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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2군고(다섯)_성해응 Corean Clio

蠶台在嶺東地。 後漢書建武二十三年冬, 句驪蠶支落大加戴升等萬餘口, 詣樂浪內屬。 蠶支落疑蠶台。 華麗在嶺東地。 後漢書安帝元初五年, 句驪王宮與濊貊冦玄菟, 攻華麗城是也。

잠태는 영동 지역에 있다. ≪후한서≫ 건무 23년(47) 겨울 구려ㆍ잠지락ㆍ대가ㆍ대승 등 1만 여 명이 낙랑으로 와서 붙었다고 하였다. 잠지락은 잠태로 의심이 된다. 화려는 영동 지역에 있다. ≪후한서≫ 안제 원초 5년(118), 구려왕 궁과 예맥이 현토를 공격하고 화려성을 공략하였다고 한 것이 이곳이다.*)

 

*) 모두 ≪후한서≫85 동이열전 구려에 있는 기록이다. 한편, 원문 딸림글에는 화려는 현으로 낙랑군에 딸려있다(華麗, 縣, 屬樂浪郡)고 하였다.

 

邪頭昧在嶺東地。 說文: “魵鮸出薉耶頭國”。 魵雌鯨, 今東海上多捕之, 鮸本艸石首魚, 李時珍曰: “生東南海中, 扁身弱骨, 細鱗金色, 魚首有白石二枚”<止>。 此指今所稱石魚也, 然石魚産西海, 不産東海。 俗稱大口魚者, 亦首有白石而多産東北海, 意是鮸也。

사두매는 영동 지역에 있다. ≪설문해자≫에 “분어와 면어가 예야두국에서 난다.”고 하였다. 분어는 암코래로 오늘날 동해바다에서 많이 잡히고, 면어는 ≪본초강목≫의 석수어로 이시진(1518∼1593)은 “동남해 바다 안에서 살며, 납작한 몸에 뼈가 약하며, 가는 비늘로 금빛을 띠며, 고기 대가리에 흰 돌이 두 개가 있다.<그친다.>”고 하였다. 이 고기는 오늘날 석어로 부르는 것인데, 석어는 서해에서 나지만, 동해에서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구어라고 일컫는 것 또한 대가리에 흰 돌이 있고 동북해에서 많이 나는데, 아마도 이것이 면어인 듯하다.*)

 

*) ≪설문해자≫ 단옥재(段玉裁)의 딸림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분어는 ≪석어에≫ 분은 하라고 하였으니, 분어는 다른 이름으로 하어로 일컫는다. 예사두국에서 난다고 하였는데, 진씨의 ≪위지≫, 범씨의 ≪후한서≫ 동이전에서 모두 ‘예국 바다에서 반어피가 난다.’고 하였고, 오늘날 ≪일통지≫ <조선 하>에서도 또한 같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반어는 곧 분어로, 곽씨의 딸림글이 있는 ≪이아≫에서 예사두국에서 난다고 하면서 여씨의 ≪자림≫에 보인다고 하였는데, 곽씨의 딸림글은 단지 ≪자림≫만 언급하였을 뿐, ≪설문≫은 언급하지 않았다. 어찌 인용함이 끝을 따르고 처음을 잊은 것이니 삿되지 않은가(釋魚曰: 魵鰕, 謂魵魚一名鰕魚也。 出薉邪頭國, 陳氏魏志ㆍ范氏後漢書東夷傳皆曰: 濊國海出班魚皮, 今一統志朝鮮下亦云尒, 班魚卽魵魚也。 郭注爾雅云: 出穢邪頭國, 見呂氏字林, 郭注但偁字林, 不偁說文, 豈所謂逐末忘本者非邪?).” 여기서 성해응 선생은 분어[魵]를 암코래로 새겼는데, 단옥재의 딸림글에서 풀이한 ‘하(鰕)’에는 ‘새우’라는 뜻과 함께 ‘암코래’의 뜻도 있다. 한편, 오늘날 석수어(石首魚)와 석어(石魚)는 조기로 풀이하고, 대구어(大口魚)는 대구로, 반어(班魚)는 오늘날 수조기, 면어[鮸]는 참조기로 풀이한다. 성해응 선생은 조기가 동해에서 나지 않고 서해에서만 잡힘을 지적하여 면어를 대구로 이해하고자 하였는데, 역사지리 고증에서 지역 산물 또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알려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前莫在嶺東地, 夫租在嶺東地。

전막은 영동 지역에 있고, 부조도 영동 지역에 있다.

