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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대령單單大嶺은 고개가 아니라 산맥이다_성해응 Corean Clio

漢之疆理東國, 自今嶺東西, 而始漢武帝元朔元年, 東夷薉君降, 置滄海郡。 三年而罷其地, 後又誅右渠而定四郡。 如呑列ㆍ東暆ㆍ不而ㆍ蠶台ㆍ華麗ㆍ邪頭ㆍ昧前ㆍ莫夫租等八縣, 疑皆滄海郡故界也。

한의 영토가 우리나라를 다스림이 오늘날 영동과 영서 지방에서부터였다고 하는데, 한 무제 원삭 원년(기원전 128) 동이 예군이 항복하여 창해군을 설치한 것에서 비롯한다. (원삭) 3년이 그 땅을 파한 뒤 또 우거를 죽이고 4군을 정하였다. 탄열ㆍ동이ㆍ불이ㆍ잠대ㆍ화려ㆍ사두ㆍ매전ㆍ막부조 등 8현은 아마도 모두 창해군의 옛 지역인 듯하다.

 

後漢書單大嶺以東沃沮ㆍ濊貊先屬樂浪。 東國文獻通考自咸鏡道之劒山分水嶺, 至鐵嶺金剛山ㆍ五㙜山爲大關嶺, 橫千餘里, 卽單大嶺, 此因後漢書而知之。

≪후한서≫에서는 단대령은 동옥저ㆍ예맥으로 먼저 낙랑에 속하였다고 하였다. ≪동국문헌통고≫에서는 함경도의 검산 물길이 나뉘는 봉우리*)부터 철령에 이르러 금강산, 오대산이 대관령이 되는데, 길이가 1천 여리로 곧 ‘하나의 큰 고개’로 이런 까닭에 ≪후한서≫에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다.

 

*) 연경재선생은 함경도 검산 물길이 나뉘는 봉우리의 위치를 백두산 동남쪽이라고 하였을 뿐,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지 않았다. 한국학자료포털(http://www.kostma.net/) 고지명용례에 ‘검산(劒山)’이 황해남도 재령과 평안북도 선천에 보이고 있어서 연경재선생의 위치 비정과는 너무 떨어져 있다. 다만, 함경북도 무산에 ‘검덕산(檢德山)’이 보이고 있는데, 이곳과 관련해서는 보다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 고지도에 보이는 검덕산_한국학자료포털에서 얻음

 

盖東沃沮在盖馬大山之東, 盖馬大山, 卽白頭山也。 由白頭之東南至濊貊之境, 可千里, 恰當于通川ㆍ歙谷ㆍ文川等界也。 然則文獻通考之說其合矣。 今人指江陵大關嶺爲單大嶺, 此一偏之見也。

대체로 동옥저는 개마대산 동쪽에 있는데, 개마대산은 곧 백두산이다. 백두산 동남쪽에서부터 예맥의 영토까지 거의 1천 리가 되는데, 마치 통천ㆍ흡곡ㆍ문천 등의 땅에 해당한다. 그렇게 볼 때 ≪동국문헌통고≫의 주장이 마땅하다. 오늘날 강릉 대관령을 단대령으로 지적하는데, 이는 하나의 치우친 견해다.**)

 

**) 연경재선생은 단단대령을 하나의 고개로 여기지 않고 함경도 백두산에서부터 비롯하여 강원도 대관령에 이르는 백두대간을 뜻하는 것으로 여긴 듯하다. 한편, 한국학자료포털에서 제공한 고지도는 대동여지도, 현대지도는 구글지도인 듯하다.

 

△ 현대 지도에 보이는 검덕산_한국학자료포털에서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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