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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12년 각도산천단묘순심별감 보고 제사장 Corean Holy Places

세종12(1430) 8월 갑술(6)일 기사(세종대왕실록49)에 각도 산천 단묘 순심 별감(各道山川壇廟巡審別監)이 보고한 조건에 따라 예조에서 마련한 제사장 보고문이다. 대체로 전국 주요 지역의 성황과 주요 악해독산천 제사장의 현황을 보고하면서 개정할 내용 등을 품의하고 있다. , 단유(壇壝)와 원장(垣墻)의 수축, 예감(瘞坎: 제수를 묻는 구덩이)의 설치, 남문 설치, 위판실(位版室)의 설치, 제기(祭器)의 제도와 재료의 통일, 제기고의 설치, 관리인(단지기[壇直])의 제기 관리 임무 등을 품의하고 있다. 그런데, 위판의 목재를 언급하면서도 목재를 딱히 정하지 않았다. 한편, 1413(태종 13) 6월 을묘(8)일의 예조의 사전 개정 품의 내용이 17년이 지난 당시에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해당 신의 위판보다는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상()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최근 개성에서 발견한 고려 태조의 동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상 사용의 역사와 위판 사용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이에 대해 동옥저의 목각상, 고구려 부여신(=고구려 태조 동명성왕의 어머니 버들개지(柳花)의 신)의 목상, 동명신상의 존재, 신라 석탈해의 소상, 원효의 소상 등의 사례는 주목되는 부분이라 하겠다(盧明鎬 2004 <高麗太祖 王建 銅像流轉과 문화적 배경. 韓國史論50(서울大學校 國史學科), 185194쪽 참조). 그래서 그런지, 전주부 성황신을 비롯한 여러 곳에 모셔진 신상을 철거하자고 했다가, 다시 철거하지 말자는 모순된 품의를 올리고 있음이 보이고 있다.

다음은 품의 내용인데, 원문에는 맨 나중에 있는 것이지만, 먼저 소개하고 나서 각 지역의 성황과 제사장을 표로 정리하여 소개하기로 하겠다.

 

 

신상을 철거하자고 품의하면서도(붉은 줄) 다시 철거하지 말자는 모순된 품의(푸른 줄)를 올리고 있는 내용

_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얻음

 

첫째, 각 고을의 단유의 제도가 길이와 나비, 높고 낮은 것이 일정하지 않고, 또 원장(垣墻)이 없기 때문에 사람과 가축들이 마구 밟아 무너뜨리며 더럽히고 있으니, 마땅히 옛 제도를 상고하여 각도로 하여금 단유를 쌓고, 아울러 예감을 만들게 하고는, 주위에 담을 두르고 남쪽에 문 한 개를 내어 항상 빗장을 질러 닫아 두도록 하소서.

둘째, 신의 위판을 혹은 소나무밤나무, 그리고 잡목(雜木)을 사용하여 만들고 있는데, 그 길이와 나비, 두텁고 얇기가 같지 않사오며, 또는 지방(紙榜)을 쓰기도 하고, 또 그 위판을 사원(寺院) 등에 간직하여 두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니, 마땅히 단유와 가까운 북쪽에 방 한 간을 만들어 위판을 간직하여 두었다가, 제사 때가 되면 단 위에 봉안해 놓고 치제하게 할 것이요, 또 그 해 연말 안의 원장(願狀)을 제사 지내고 나면 바로 물에 띄우고 있으나, 이도 마땅히 위판실에 간직해 두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발원할 때에 물에 넣도록 하자고 한 이상의 두 조항도 아뢴 대로 시행하소서.

셋째, 각 고을에서 변()()()()()()()()()()()() 등 제기(祭器)의 제도를 알지 못하여 제 마음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정결하지 못하오니, 마땅히 봉상시(奉常寺)의 여러 가지 제기를 각도로 나누어 보내어 이를 본떠 주조(鑄造)해 만들도록 하고, 또 제기를 간직해 두는 창고를 만들어 단지기[壇直]로 하여금 간수하게 하자는 위 조항은 아뢴 대로 시행하게 하되, 제기의 주조는 우선 자기(磁器)로 구워서 만들도록 하소서.

 

 

번호

소재지

제사 대상 이름

비고

1

전주

전주부 성황지신

全州府城隍之神

판위(版位) 뒤에 봉안한 신상(神像)이 모두 5(). 영락(永樂) 11(태종 13, 1413) 6월 을묘(8)일 예조의 수교(受敎), “산천 성황의 신()은 다만 신주(神主) 1위만을 남겨 두되 목패(木牌)에 쓰며, 거기에 설치한 신상은 일체 다 철거하여 사전(祀典)을 바로잡으라.” 하였으니, 이제 이에 설치된 신상도 또한 철거하여야 함.

