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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풍속을 살피다(열)_성해응 Corean Clio

周亮工因樹屋書影曰: 汴人語有不甚解者, 大半是金遼所遺。 如藏物于內, 不爲外用, 或人不知之者曰梯己。

주량공(1612∼1672)의 ≪인수록서영≫에 “변 지방(=오늘날 허난 성(河南省) 지역) 사람들의 말에는 심하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는데, 대부분이 금과 요의 유산이다. 집안에 물건을 감추고 밖에서는 쓰지 않게 하며, 혹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제기’라고 한다.”고 하였다.

今有物在某處而人不知, 必指其處曰低己, 低與梯音相近。

오늘날 물건이 어떤 곳에 있지만 사람이 알지 못하면 반드시 그곳을 가리켜 ‘저기’라고 한다. ‘저’는 ‘제’음과 서로 가깝다.

 

世說新語曰: 王劉謂何驃騎望卿? 擺撥常務。

≪세설신어≫에 “왕유가 ‘어찌 표기는 경을 바라보는가. 파발은 상무다.’고 하였다.”는 글이 있다.

今謂驛遞曰擺撥。

오늘날 역참에 갈마드는 것을 ‘파발’이라고 한다.

 

錢氏私誌曰: 燕北風俗勿論士庶, 皆自稱小人。

≪전씨사지≫에 “연의 북녘 풍속에는 사서를 물론하고 모두 스스로 소인이라 칭한다.”고 하였다.*)

今卑人對貴人, 自稱小人。

오늘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귀인을 대할 때 스스로 소인이라 칭한다.

 

*) ≪전씨사지≫는 지은이가 북송의 전언원(錢彥遠)ㆍ전면(錢愐)ㆍ전세소(錢世昭) 등으로 갈렸지만, 전세소가 지은 것으로 결정이 났다.

 

宋史汪若海傳曰: 高宗甞以片紙書若海名, 諭張浚曰: 似此人才, 卿收拾。

≪송사≫ 왕약해 열전에 “고종이 일찍이 종잇조각에 약해의 이름을 써서 장준에게 일러 ‘이 사람은 인재로 보이니 경이 수습하라.’고 하였다.”는 글이 있다.*)

今謂書札曰片紙。

오늘날 서찰을 편지라고 한다.

 

*) ≪송사≫404 열전 163 왕약해.

 

金史: 翰林待制奧屯忠孝小字牙哥。

≪금사≫에 한림대제 오둔충요의 어릴 적 자가 아가라고 한다.*)

今人呼兒曰牙哥。

오늘날 사람들이 아이를 부를 때 아가라고 한다

 

*) ≪금사≫104 열전 42 오둔충효에서는 자가 전도(全道), 본명이 아가(牙哥)라고 하였다.

 

李孝光集有送朶兒只國王之遼東詩。

이효광(1285∼1350)의 문집에 타아지 국왕을 요동으로 보내면서 지은 시가 있다.*)

今童子尊稱曰兒只。

오늘날 어린아이의 존칭이 아지다.

 

*) ≪원사≫139 열전26 타아지 참조.

 

歐陽修六一居士詩話曰: 梅聖兪賦河豚詩云: 春洲生荻芽, 春岸飛楊花。 河豚食絮而肥, 南人多與荻芽爲羹, 知詩者謂破題兩句, 二道盡河豚佳處。

구양수(1007∼1072)의 ≪육일거사시화≫에 “매성유(이름은 요신(堯臣), 1022∼1060)의 부 <하돈(=복어)>시에 ‘봄이 오면 강가에 물억새 싹이 돋아나고, 봄이 오면 언덕에 버들개지 나는구나.’ 하였는데, 복어가 물억새 싹과 버들개지를 먹고 살이 찌는 줄 알고 남쪽 사람들은 국에 물억새 싹을 많이 넣어 먹는다. 시를 아는 이가 있다면, 두 구절은 파제이며, 두 구는 복어가 좋아하는 곳이 다하였다고 일컬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今稱詞題第四句曰破題。

오늘날 시문의 네 번째 구절을 파제라고 한다.

 

白樂天詩園葵烹佐飯。

백낙천(772∼846) 시에 “텃밭 푸성귀를 삶아 반찬을 삼네.”라고 하였다(≪전당시≫459:76).

今謂魚曰佐飯。

오늘날 물고기를 ‘좌반’이라고 일컫는다.

 

中國江西俗諺, 責人多氣曰客沮兒。

중국 강서 속담에 화를 내면서 사람을 꾸짖는 것을 ‘객저아’라고 한다.

今俗亦如此。 沮作作。

오늘날 풍속 또한 이와 같다. ‘저'는 '작'으로 쓰기도 한다.