 

後漢樂浪郡十八, 朝鮮䛁邯貝水含資占蟬遂城增地帶方駟望海冥列口長岑屯有昭明鏤方提奚渾彌樂都, 並仍前漢制。 粘蟬作占蟬。 遂成作遂城。 盖沿襲而誤也。

후한의 낙랑군은 (현이) 열여덟으로, 조선ㆍ남감ㆍ패수ㆍ함자ㆍ점선ㆍ수성ㆍ증지ㆍ대방ㆍ사망ㆍ해명ㆍ열구ㆍ장잠ㆍ둔유ㆍ소명ㆍ누방ㆍ제해ㆍ혼미ㆍ낙도인데, 모두 전한이 정한 것을 이었다. 점선은 ‘점선’으로도 쓰며, 수성은 ‘수성’으로도 쓰는데, 대체로 연이어 답습하면서 틀린 것이다.

 

樂都疑呑列。 後漢書郡國志, 不載東暆以下七縣, 因建武六年省樂浪東部都尉, 棄嶺東地故也。 其他郡縣悉依前漢書所載第次, 獨呑列不載, 意改樂都故也。

낙도는 탄렬로 의심이 된다. ≪후한서≫ 군국지에 동이 이하 7현을 싣지 않고 건무 6년에 낙랑을 없애고 동부도위를 설치함에 따라 영동 지역을 버리게 된 까닭이다. 다른 군현은 모두 ≪전한서≫에 기록된 순서에 따르고 있는데, 탄렬만이 홀로 실리지 않아 낙도를 고친 까닭이라 생각한다.

 

 

△ 중국학계에서 주장하는 기원전100∼97년 경 한4군 강역

__維基百科: 自由的百科全書(http://zh.wikipedia.org/wiki/)에서 얻음

 

晉樂浪郡領縣六, 朝鮮屯有渾彌遂成鏤方駟望, 並仍後漢制。

진의 낙랑군이 거느린 현은 여섯으로, 조선ㆍ둔유ㆍ혼미ㆍ수성ㆍ누방ㆍ사망인데, 모두 후한이 정한 것을 이었다.

 

晉帶方郡嶺縣七。 帶方列口長岑提奚含資海冥南新, 皆仍後漢制。 獨南新未詳。 䛁邯貝水粘蟬增地昭明在後漢書, 而晉書則不見, 而更有南新別出。 意此五縣中所改地名也。

진의 대방군이 거느린 현은 일곱으로, 대방ㆍ열구ㆍ장잠ㆍ제해ㆍ함자ㆍ해명ㆍ남신인데, 모두 후한이 정한 것을 이었다. 남신만 홀로 알 수 없다. 남감ㆍ패수ㆍ함자ㆍ점선ㆍ증지ㆍ소명은 ≪후한서≫에 있지만 ≪진서≫에는 보이지 않는데, 남신이 따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다섯 현 가운데 고친 지명이라 생각한다.

 

△ 중국학계에서 주장하는 3세기 경 한반도와 그 주변

__維基百科: 自由的百科全書(http://zh.wikipedia.org/wiki/)에서 얻음

 

성해응 선생의 한2군에 관한 이야기를 이제 마치고자 합니다.

지루하셨겠지만 끝까지 보아주신 강호제현의 채찍을 기다립니다^_^))




덧글

  • 리얼스나이퍼 2012/04/06 15:56 # 답글

    아무리 참고용이라고는 하지만 특히 첫번째같은 말도 안되는 지도는 가급적 올리지않는 것이?
  • 고리아이 2012/04/06 16:01 #

    와신상담이라고 할까요?
    절치부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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