2

영흥

성황 계국백지신

城隍啓國伯之神

남녀 목상(木像)을 설치한 것이 모두 6.

3

함흥

성황사묘城隍祀廟

3.

4

적성

감악산의 신

紺岳山之神

위판(位版) 없음. 이상(泥像)을 쓰고 있고, 주신(主神) 부처(夫妻) 양위(兩位)와 자신(子神) 부처를 아울러서 모두 6.

5

회양

의관령의 신

義館嶺之神

사당 밖에 따로 1칸을 만들고 여신(女神) 목상(木像)을 설치하였음.

위의 각처에 설치한 신상은 다른 사례에 따라 철거해야 함.

6

개성

송악산 성황

松岳山城隍

위판 없음. 이상(泥像) 4위를 설치해 놓고 봄가을 두 철에 대소 남녀들이 모여 음사(淫祀)를 지내며 풍악까지 올리니, 이 신상도 또한 마땅히 철거해야 함. 위판을 설치하되, ‘송악지신이라 쓰고, 기명(器皿)은 모두 바릿대[]를 쓰게 하며, 그 은수저잔반(盞盤)향로향합등잔장등(長燈)()()두고리(豆古里) 등을 모두 은()을 쓰고 있으니, 마땅히 모두 공조(工曹)에서 수납(收納)하고 다시 봉상시의 제기를 써야 함.

7

개성

대황당大皇堂

위판 없음. 이상(泥像) 4. 은그릇을 쓰고 있음. 그 숫자는 성황당과 같음. 사당지기[堂直人]는 백성(百姓) 4. 마땅히 이 대황당을 헐어 버리고 신상도 철거하며, 은그릇은 수납하여 들이고, 그 사당지기는 군역(軍役)에 충당해야 함.

8

개성

국사당國師堂

위판 없음. 속설(俗說), “법사존자(法師尊者)에게도 역시 은두고리(銀豆古里)은향합(銀香合)은장등(銀長燈)을 각기 하나씩 쓰고 있고, 사당지기가 4명이 있다.”고 전하니, 마땅히 사당을 헐고 은그릇을 수납하며, 사당지기는 군역에 충당해야 함.

이상 8개 조항 가운데 전주영흥함흥의 성황은 국가에서 제사를 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례에 따라 해당 고을(의 장이) 제사를 지내야 하고, 감악산의관령송악산의 신상은 철거하지 말고, 그 근처에 적당한 땅을 택하여 따로 나라에서 제사를 행하는 사당을 세워 위판을 설치하게 하고, 그 은그릇은 다른 사례에 따라 놋그릇[鍮器]으로 대신해야 함.

 


번호

소재지

제사 대상 이름

비고

9

장연

장곶의 신長串之神

속설에, “국사(國師)에게 쓰는 희생 시(, 돼지)를 두부(豆泡)로써 대신한다.”고 전하니, 위 조항의 대용하는 법을 없애고 희생은 노(, )를 써야 함.

10

의주

압록강의 신

鴨綠江之神

위판이 없고, 종이에 압록지신이라 쓰고, 제사를 마치고는 강물에 던진다 하니, 다른 사례에 따라 위판을 설치해야 함.

11

안주

청천강의 신

淸川江之神

사당 안에 지전(紙錢)을 사용하여 제사하고 있음. 단유(壇壝)를 만드는 옛 제도에 따라 사당을 옮겨 설치하고, 지전을 철거해야 함.

12

평양

평양강의 신단

平壤江之神壇

단 위에 모두 작은 단이 있는데, 그 작은 단은 마땅히 없애야 함.

13

평양

구진 익수의 신단

九津溺水之神壇

14

평양

기자전

箕子殿

기자의 신위판에 조선후 기자지위(朝鮮侯箕子之位)’라 쓴 것은 우리 왕조의 모든 사전(祀典) 의식에 따라 후조선 시조 기자(後朝鮮始祖箕子)’라 고쳐 쓰고, ‘지위두 글자는 삭제해야 함.

15

평양

단군檀君

단군의 신위판에 조선후 단군지위(朝鮮侯檀君之位)’라 쓴 것은, 우리 왕조의 모든 사전의 의식에 따라 조선 단군이라 고쳐 쓰고, ‘지위의 두 글자는 삭제해야 함.

16

평양

고구려 시조

高句麗始祖

고구려 시조의 신위판에 고구려 시조지위(高句麗始祖之位)’라 쓴 것은 우리 왕조의 모든 사전의 의식에 따라 고구려 시조라 고쳐 쓰고, ‘지위의 두 글자는 삭제해야 함.

17

개성

대정신大井神

위판 없음. 신상 4. 제구(祭具)는 자기(磁器)와 목기(木器)를 섞어 쓰고 있으니, 마땅히 신상을 철거하고 위판을 설치하며, 봉상시 제기를 써야 함. 위 조항의 신상은 철거하지 말고, 제기는 다른 사례에 따라 만들어야 함.

