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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2군고(네엣)_성해응 Corean Clio

海冥今未詳。 遼志曰: 興州本漢海冥縣, 在東京西南三百里<止>。 興州在遼東界。 不在鴨江南。 志誤。

해명은 오늘날 알 수 없다. ≪요사≫ (지리)지에 “흥주는 본디 한의 해명현으로 동경 서남 300리에 있다.<그친다.>”고 하였다. 흥주는 요동 지역으로 압록강 남쪽에 있지 않으므로 지의 내용이 틀렸다.

 

△ ≪당토명승도회唐土名勝圖會≫(1805) 직례전도直隷全圖 부분

_향고도(http://blog.daum.net/sabul358/)에서 얻음

 

列口今通津等地。 史記樓船將軍揚僕伐右渠, 以兵五萬從齊浮渤海, 至列口, 注列口縣名也, 渡海先得之。

열구는 오늘날 통진 등 지역이다. ≪사기≫에 누선장군 양복이 우거를 공격하고자 5만의 병력으로 발해에 가지런히 배를 띄워 열구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딸림글에 열구는 현 이름이라고 하였으며 바다를 건너 먼저 이를 얻었다.

 

長岑今未詳。 後漢書崔駰爲竇憲所踈, 出爲長岑長。 按漢光武帝建武六年, 樂浪土人王調殺郡守劉憲, 遣王遵擊定之, 取其地爲郡縣, 薩水以南屬漢, 窃意長岑亦其一也, 盖今海西及畿服之境也。 遼志曰: 崇州本漢長岑, 在東京東北百五十里<止>。 崇州在遼東界, 不在鴨江南, 志誤。

장잠은 오늘날 알 수 없다. ≪후한서≫에 최인이 두헌과 사이가 소원해지자 장잠의 장으로 나갔다.*) 한 광무제 건무 6년(30)을 살펴보면, 낙랑 토착민 왕조가 군수 유헌을 죽이자 왕준을 보내어 이를 쳐 바로잡게 하고 그 땅을 취하여 군현으로 삼아 살수 이남이 한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장잠 또한 그 한 곳으로 대체로 오늘날 해서와 경기의 지역이라 여겨진다. ≪요사≫ (지리)지에 “숭주는 본디 한의 장잠으로 동경 동북 150리에 있다.<그친다.>”고 하였다. 숭주는 요동 지역으로 압록강 남쪽에 있지 않으므로 지의 내용이 틀렸다.

 

*) 최인(崔駰) : ?∼92. 동한 경학가ㆍ문학가. ≪후한서≫82 최인열전.

    두헌(竇憲) : ?∼92. 동한 외척ㆍ무관.

**) ≪후한서≫106 순리열전66 왕경(王景) 참조.

 

屯有今黃州瑞興等地。 三國志建安中公孫康分屯有以南荒地, 爲帶方郡。 則盖今海西道而迤關西境也, 知者以鏤方之在屬縣故也。

둔유는 오늘날 황주 서흥 등 지역이다. ≪삼국지≫에 건안 연간(196∼220)에 공손강이 둔유 이남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곧 대체로 오늘날 해서도에 가까운 관서 지역으로 아는 것은 누방의 속한 현인 까닭이다.

 

昭明今未詳, 疑亦在海西道。 漢書注: 南部都尉治南部, 設置不見於史。 豈當置樂浪東部都尉時, 亦設南部都尉治於昭明與?

소명은 오늘날 알 수 없지만, 해서도에 있을 것으로 의심이 된다. ≪한서≫ 딸림글에 “남부도위가 남부를 다스렸다.”고 하였는데, 치소를 둔 것이 사서에 보이지 않는다. 당시 낙랑에 동부도위를 치소를 두었을 때, 남부도위 또한 어찌 소명에 치소를 두었는가?

