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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은 말[馯ㆍ駻]에서 유래하였다_성해응 Corean Clio

余未嘗得韓之義。 及讀書序肅愼之命, 孔安國注海東諸夷駒麗扶餘馯貊之屬, 馯者韓也, 馯同駻。 說文云馬突也, 韓與駒並稱者固矣。

내 ‘한’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상서≫ 서문의 ‘숙신지명’을 읽으면서 공안국의 “바다 동쪽 여러 이민족인 구려ㆍ부여ㆍ한맥의 무리”라는 딸림글에 ‘馯’이라는 이는 ‘韓’이라고 하였으며, ‘馯’은 ‘駻’과 같다고 하였다.*) ≪설문해자≫에서는 ‘사나운 말’이라고 하였는데, ‘한’과 ‘구’가 서로 함께 일컬어지는 것은 마땅하다.**)

 

*) 한편, 성해응 선생은 “성왕이 이미 동이를 침략하였고, 숙신이 와 하례하자 임금이 영백에게 숙신이 바친 선물에 대한 글을 짓게 하였다.<공안국의 전을 살펴보면 바다 동쪽 여러 이민족인 구려ㆍ부여ㆍ한맥의 무리는 성왕이 정치를 행하자 이에 대항하였고, 임금이 침략하자 그에 복종한 것이다. 구려ㆍ부여 등의 나라는 요동에 있었는데, 주 때에는 또한 이러한 이름이 없음을 살피지 않고, 성왕이 침략한 사실 또한 사서에 보이지 않음에도 전하는 이가 사실이 상세하지 않았지만 가탁은 이와 같았다.(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王俾榮伯作賄肅愼之命。<按孔傳, 海東諸夷駒麗ㆍ扶餘ㆍ馯貊之屬, 成王卽政而叛, 王伐而服之。 駒麗ㆍ扶餘等國在遼東, 不審周時亦有此名否, 成王征伐, 亦不見於史, 爲傳者不詳事實而假托如此。>)”(<書類 書序辨> ≪연경재전집≫19)고 하였고, “성왕이 이미 동이를 침략하였고, 숙신이 와 하례하자 임금이 영백에게 숙신이 바친 선물에 대한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오로지 ≪사기≫의 내용을 썼다. 다만 식신은 숙신이라고 하는데, 공안국의 전에 바다 동쪽 여러 이민족인 구려ㆍ부여ㆍ한맥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하였지만, 구려 임금 주몽은 한 원제 건소 2년에 비로소 나라를 세웠고, 안국보다 뒤의 일인데, 안국이 어떻게 이를 따라 채록하였겠는가?(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王俾榮伯作賄肅愼之命, 此亦專用史記。 但息愼作肅愼, 孔安國傳以爲海東諸夷駒麗ㆍ扶餘ㆍ馯貊之屬, 駒麗主朱蒙, 以漢元帝建昭二年始建國, 已後於安國, 安國何從而採之耶?)”(<書類 書序辨> ≪연경재전집외집≫4)라고 하였으며, “<뇌숙신지명>에 이르러서는 딸림글에 바다 동쪽 구려ㆍ부여ㆍ한맥의 무리가 무왕이 상을 이기자 모두 길이 통하였다고 하였다. ≪(일)주서≫ 왕회편을 살펴보면 북녘에 직신이 있고, 동녘에는 곧 예량 뿐이라고 하였다. 이때는 아직 구려ㆍ부여의 이름이 없을 때고, 또 구려 임금 주몽은 한 원제 건소 2년(기원전 37)에 나라와 국호가 시작되었다고 우리나라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공안국이 왕명으로 서전을 만들 때 구려ㆍ부여가 아직은 중국과 통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데, 하물며 무왕이 상을 이긴 날까지 이르겠는가?(至于賄肅愼之命, 註云海東駒驪ㆍ扶餘ㆍ馯貉之屬, 武王克商, 皆通道焉。 攷周書王會篇, 北有稷愼, 東則濊良而已。 此時未必卽有駒麗ㆍ扶餘之名, 且駒麗主朱蒙, 以漢元帝建昭二年, 始建國號, 載東國史記。 安國承詔作書傳時, 恐駒麗ㆍ扶餘尙未通于上國。 况武王克商之日乎?”(<書類 諸家說> ≪연경재전집외집≫6, 주이존(朱彜尊, 1629∼1709, 명말청초 학자ㆍ문인)의 ≪경의고經義考≫에 있는 주장을 소개한 것이다.)라 하여 대체로 숙신과 고구려ㆍ부여가 동시대에 존재함을 부정함과 함께 공안국전의 내용 또한 바르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한치윤 ≪해동역사≫6 고구려 참조).

