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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근 안 된다!!!_바오닌Bao Ninh Corean Thought Clio

9.11테러 이후 세계는 급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 테러사건은 세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국제 테러리즘이 1920세기에 제국주의가 행한 침략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약탈이고 파괴이며 살육인 것이다. 양쪽 모두 죄 없는 사람을 무차별하게 대량 학살한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따른) 19451954년 사이에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치른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 10년간에 걸친 테러 행위였다. 프랑스군에게 베트남인은 황색 피부의 노예일 뿐이고 반항하면 죽이면 그만이었다. 베트남 마을을 공격하면서 프랑스군이 실시한 전략은 모두 태우고 모두 파괴하고 모두 죽이는것이었다.

그 후 11년 뒤인 1965, 미군이 베트남에 상륙했다. 미군의 행동은 프랑스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을 태우고,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이 자행한 테러의 규모와 잔학성은 프랑스군보다 수백 배나 더했다. 베트남 전쟁이 특히 비참한 이유는 단순히 베트남과 미국 양국의 군사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베트남 민간인이다. 미국, 한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문명국의 근대적 군대가 베트남에서 전근대적인 대학살을 수없이 되풀이한 것이다. 미국,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눈에 베트남인은 모두 공산 게릴라로 비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상대가 노인이든, 여자나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아무나 죽여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1969년 필자가 소속한 대대의 공격으로 한국군은 많은 병사를 잃었다. 당시 쾅가이Quang Ngai 성 선틴 현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청룡사단은 그 분풀이로 전투 구역 내의 두 개 마을 주민을 모두 학살했다. 절 옆에 있는 500제곱미터 정도의 공터에는 무려 1,000여 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남자라고는 모두 늙은 승려뿐이었다. 1972년 우리 사단이 콘툼Kontum 성으로 진격했을 때 월남정부의 군인, 관료들과 그 가족 5,000명 정도가 콩호린 마을로 피난하여 미군의 구조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은 동맹자인 그들을 헬기에 실어 사이공까지 구출해내야 했지만, B-52기로 폭탄을 투하하여 구조를 기다리던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5,000여 명을 한꺼번에 죽인 그 역겹고 잔혹한 광경은 필자의 뇌리에 각인되어 아직도 떠나지 않는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평화는 깃들지 않았다. 금세기의 전쟁은 20세기의 전쟁보다 더욱 비참한 결과를 남길 것이다.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1년이 지났지만 테러의 위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 행위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일로에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전쟁으로 전쟁을 수습하는 것, 피로 피를 씻어내는 것, 원한으로 원한을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에 전쟁이 가져다준 가장 위대한 교훈이지만, 21세기의 인류는 그것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그럼 왜 20세기에 테러리즘이 일소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인류가 테러리즘에 대한 통일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인식에는 대국에 의한 침략전쟁은 빈 라덴의 테러리즘보다 문명적이고, 승복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세계의 대국이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테러를 당했을 때뿐이다. 대체로 대국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테러리즘을 키우고 이용해왔다.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기만적인 태도는 전쟁으로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행위일 뿐이며 인류를 패배에 빠트릴 따름이다. 21세기에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대국이, 가난한 나라가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원조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일본인과 미국인은 자국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일보다 다른 국가의 생활 향상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 만약 미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가 21세기를 이 세상의 마지막 세기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어떤 전쟁이든 상관없이 그에 따른 위기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과거 세계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빗발치는 항의의 목소리는 워싱턴 정권이 베트남 전쟁을 속행하려는 의사를 버리게 했다.

인류를 전쟁의 참화와 테러리즘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뿐이다.


 △ 바오닌_중앙일보에서 얻음


이 글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전쟁을 기념함이 바를까 생각한 적이 있다(http://coreai84.egloos.com/10519697). 그러면서 감히 전쟁에 대한 극념克念이라는 개념을 제한하여 보았다. 이제 전쟁은/도 역사다.’라는 근대적 사고를 넘어서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기에 최근 놀라 자빠질(?) 정도의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사형제 부활의 움직임 또한 비판의 화살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이제 문득 느낀 몇 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이 글을 갈음하고자 한다.

 

먼저 링컨에게 미안하지만, 베트남인의, 베트남인에 의한, 베트남인을 위한 베트남 전쟁 영화를 이제 DMZ 이남에서도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날의 베트남은 예전의 베트남이 아니라 공산화한 베트남으로 보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베트남이 베트콩으로 국호가 바뀌었는지 단순하게라도 되묻고 싶다.

끝으로 말주변이 없어서 자꾸 주워와 예수에게 미안하지만, 미국인의 것은 미국인에게 돌리고 한반도인의 것은 한반도인에게 돌리라(공동번역바이블루가의복음서 20:25)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감히 되묻고 싶다.

이 땅의 역사가 언제 미국만의 것이었던가?

,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도 있겠다.

 

이 땅의 역사가 언제 박정희만의 것이었던가?

이 땅의 역사가 언제 이승만만의 것이었던가?

이 땅의 역사가 언제 일제만의 것이었던가?

이 땅의 역사가 언제 임금만의 것이었던가?

 

이제

이 땅의 역사는 이 땅에 두 발 딛고

이 땅을 믿고 이 땅을 갈고 거름을 주며

이 땅이 준 열매를 먹고 살아온 이 땅 인민들만의 것이라 말하고 싶다.

역사란 사람이 살면서 사랑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바오닌 2007 <전쟁으로 전쟁을 수습할 수는 없다> 역사: 아시아 만들기와 그 방식(박진우 옮김), 한울, 89102.




덧글

  • 零丁洋 2012/09/20 08:26 # 답글

    우리가 꿈꾸는 이성적이고 건강한 자유민으로서 인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진실을 비틀고 진심을 조롱하는 그런 구박받아 찌그러진 노예의 모습이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모습일지 모르죠. 그래도 희망은 있죠.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지친 인간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작아지고 흐미해졌으나 결코 사라지지않는 희망은 있죠.
  • 고리아이 2012/09/19 23:57 #

    그런 희망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감히 생각해보아영^_^))
    데데한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또 귀한 의견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영^_^))
  • 고리아이 2012/10/01 23:35 # 답글

    이 글을 정리하면서 처음에는 바오닌 선생이 베트남전쟁의 참혹함에도 가해국가의 테러리즘에 대한 연민을 그려보았는데, 곰곰 다시 생각해보니 승리자의 여유도 보이는 듯_결국 베트남은 이겼고, 재통일하였으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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