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비롯하여 이 땅 누리집을 열었더니 광복절을 기리는 그림이 떴네영
다음과 네이버, 네이트는 모두 태극기를 꼬투리 삼았고
야후코리아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네영
그 가운데 구글이 기리는 광복절 그림이 가장 제 맘에 드네영^_^))
단군조선에 나오는 범이 앉아 웃는 가운데
어린 아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범 주위에 있고
갓 쓴 어린이는 범 등에 올라 대가리 바로 뒤에 있네영
예전 해방 당시를 경험한 세 역사학자(전석담ㆍ김성칠ㆍ이병도)의 글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새삼 다시 살펴보니 여전히 현재성 있는 글이라 여겨지기에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영
△ 다음이 기리는 광복절 그림
△ 네이트가 기리는 광복절 그림
△ 야후코리아 광복절 대문
△ 네이버가 기리는 광복절 그림

△ 구글이 기리는 광복절 그림
먼저, 전석담(전석담 1947 ≪조선사교정≫, 을유문화사; 1998 ≪민중조선사≫, 범우사, 143∼9쪽)은 2차대전에서의 일본제국주의의 패망과 민주주의의 승리였다고 평가하면서 해방으로의 길이 열렸다는 것과 그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은데, 곧 해방으로의 길이 열렸다 뿐이지 아직도 실현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한 사례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민주주의 임시정부의 수립과 이 정부에 의한 일제 잔재의 숙청 및 민주개혁이란 과업도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협의 대상 문제에서 벌써 좌절되고 말았다고 보면서, 시급히 풀어야할 과제로 경제적인 부문과 정신적인 부문 두 가지를 주문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부문으로는 토지제도의 개혁이었고, 정신적인 부문은 사대사상에 기원을 둔 외세의존의 노예근성을 버리며 또한 입신영달주의(立身榮達主義)에 입각한 투기적 진출을 삼가야 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김성칠(김성칠 1950 ≪고쳐쓴 조선역사≫, 대한금융조합연합회, 245∼7쪽)은 조선의 해방이라는 선물과 함께 연합군이 가지고 들어온 또 하나의 보따리를 38선이라고 하면서 삼십팔도선의 장벽이 우리들을 분발시키는 자극이 되고 우리의 통일을 촉진시키는 기틀이 되기를 바랐다.
끝으로 해방을 ‘아! 얼마나 시원한 일이냐’ 라고 당시 감정을 글자그대로 표현한 이병도(이병도 1948 ≪조선사대관≫, 동지사, 491∼494쪽)는 해방공간기를 ‘남북의 분열’, ‘사상의 혼란’, ‘경제의 불안’, ‘정치의 모순’ 등에서 비롯한 민족의 일대 위기 난관으로 보면서 ‘전란시 이상의 위험’이라 하였다. 한편, 미ㆍ소 양국 군대를 모두 점령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석담과 김성칠은 이 땅 인민의 자생력_전석담의 ‘우리의 힘’, 김성칠의 ‘잠세력’_을 강조하고 있으며, 세 분 모두 사대주의를 경계하고 있다(이병도의 민족 혹은 국가의 통일과 발전을 지도원리로 삼는 대아정신을 이 땅 인민의 자생력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사리사욕_전석담은 ‘입신영달주의’, 김성칠은 ‘자기 당파와 자기 개인의 이익’, 이병도는 ‘소아적 정신’_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방의 부정적인 내용을 극복하는 첫 발걸음을 전석담은 경제적ㆍ정신적 혁명에서 찾았고, 김성칠은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과 신라의 뛰어난 천재력에서 찾고 있다. 지리적 분단을 넘어 민족 자력의 힘을 통해 자주적 통일독립국가의 수립을 열렬히 바랐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석담은 해방된 조선의 역사적 과제를 “일제 잔재의 숙청과 민주개혁”으로 보고 있고, 김성칠은 분단의 극복과 통일로 이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세 역사학자의 글을 통해 여전히 남는 문제는 모두 경계한 지적인 ‘사대주의’의 역사적 원인이다. 전석담은 ‘외세의존의 노예근성’에서 비롯한다고 하였고, 이병도는 ‘소아정신’에서 비롯한다고 하여 구체적이지 못하다. 김성칠은 “만일 조선 사람이 다시 이조 말년의 잘못을 되풀이해서 큰 세력에 현혹하여 제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사대주의로 그를 섬기고 체면도 돌보지 않고 이에 빌붙어서 치사스러이 자기 당파와 자기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민족 백년의 대계를 그르쳐서 천추만대의 자손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여 사대주의의 역사적 원인을 조선 말기에 비롯한 사대주의에서 찾고 있다. 곧, ‘큰 세력에 현혹하여 제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라고 하여 정신적인 내용을 서술하였지만, ‘이조 말년의 잘못’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이끌어 낸 구체적 표현으로 두 학자의 서술과 비교가 된다.
세 역사학자의 해방에 대한 감회를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가 지은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국제 관계의 변동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역사≫(2012,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내용을 살짝 엿보도록 하자.
한국인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했다는 양국 간의 합의를 알지 못했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던 한국인 누구도 이 분할선이 두 개의 국가를 만들어내고, 급기야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대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과 소련에 의해 그어진 38선은 한반도 분단의 시작이었고, 한반도가 미ㆍ소 양 진영의 협력과 대립, 냉전과 열전의 장이 되어감에 따라 동아시아 냉전의 ‘경계선’이 되었다(248쪽).
19세기 말 이래 이 땅은 국제 관계와 결코 무관하게 움직이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래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국제 관계의 변동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역사≫은 16세기 말 1592년 조ㆍ일 전쟁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예전 세 역사학자의 해방 감회에 대해 나 또한 데데하게나마 오늘날 해방의 날을 맞이하는 이 땅 시민들께 이렇게 주문을 하여 보았다. “민족자주의 길을 걸을 것인가. 좌ㆍ우만을 따지는 길로 걸을 것인가.”라고(최근에는 ‘종북’과 ‘비종북’인가???). 이제 하나 더 주문하고자 한다. 여전히 첨예한 ‘경계’의 땅, 한반도가 세계인, 아니 지구인이 서로 평화롭게 어울리는 백범이 꿈꾸던 사해동포주의가 비롯하는 땅이 되었으면 좋겠다.
창밖 현현한 무대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우레가
쿠르르 쾅쾅
번개가
번쩍
여전히 억눌린 이 땅 인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기리고자
셋이 삼태극처럼 어울려
아름다운 해방의 춤을 추고 있네










덧글
나라 사랑하는 마음
정말 너무 멋지네요..
생각이 제일 중요한것 같아요
더위에...행복한 주말 보내셔요..
제가 지금 지방 출장 중이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