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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유구열도를 여행하다_유구국 백두산 이야기

김비의(金非衣) 일행은 이라부시마에서 한 달 가량 머물다가 그곳 사람 열다섯 명과 함께 이틀 반의 여정 끝에 드디어 유구국에 이릅니다.

 

 

△ 류큐열도(琉球列島)

http://www.pref.okinawa.jp/summit/jp/a_la/map/index_nansei.htm에서 얻음

 

한 달을 머물다가 마파람이 불기를 기다려 섬사람 15명이 우리들을 데리고 같이 한 척의 배를 타고 2주야 반을 가서 유구국(琉球國)에 이르게 되었는데, 바닷물의 기세가 용솟음치고, 파도(波濤)가 험악(險惡)하여, 섬사람도 모두 배멀미를 했습니다.

유구국의 국왕(國王)이 호송인을 포상(褒賞)하여 각각 청홍 면포(靑紅綿布)를 하사(下賜)하고, 술과 밥을 후하게 먹이어 종일토록 취해 있었으며, 그 사람들은 하사받은 면포로써 옷을 만들어 입고 한 달을 머물다가 본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과 통사(通事)가 와서 우리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므로, 우리들이 대답하기를, ‘조선 사람이다.’라고 하니, 또 묻기를, ‘너희들은 고기잡이를 하다가 표류되어 여기까지 이르렀느냐?’ 하므로, 우리들은 같이 의논하여 대답하기를, ‘다 함께 조선국 해남(海南) 출신 사람인데, 진상(進上)할 쌀을 싣고 경도(京都)로 향해 가다가 바람을 만나서 여기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습니다. 통사는 우리들이 한 말을 써가지고 국왕에게 아뢰었는데, 조금 있다가 두어 관인(官人)을 보내어 와서 우리들을 맞아 한 객관(客館)에 있게 하였습니다. 이 집은 바다와의 거리는 5리(里)가 되지 못했는데, 판자로써 집을 덮었고, 문호(門戶)와 창벽(窓壁)이 있었으며, 돌담장이 있었는데 높이가 두 길이요, 담장에 문이 있어 밤에는 자물쇠를 걸었습니다. 또 관사(官舍)가 곁에 있었는데, 수령(守令) 두 사람과 감고(監考) 두 사람이 있었고, 따로 하나의 창고를 두어 재물(財物)ㆍ전포(錢布)ㆍ어염(魚鹽)을 저장해 두었습니다. 무릇 출납(出納)하는 데에는 수령이 이를 감독하였는데, 통사가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나라에 군읍(郡邑)의 관청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을 대접하는 데에는 매일 세 끼이고, 술도 있었습니다.

