카슈미르의 탈레반 :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의미로 이슬람 종교학교의 학생을 가리킨다. 1980년대 파키스탄에 세워진 1만 여개의 종교학교에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난민이 교육을 받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이들이 귀환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혁명적 상황으로 만들었지만, 알카에다와의 결합하면서 과격해졌고, 9.11사건으로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희생양으로 삼음. 방글라데시의 독립 이후 취약해진 파키스탄이 선택한 대리전쟁과 핵병기 확보와 함께 탈레반을 이용,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이 카슈미르의 무슬림 투사를 훈련하고 원군을 파견.
남는 문제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분리독립이 영국령 인도의 단순한 영토 분할이 아니라, 국가의 기초가 되는 정체성이 상대의 입장을 정면에서 부정한다는 점이 최대 요인이 되었다.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외부의 압력은 분쟁을 재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사자 서로가 합의하도록 이끄는 것이 선결과제다.
히로세 다카코의 글을 통해 한반도 분단 극복과 재통일을 위한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리해보았어영
맺음말에서 비록 카슈미르 문제에 국한하였지만, “외부의 압력보다는 당사자 서로가 합의하도록 국제사회가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은 분명 유효한 시점이라고 여겨지네영^_^))
영국과 일본의 세계사적 조망
1. 영ㆍ일동맹의 역사(1902, 1095, 1911)
2. 입헌군주제와 양원제
3. 중세 계급이 실제하고 있는 국가(왕족ㆍ귀족ㆍ평민 따위)

히로세 다카코廣瀨崇子 2007 <분리독립에 따른 트라우마로서의 유산: 인도와 파키스탄> ≪역사: 아시아 만들기와 그 방식≫(박진우 옮김), 한울, 68-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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