**) ≪설문해자≫에서는 ‘駻’을 ‘馬突’이라고 하였다. 일단 이를 ‘사나운 말’로 옮겨 둔다. 그런데, 성해응 선생은 “한은 ≪설문해자≫를 살펴보면 사나운 말이라고 하였다. 글자는 ‘馯’을 쓰기도 한다. ≪상서≫ 서문에 ‘성왕이 이미 동이를 침략하였고, 숙신이 와 하례하자 임금이 영백에게 숙신이 바친 선물에 대한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하였다’고 하였고, 그 전에는 ‘바다 동쪽 여러 이민족 구려ㆍ한맥의 무리’라는 구정이 있다. 대체로 구려는 고구려이며, 한은 ‘한’으로 그 처음 모두 말 이름이었고, ‘마한’이라는 이름 또한 거기에서 섞인 말이다(駻, 案說文馬突也。 字或作馯。 書序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王俾榮伯作賄肅愼之命, 傳云海東諸夷駒麗馯貊之屬。 夫駒麗者高句麗也, 馯者韓也, 其初皆馬名, 而馬韓者又混言之也。)”(<북변잡의北邊雜議ㆍ기동방토산記東方土産> ≪연경재전집≫46)라는 독특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마치 ‘구려’의 이름도 말에서 찾은 듯하다. 성해응 선생은 한결같이 ‘駒麗’로 표기하고 있지만, ≪후한서≫에서는 ‘高句驪’라고 표기하고 있기도 하다. ‘駒’는 망아지 또는 성숙한 말, ‘驪’는 가라말을 뜻한다. 한편, 단옥재의 딸림글에는 “사나운 말이다. ‘한’은 ‘한’이라고도 말하며, ≪회남서≫에는 ‘한’이라고 썼다. 고씨[=고유(高誘, 3세기 초 전후에 생존한 때 후한(後漢)의 학자]는 ‘한마’는 ‘돌마’라고 하였다(馬突也。 駻之言悍也, 淮南書作馯。 高曰: 馯馬,突馬也。)”고 하였다.

 

△ ≪설문해자≫의 ‘駒’와 ‘駻’

 

考之地界曰馬韓者, 箕準之餘也, 其所都金馬郡, 卽今益山。 而益山湖西南之交也, 後爲百濟所並。

한의 영토와 경계를 살펴볼 때 마한은 기준의 후손*)으로 그 도읍은 금마군에 두었는데, 오늘날 익산이다. 그런데 익산은 호서와 호남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뒤에는 백제가 차지하였다.

 

*) 마한이 기준의 후손이라는 설은 ≪삼국지≫ 한전에 처음 보인다. ≪후한서≫에서는 기준이 마한에게 망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曰辰韓者, 秦之亡人避役入韓, 韓人割其東界以與之, 後爲新羅所並, 今嶺南之左也。 弁韓在辰韓之南。 亦爲新羅所並。 今嶺南之右也。

진한은 진이 망할 때 사람들이 부역을 피해 한에 들어와 한인이 그 동쪽 지역을 잘라 그들에게 주었는데,*) 뒤에 신라가 차지하였으니 오늘날 영남의 왼쪽이다. 변한은 진한의 남쪽으로 이 또한 신라가 차지하였는데, 오늘날 영남의 오른쪽이다.**)

 

*) 이 내용은 ≪삼국지≫ 진한전에 처음 보인다.