1. 한 집에서 5일의 양미(糧米)와 탁주와 생선젓을 관청에서 받아 대접하기를 마치면, 다음 집에서 또 받아서 돌아가면서 대접하였습니다. 대개 5∼6일마다 수령이 한 번 우리들을 찾아와 술과 안주를 대접했고, 또 관인(館人)으로 하여금 언제나 풍성하게 대접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마침 국왕의 어머니가 출유(出遊)하는 것을 보았는데, 칠련(漆輦)을 타고 사면(四面)에 발을 드리웠으며, 멘 자가 거의 20인으로 모두가 흰 저의(苧衣)를 입고 비단으로 머리를 쌌습니다. 군사는 긴 칼을 가지고 활과 화살을 찼는데, 앞뒤를 옹위(擁衛)한 자가 거의 1백여 인이었고, 쌍각(雙角)ㆍ쌍태평소(雙太平嘯)를 불었으며, 화포(火砲)를 쏘았습니다. 아름다운 부인 4, 5인이 채단(綵段) 옷을 입고, 겉에는 백저포(白苧布)의 긴 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들이 길 곁에 나가서 배알(拜謁)하니, 연을 멈추고 두 개의 납병(鑞甁)에다 술을 담아서 검은 칠을 한 목기(木器)로써 우리들에게 주었는데, 그 맛이 우리나라의 것과 같았습니다. 어떤 소랑(小郞)이 조금 뒤에 따로 갔는데, 나이는 10여 세가 될 만하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머리를 뒤로 드리우고 땋지 않았으며, 붉은 비단옷을 입고 띠를 묶었으며, 살찐 말을 탔습니다. 말굴레를 잡은 자는 모두 다 흰옷을 입었고, 말을 타고 앞에서 인도하는 자가 4, 5인이며, 좌우(左右)에서 부옹(扶擁)하는 자도 매우 많았습니다. 위사(衛士)로서 긴 칼을 가진 자가 20여 인이요, 일산(日傘)을 가진 자는 말을 나란히 타고 가면서 햇빛을 막았습니다. 우리들이 또한 배알하여 뵈이니 소랑이 말에서 내리어 납병에다 술을 담아서 대접하는데, 마시기를 마치자 소랑은 말에 올라서 갔습니다. 국인(國人)이 이르기를, ‘국왕(國王)이 훙(薨)하고, 사군(嗣君)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모후(母后)가 임조(臨朝)하게 되었는데, 소랑이 나이가 들면 마땅히 국왕이 될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1. 7월 15일에는 모든 사찰(寺刹)에서 당개(幢蓋 : 기(旗).)를 만드는데, 혹은 채단(彩段)을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채증(彩繒)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꼭두각시와 조수(鳥獸)의 형상을 만들어 왕궁(王宮)에 보냈습니다. 거민(居民)은 남자 가운데 소장(少壯)한 자를 뽑아서 혹은 황금 가면(假面)을 쓰고 피리[笛]를 불고 북을 치면서 왕궁으로 나아가는데, 피리는 우리 나라의 작은 피리[管]와 같고, 북 모양도 우리 나라와 같았습니다. 그날 밤에는 크게 잡희(雜戲)를 벌이고 국왕이 임석하여 관람하였으므로, 남녀로 가서 보려는 자가 길을 메우고 거리에 넘쳤으며, 재물을 말에 싣고 왕궁으로 나아가는 자도 많았습니다.

1. 해안(海岸)에서 왕궁과의 거리는 10여 리였는데, 우리들이 멀리 바라보자 한 전각이 매우 높으므로 물어보았더니, 곧 국왕의 거처라고 하였으며, 인가(人家)는 간혹 개와(蓋瓦)였으나 판옥(板屋)도 매우 많았습니다.

1. 남녀가 상투를 이마의 가장자리에 틀어 올렸는데, 비단으로 싸고, 서인(庶人)은 모두 다 백저(白苧) 옷을 입었습니다. 부인은 머리 뒤에 머리카락을 쪽지어 올렸고, 모두 다 백저포(白苧布)의 적삼과 백저포의 치마를 입었고, 혹은 백저포의 장옷을 입었으며, 그 귀한 자는 또한 채단을 입었고 유오아(襦襖兒)ㆍ유상(襦裳)도 있었습니다. 그 수령은 아롱지게 물들인 비단을 사용하여 상투를 싸고 백세저포(白細苧布)를 입었으며, 의대(衣帶)는 붉은 물을 들인 비단이고, 나갈 때에는 말을 타며 종자(從者)가 수인(數人)이었습니다.

1. 논과 밭은 서로 반반이었는데, 밭이 조금 많고 논은 겨울에 파종을 해서 5월에는 벼가 다 익어 수확을 마치며, 또 소[牛]로서 이를 밟아 다시 파종을 해서 7월에 이앙(移秧)하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또 수확을 하였습니다. 밭은 작은 삽으로 이를 일구어서 조를 심는데, 또한 겨울에 처음으로 파종하고 5월에 수확하고, 6월에 다시 파종하면 8월에 처음으로 이삭을 드리우고 익어갑니다.

1. 밥은 쌀을 사용하고 또 염장(鹽醬)을 사용하여 국을 만들며, 채소를 섞는데 혹은 고기를 쓰기도 합니다.

1. 술은 청주와 탁주가 있는데, 납병에다 담고 은술잔[銀鍾]으로써 잔질하며 맛은 우리 나라와 같았습니다. 또 남만국(南蠻國)외 술이 있었는데 빛은 누렇고 맛은 소주(燒酒)와 같으며, 매우 독하여 두어 종지를 마시면 크게 취하게 됩니다.

1. 사찰은 판자로써 덮개를 하고, 안에는 옻칠을 했으며, 불상(佛像)이 있는데, 모두 다 황금(黃金)이었고, 거승(居僧)은 머리를 깎았으며, 치의(緇衣 : 중이 입는 검은 물을 들인 옷.) 도 입고 백의(白衣)도 입었으며 그 가사(袈裟)는 우리나라와 같았습니다.