 

鏤方今寧遠郡。 許氏說文云: 浿水出鏤方東入海; 酈道元水經注: 鏤方在樂浪郡東正, 今寧遠。

누방은 오늘날 영원군이다. 허신의 ≪설문해자≫에 “패수는 누방에서 나와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고, 역도원의 ≪수경주≫에 “누방은 낙랑군 정동에 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영원이다.

 

提奚今未詳, 渾彌今未詳。

제해는 오늘날 알 수 없고, 혼미도 오늘날 알 수 없다.

 

呑列今江陵府。 漢書注: 分黎山列水所出, 西至粘蟬入海。 行八百二十里<止>。 分黎者五臺山也, 自五坮山至豊德等地, 可八百餘里。

탄렬은 오늘날 강릉부다. ≪한서≫ 딸림글에 “분려산은 열수가 나오는 곳으로 서쪽으로 점선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니, 길이가 820리다.<그친다.>”고 하였다. 분려는 오대산으로 오대산부터 풍덕 등지까지는 800여리 정도 된다.

 

東暆今江陵府。 三國史曰: 東暆濊國都<止>, 今江陵府東, 有濊時所築古城遺址。 新羅南解王時溟州人耕田得濊王印獻之, 溟州卽江陵府。 又說文鰅皮有文, 出樂浪東暆, 神爵四年, 初捕收輸考功。 楚詞大招鰅鱅短狐, 注鰅鰅短狐類, 補注狀如犂牛。 今江陵三涉等海中有牛, 赤眸無角, 羣卧海岸, 名可之, 此疑鰅也。

동이는 오늘날 강릉부다. ≪삼국사(기)≫에 “동이는 예국의 도읍이다.<그친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강릉부 동쪽에 예 때 쌓은 옛 성 터가 있다. 신라 남해왕 때 명주 사람이 밭은 갈다가 예왕의 도장은 얻어 이를 바쳤다고 하였는데, 명주는 곧 강릉부다. 또 ≪설문해자≫에 “물여우 껍질에 무늬가 있는데, 낙랑 동이에서 난다. 신작 4년(기원전 58)에 처음으로 잡혀 고공에서 거두어 옮겼다.”고 하였고, ≪초사≫ ‘대초’라는 시에서 ‘옹용단호’라는 구절 가운데 ‘옹’의 딸림글에 ‘옹’은 단호 종류라고 했고, 덧딸림글에 “생김새가 얼룩소와 같다.”고 하였다. 오늘날 강릉과 삼척 등지의 바다에는 소가 있는데, 붉은 눈동자에 뿔이 없고, 바닷가에 무리를 지어 누우며, 이름으로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물여우인 듯하다.

 

不而一作不耐, 今通川高城等地。 杜氏通典新羅兼有沃沮不耐濊之地。 沃沮在北, 今咸鏡道也。 韓在南, 今慶尙道也, 濊在西南, 今江原道也。 間於其間者。 非通川高城等地乎? 又魏志嶺東不耐濊侯等降樂浪, 濊都江陵矣, 不耐之國在嶺東。 惟通川高城等地。 漢書注東部都尉治。

불이는 불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통천ㆍ고성 등 지역이다. 두우의 ≪통전≫에 신라가 옥저ㆍ불내ㆍ한ㆍ예의 땅을 아울렀다고 하였다. 옥저는 북쪽에 있고, 오늘날 함경도이며, 한은 남쪽에 있고, 오늘날 경상도이며, 예는 서남쪽에 있고, 오늘날 강원도다. 그 사이의 사이에 있는 것이 통천과 고성이 아니겠는가. 또 ≪위지≫에 영동의 불내ㆍ예 등이 낙랑에 항복하였는데, 예의 도읍을 강릉이고, 불내의 나라는 영동에 있다고 하였는데, 생각건대 통천ㆍ고성 등 지역이다. ≪한서≫ 딸림글에 동부도위의 치소라고 하였다.

 

△ ≪청국지지淸國地誌≫(1882) 직례直隷 부분

_향고도(http://blog.daum.net/sabul358/)에서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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