**) ≪삼국지≫에서는 ‘弁辰’, ≪후한서≫에서는 ‘弁韓’으로 쓰고 있다.

 

韓界界於漢水, 夫漢水以北浿水以南, 漢魏時爲樂浪爲帶方, 故三韓服屬焉, 後乃反殘滅之。 而新羅百濟二國繼而競焉。

한의 경계는 한수에서 이르는데, 대체로 한수 이북 패수 이남은 한ㆍ위 때 낙랑과 대방으로 삼은 곳으로 옛날에는 삼한이 복속하였다가 뒤에 도리어 멸망당하였다. 그리고 신라와 백제 두 나라가 이어 경쟁하였다.

 

又考之陳壽三國志, 倭在韓傳之下, 其說曰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 始度一海千餘里, 到對馬國。 郡指樂浪也。 由今平壤而詣倭, 則歷湖西南之境, 卽韓國也。 由西海而南, 故曰乍南乍東也, 今咸安金海固城等地, 皆古伽倻國。 而統於韓者, 由海而南則皆北岸也。 伽倻者俗稱狗。 故稱狗邪韓國也。 盖韓北與濊接, 故稱韓濊, 南與倭接, 故倭附韓傳下。

또 진수의 ≪삼국지≫를 살펴보면 왜가 한전의 다음에 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군에서 왜에 이르려면 바닷가 물길을 좇아 한국을 지나 조금 남쪽으로 갔다가 조금 동쪽으로 가면 그 북쪽 바닷가 구야한국에 이르는데, 거리가 7천여 리다. 처음 한 바다 천여 리를 건너면 대마국에 이른다고 하였다. 여기서 군은 낙랑을 가리키는데, 오늘날 평양에서 왜에 이르려면 곧 호서와 호남의 지역을 지나야 하므로 곧 한국이다. 서해와 남해를 거쳐야 하는 까닭에 조금 남쪽으로 갔다가 조금 동쪽으로 간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함안ㆍ김해ㆍ고성 등 지역으로 모두 옛날 가야국이다. 그리고 한을 경유한다는 것은 바다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곧 모두 북쪽 바닷가가 된다. 가야는 일반에서 개를 일컫는다. 그런 까닭에 구야한국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대체로 한의 북쪽은 예와 맞닿았기 때문에 ‘한예’라고 불렸으며, 남으로는 왜와 맞닿았기 때문에 왜전이 한전 다음에 붙어 있는 것이다.

 

*) 가야를 ‘개[狗]’로 풀이한 독특한 예다. 그렇지만, 구야한국에서 다시 1천여 리를 가야 대마국에 이른다는 구절로 볼 때, 성해응 선생의 지적대로 바닷길이 남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북쪽 바닷가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구야한국의 북쪽 바닷가는 어디일까. 그리고 성해응 선생이 마한을 기준의 후손으로 이해하면서 그에 덧붙여 소개한 글이 ≪삼국지≫의 내용인데, 기준이 마한으로 피하였을 때, 곧 위만조선의 성립 시기가 기원전 2세기 중기까지 소급할 수 있다면, ≪삼국지≫는 그보다 약 400년가량 뒤진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원문 : 三韓辨(≪연경재전집≫15)_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




덧글

  • 제홍씨帝鴻氏 2012/04/08 19:28 # 답글

    틀렸습니다. 한韓은 홍산문명의 조상인 한류韓流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가능성을 검토해야합니다.
  • 고리아이 2012/04/08 20:03 #

    틀렸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성해응 선생은 19세기 학자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08 20:04 # 답글

    네. 아참. 19세기 학자인걸 깜빡.
  • 제홍씨帝鴻氏 2012/04/08 20:05 # 답글

    제 블로그 글도 탐독부탁드립니다. ㅎㅎㅎ
  • 고리아이 2012/04/08 20:08 #

    옙 당근이지요
    님의 블로그도 틈틈이 살펴 공부하고 있습니다영^_^))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24 #

    ㅎㅎㅎ 감사합니다~!
  • ㅁㅁ 2012/06/10 13:22 # 삭제 답글

    본인 출생지는 그렇다 하고 부모님 고향은 어디신지?
  • 고리아이 2012/06/22 00:51 #

    무슨 뜻으로 제 부모님 고향을 물으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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