1. 밥은 옻칠한 목기에 담고, 국은 작은 자기(磁器)에 담으며, 또 자접(磁楪 : 자기 대접)이 있고, 젓가락은 있으나 숟가락은 없는데 젓가락은 나무였습니다.

1. 국중(國中)에 시장이 있는데, 채단(綵段)ㆍ증백(繒帛)ㆍ저포(苧布)ㆍ생저(生苧)ㆍ빗[梳]ㆍ전도(剪刀)ㆍ바늘ㆍ채소ㆍ어육(魚肉)ㆍ소금ㆍ젓갈이 있었고, 남만국(南蠻國)의 아롱진 비단ㆍ아롱진 면포(綿布)ㆍ단향(檀香)ㆍ흰 날에 검은 씨의 면포[白經黑緯綿布]ㆍ등당(藤唐)의 푸르고 검고 흰 면포ㆍ자기(磁器) 등의 물건이 있었습니다.

1. 중국 사람이 장사[商販]로 왔다가 계속해서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 집은 모두 다 기와로 덮었고 규모도 크고 화려하며 안에는 단확(丹艧 : 단청)을 칠하였고 당중(堂中)에는 모두 다 의자[交倚]를 설치하였으며, 그 사람들은 모두 감투(甘套)를 쓰고 옷은 유구국과 같았으며, 우리들에게 갓이 없는 것을 보고서는 감투를 주었습니다.

1. 나라 사람은 모두 맨발이고 신발을 착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1. 통사는 반드시 일본인(日本人)으로서 그 나라에 있는 자로 하여금 하게 하였습니다.

1. 강남인(江南人) 및 남만국(南蠻國) 사람도 모두 와서 장사를 하여 왕래(往來)가 끊이지 아니하는데, 우리들도 다 보았습니다. 남만인은 상투를 틀어올렸는데, 그 빛이 매우 검어서 보통 사람보다 특이하였고, 그 의복은 유구국과 같았으나 다만 비단으로 머리를 싸지 아니하였습니다.

1. 활ㆍ화살ㆍ도끼ㆍ갈고리[鉅]ㆍ도검(刀劍)ㆍ무자(䥈子)ㆍ낫ㆍ삽ㆍ갑옷과 투구[甲胄]가 있었는데, 갑옷은 혹 철(鐵)을 쓰기도 하고 가죽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1. 군사(軍士)는 철로써 정강이를 싸고, 혹은 가죽에 옻칠을 입힌 것을 사용했는데, 행전(行纏)과 같았습니다.

1. 그 지대는 따스하기가 윤이도와 같았습니다.

1. 소나무ㆍ종려나무ㆍ대나무가 있고, 그 나머지는 잡목(雜木)인데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1. 집에 쥐가 있고, 말ㆍ소ㆍ염소ㆍ고양이ㆍ돼지ㆍ개ㆍ닭ㆍ집비둘기ㆍ거위ㆍ오리를 기르며, 말과 소를 잡아먹기도 하고 혹은 저자에 팔기도 하며, 또한 닭을 먹었습니다. 날짐승으로는 까마귀ㆍ까치ㆍ황작(黃雀)ㆍ매ㆍ제비ㆍ갈매기ㆍ바다 가마우지ㆍ올빼미가 있었습니다.

1. 과실로는 매화ㆍ복숭아ㆍ유자ㆍ청귤(靑橘)이 있었습니다.

1. 채소로는 토란ㆍ가지ㆍ참외ㆍ동과(冬瓜)ㆍ무우ㆍ파ㆍ마늘ㆍ해바라기ㆍ박ㆍ파초(芭蕉)가 있었습니다.

1. 곤충으로는 모기ㆍ파리ㆍ두꺼비ㆍ개구리ㆍ거북ㆍ뱀ㆍ달팽이ㆍ벌ㆍ나비ㆍ사마귀ㆍ잠자리ㆍ등에[蝱]ㆍ연가시새끼[蜱]ㆍ지네ㆍ거미ㆍ매미ㆍ빈대[臭蟲]ㆍ지렁이ㆍ개똥벌레가 있었고, 또한 메뚜기와 비슷하며 큰 것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잘 먹었으므로 혹 저자에 팔기도 하였고, 또 박쥐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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