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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과 제국주의_김현구 Modern Corean Clio

경원선은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한 이후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이내 중지되었다가, 1910년의 식민지화 이후 재차 건설되었기 때문에 철도 건설에 있어 조선이나 열강 등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대로 모든 것이 가능한 상황에서 노선이 선정되었다. 경원선이 기존의 교통시스템과는 다른 노선으로 건설된 것은 산악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지형적 원인이 컸던 것으로 보여 진다. 뿐만 아니라, 철원에는 주요시장이 있었지만, 기존의 대로가 이곳을 통과하지 않아 철도는 이곳을 통과하도록 계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원선을 제외한 경부ㆍ경의ㆍ호남선은 기본적으로 기존 대로체계를 근간으로 건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철도를 건설하는데, 주 수입원으로서 화물보다는 여객에 중점을 두고 역의 입지를 선정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곳을 역의 입지로 적합한 곳이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시장을 중시하였다. 곧, 인구규모에 관계없이 장시가 열려 정기적으로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이 발생하는 곳이 역의 입지로 보다 더 적합한 곳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원선 주변은 경부ㆍ경의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시장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경원선은 주요시장 두 군데가 모두 철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노선 선정에 상업지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25년 지방제도에 근거하여 철도노선을 살펴보면, 경원선의 경우 읍치와 역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 6군현에 7.23km로 나타났다(단, 원산 주변의 군현은 제외함). 곧 읍치와 역간의 거리가 경부선과 경의선에 비하여 매우 큰 폭으로 나타났다. 이는 토지 구입 등이 조선총독부의 예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사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읍치 등과 같은 기존 시가지를 피해 역을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읍치로부터 떨어진 곳에 역이 설치됨에 따라 많은 경우 역 주변이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는 한편, 읍치는 쇠퇴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경부선의 대전역을 비롯하여 왜관역과 구미역 등에서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경원선의 경우 철원역에서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여기에 의정부역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원선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강화된 이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노선에 비해 경제적 관점이 중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현구 2008 <근대 한국에 있어 일본제국에 의한 철도건설과 읍치의 변화에 관한 역사적 연구> ≪건축역사연구≫제17권 6호(통권 6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덧글

  • 고리아이 2011/09/01 22:36 # 답글

    정재정 ≪일제침략과 한국철도≫(서울대 출판부,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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