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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체’를 지키기 위한 의지와 표상공간_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 Modern Corean Clio

평양은 선고先考의 고향이다. 보통강 다리 너머 머지않은 곳에 당신께서 뛰어노시던 왕고王考의 옛집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평양 이야기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진다. 10여 년 전인가 평양의 별명이 유경柳京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제 유경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평양을 직접 방문하고 본 필자가 느낀 감흥을 다시 옮기는 것이기에 이 글을 보는 이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되겠지만, 아마도 필자는 민족적 유대를 강조하고 싶은 듯하다.

20015월 평양을 방문한 필자는 함경북도에서 칠보산을 거쳐 평양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보이는 여러 풍경을 감자밭과 선군정치’, ‘노동당 시절의 계단식 밭’, ‘강성대국 북한등으로 소개하는 가운데, 20세기 말 북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함께 곁들이고 있다. 그 가운데 읽는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19924월에 발표한 평양선언을 강성대국이라는 교화용 표어와 함께 경제적인 곤경과 카리스마의 죽음을 사회주의의 소중화(小中華)’적인 긍지로 극복하고자 한 비장의 의지가 흐르고 있다고 평가(223)한 부분이었다. 필자는 당시 네 번째 방문이라고 하였는데, 예전의 평양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듯하다. ‘장관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225). 그러면서도 평양의 밤거리는 윗부분만 조명을 밝히고 거리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데, 이는 평양을 현란하게 보이고자 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심시티(SimCity)라는 게임소프트를 연상시키는 모의 조형물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이제 주체의 수도 평양이라는 글의 마지막 세 문단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평양은 거대 건조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 천리마 상(1961), 일제시대의 평양신사 자리에 세운 조선혁명박물관(1972), 마치 가마쿠라의 대불大佛과도 같이 높이 25m에 이르는 김일성 동상(1972), 파리에 있는 것보다 10m 더 높다는 것이 자랑인 개선문(1972), 대동강변에 횃불을 들고 솟아 있는 170m의 주체사상탑(1982),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5.1경기장(1989), 거대한 삼각형의 모습을 한 유경호텔(미완성)은 지상 300m의 높이로 마치 우주선이 대지에 박힌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평양 거리를 만들어낸 정신은 아마도 보편적이거나 세계 제일에 대한 지향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중화문명의 주변에 속하면서도 억압과 회유를 타개해왔으며, 또한 해방 후에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위성국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독자성을 끊임없이 강조해온 일종의 기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기개를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라 부른다. 오늘날 이 나라의 국가이념인 주체사상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강성대국에 대한 대중교화, 즉 소비에트를 대신하여 세계 공산주의의 제2의 중심지라는 교화를 낳은 원천임과 동시에, 이 세계 제일의 전시(exhibition) 도시를 배후에서 환영과 같이 연출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이란 현실세계의 특수한 것을 보편적이거나 세계적인 것으로 허구화하는 비장하고도 강인한 의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은 남쪽 대한민국의 지식인, 나아가서는 민중 속에도 똑같이 깃들어 있는 분리할 수 없는 민족적인 유대인 것이다.

 

구글지도의 평양

 

후루타 히로시 2007 <평양: ‘주체를 지키기 위한 의지와 표상공간> 공간: 아시아를 묻는다(이강민 옮김). 한울 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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