 

明史: 太祖遣國子監生武淳等往各處, 隨其稅粮多寡, 定爲幾區, 躳履田畒, 以量度之。 圖其田之方圓, 次其事悉書主名及田之四至, 編彙爲冊, 謂魚鱗圖。

≪명사≫에 “태조가 국자감생 무순 등을 각 지방으로 보내어 세곡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구역을 정하고 직접 밭을 살피고, 전지를 재어 그 전지의 모나고 둥근 모습을 그렸다. 다음에 이 일에 따라 모두 주인이 이름과 전지의 사방을 모두 적어 모아 편집하여 책을 만드니 ‘어린도’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今米糓衙門會計簿冊謂之魚鱗。

오늘날 미곡 관계 관청의 회계부책을 ‘어린’이라고 일컫는다.

 

姚寬西谿叢話曰: 今俗諺云如鹽藥, 言其少而難得。 本草艸戎鹽部, 陳藏器云鹽藥療赤眼明目。

요관(?∼1161, 자는 영위(令威), 승현(嵊縣) 사람이다.)의 ≪서계총화≫에 “오늘날 소금약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은 적어서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본초강목≫ 초융염부에 진장기(681∼757. 당대(唐代) 의학자, 약물학자, 방제학자로 ≪본초습유(本草拾遺)≫를 지었다.)가 ‘소금약은 충혈된 눈은 밝게 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今稱少而難得曰如眼藥。 或曰藥鹽。

오늘날 적어서 구하기 어려운 것을 안약과 같다고 하는데, 약소금이라고도 한다.

 

金史百官志曰: 承發司管勾從七品, 掌受發省部及外路文字。

≪금사≫ 백관지에 “승발사 관구는 종7품으로 성부 및 지방 문자의 수발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今郡縣掌使价文簿之吏曰承發。

오늘날 군현 장사의 문부를 맡은 아전을 '승발'이라고 한다.

 

金人周馳㪪子詩曰: 几案由吾正, 槃盂免爾傾。 注曰: 㪪子支起也。

금국 사람 주치(?∼1213, 자는 중재(仲才), 호는 우재(迂齋), 제남(濟南) 사람이다.)의 삽자시에 “궤안은 나를 바르게 하고, 쟁반 바리는 너의 기울어짐을 면하게 한다.”고 하였고, 그 주석에 “삽자는 지기다.”고 하였다.

今以丫木兩枚爲縱, 以直木爲橫, 庤物於丫間曰支機。

오늘날 가장귀 나무 두 개를 늘이고 곧은 나무를 세워 가장귀 사이에 온갖 물건을 올려 두는데, 이를 ‘지기’라고 한다.

 

文與可詩曰: 子天寒猶打錢。

문여가(1018∼1070, 이름은 同, 자는 與可, 호는 소소거사(笑笑居士)다.)의 시에 “아이들이 겨울에 오히려 타전을 하네.”라 하였다.

今童子鑿地穴, 握錢十餘葉擲之, 以入其穴。 又以一錢擲穴外散錢, 中則謂之勝。 稱曰打錢。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땅에 구멍을 파고 동전 10여 개를 손에 쥐고 이를 구멍 안에 넣는 놀이를 한다. 그리하여 흩어진 동전 외에 구멍 가운데로 던져진 한 동전을 이겼다고 하면서 ‘타전’이라고 부른다.

 

蘓轍濱遺老傳曰: 鄕差衙前民間, 常有破産之患。

소철의 ≪빈유로전≫에 “시골에 인민들 사이에는 아전을 두었는데, 언제나 파산의 근심이 있다.”고 하였다.

今稱列邑吏胥曰衙前。

오늘날 지방 이서를 아전이라고 부른다.

 

宋史兵志曰: 弓箭手地, 幷行打量。

≪송사≫ 병지에 “궁전수들이 땅을 모두 타량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今量田地曰打量。

오늘날 전지 면적을 헤아리고 살피는 것을 타량이라고 한다.

 

 

<少華風俗攷> ≪硏經齋全集外集≫53 故事類(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

 

이제까지 연경재 성해응 선생이 정리한 <소화풍속고(少華風俗攷)>를 ‘우리나라 풍속을 살피다’라는 제목으로 하여 열 차례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대체로 조선 후기 풍속사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주로 고대사와 연결 짓거나 오늘날 동북 3성 지역과 멀리는 몽골 지역의 풍속을 전하는 내용 가운데 성어(成語)를 비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성어 가운데에는 자전에 찾기 힘든 단어들도 종종 눈에 띠었다. 데데한 한문 실력 탓에 서툴게 옮기거나 잘못 옮긴 곳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강호제현의 편달을 바란다. 틈이 된다면 주석(註釋) 작업을 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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