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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까지 존재한 동명왕의 후손_승정원일기와 고종실록 Corean Clio

예전에 고구려계 성씨를 소개한 글이 있었지영(http://coreai84.egloos.com/5401668). 그런데, 요즘 우리 옛님들께서 귀히 여겨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 이 땅의 성지(聖地)와 관련한 옛 기록들을 살피다가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합사한 사당인 숭령전의 참봉으로 동명왕의 후손을 뽑아 세습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보이고 있네영. 고종실록에서는 의정부의 보고문으로 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에서는 윤영수가 의정부의 보고문을 바탕으로 해서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네영. 한편, 윤영수라는 인물에 관해 이력이라도 살펴보고자 했지만,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누리집(http://people.aks.ac.kr/index.aks)국조방목(國朝榜目)의 기록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뿐이네영. 1853(철종 4) 서울에서 태어났고,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구영(尹龜永)이며, 유학(幼學)으로 1879(고종 16)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에 장원을 한 분이네영.

오늘날 DMZ 이남 이 땅의 고씨 성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면, 대부분 제주가 본관이라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영. 19세기 말까지 동명왕의 후손이 존재하였다면, 4세대를 지났으니까 오늘날에도 충분히 그들 후손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생각해영(DMZ 이남에 없더라도 DMZ 이북에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네영).

 

윤영수가 의정부의 말로 보고하였다: “이제 평안 감사 민병석(閔丙奭)의 장계를 보니, ‘동명왕(東明王)의 후손을, 기자(箕子)의 후손이 숭인전 참봉(崇仁殿參奉)을 세습하는 예에 따라 숭령전 참봉(崇靈殿參奉) 한 자리를 세습하여 조용(調用)하도록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이미 숭인전 참봉을 세습하는 예가 있으니, 동명왕의 후손 역시 다르게 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국역승정원일기, 고종 30(1893) 4월 기미(7)).

 

의정부(議政府)에서 보고하였다: “이제 평안 감사 민병석의 장계를 보니, ‘동명왕의 후손에 대하여, 기자의 후손이 숭인전 참봉을 세습하는 예에 따라 숭령전 참봉 한 자리를 세습하여 조용하도록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숭인전 참봉을 세습하도록 한 예가 있으니 동명왕의 후손도 달리 할 수 없으니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윤허하였다(고종실록30, 30(1893) 4월 기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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