18

서흥

부연신釜淵神

위판에 부연 호국지신(釜淵護國之神)’ 이라 썼으니, 다른 사례에 따라 호국두 글자를 삭제하자 한 위 조항은 보고한 대로 시행해야 함.

19

 

나장산 국사

羅帳山國師

산꼭대기 바위 밑에 한 작은 흰 돌[白石]이 있어 세속에서 이를 국사라 부르고 있는데, 희생 시()를 두부로 대용하고 있으며, 그 신위판에 백서도 호국지신(白鼠島護國之神)’이라 쓴 것을 마땅히 나장산지신(羅帳山之神)’이라고 고쳐 쓰고, 희생 시()의 대용으로 두부를 사용하는 것도 없애야 함.

20

풍천

서해신西海神

초도(椒島)주을도(注乙島) 등 여러 섬의 단()은 서해신(西海神)의 사당 북쪽 1백 보() 가량 되는 봉우리 위에 단을 쌓고, 단 위에 또 두 개의 단을 쌓았음. 초도의 단은 서쪽에 있고, 주을도 등 여러 섬의 단은 동쪽에 있는데, 한 단에서 망제(望祭)를 지내자고 한 것은, 단을 설치하고 망제를 지내게 될 연월(年月)과 주을도 등 여러 섬에 있는 것을 모두 상고할 수 없고, 전물(奠物)을 허비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니 마땅히 단장(壇場)을 헐어 버리고, 본 고을에서의 치제(致祭)도 다른 사례에 따라 없애야 함.

21

수안

요동산신遼東山神

위판에, ‘요동산신위(遼東山神位)’라 쓴 것을 요동산지신(遼東山之神)’이라 고쳐 써야 마땅할

22

안악

도곶신桃串神

성초곶신省草串神

위판에 도관 호국지신위(桃串護國之神位)’라 쓰고, 성초관신의 위판에는 성초관 호국지신위(省草串護國之神位)’라 쓴 것은 마땅히 도관지신(桃串之神)’, ‘성초관지신(省草串之神)’이라고 고쳐야 함.

이상 또한 신위의 글을 지신(之神)’의 형식으로 해야 함.

23

곡산

신류산신神留山神

무산신務山神

협올제도신

峽屼諸島神

증격산신甑擊山神

남산신南山神

미륵산신彌勒山神

위판에, ‘신류산신위(神留山神位)’라 쓰고, 무산신 위판에, ‘무산신위(務山神位)라 썼으며, 협올의 여러 섬의 신 위판에, ‘협올도신위(峽屼島神位)’라 쓰고, 증격산신 위판에, ‘중격산신위(甑擊山神位)’라 썼으며, 남산신 위판에, ‘남산신위(南山神位)’라 쓰고, 미륵산신 위판에는, ‘미륵사신위(彌勒山神位)’라 써야 함. 모두 신류산 위에 단을 쌓고 합제(合祭)하여 제소(祭所)로는 나아가지 않으며, 또 신류산은 평지에 있는 작은 산이며, 협올의 여러 섬들은 평지에 있는 촌락으로서, 그 사이에 두 개의 작은 구릉이 서로 이어져 있고, 남산과 미륵산은 조금 높긴 하나 모두 영험이 없고, 오직 무산만은 높고 험하며, 그윽하고 깊은데다가 구름과 안개가 겹겹으로 자옥하게 끼여 있어, 속칭 무산(霧山)’이라고도 부르며, 증격산은 본군(本郡) 북쪽에 있어 주산(主山)을 이루고 있으며, 높고 험하기 때문에, 산허리 서쪽 봉우리에 있는 국사당(國師堂)의 터를 무산의 신이라 하여 국사(國師)’라 일컫고 이를 제사하고 있는데, 고을 사람들의 가뭄을 만나면 망제(望祭)를 지내며 기도하면 번번이 비가 온다고 함. 이것으로 본다면 무산증격산 이외의 그 나머지의 여러 산과 섬들은 모두 영험이 없는데 전물(奠物)만을 허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아니하니, 마땅히 여러 산과 여러 섬들의 제사는 폐지하고 다만 무산과 증격산만을 사전(祀典)에 기록하고 본 고을에서 치제(致祭)하는 등의 것은 위 조항의 국사당에 단을 배설하고 합제(合祭)하게 하며, 무산(務山)을 무산(霧山)으로 고치고, 무산신과 증격산신의 위판을, ‘무산지신(霧山之神)’, ‘증격산지신(甑擊山之神)’이라 고쳐 쓰자고 한 것은 위 조항과 같이 보고한 대로 시행하되, ‘()’자는 그전대로 두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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