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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시대 지역공동체를 생각하며_노명호 고리적 이야기

고리시대 계급적 갈등 가능성이 상존하는 속에서도 많은 지역공동체들의 공조관계는 장기간에 걸쳐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었다. 지역공동체관계의 장기적 지속을 가능하게 한 요인들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가 필요하나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지방의 새로운 강자인 호족과 그 휘하 민 사이에는 보호와 수취 부담이라는 쌍방관계와 그 정도에 대해 양자 사이에 묵시적 타협의 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둘째, 호족층의 민과 지역공동체에 대한 보호라는 책무는 새로운 지배층의 사회적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셋째, 당시 지방사회 지배체제의 구성 면에서도 호족세력에 대한 제약요인이 검토될 수 있다. 곧, 한 지방사회에서 상층 세력이 복수로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방사회의 지배체제가 호족들의 연합체 또는 과두체제로 이루어질 때, 호족 간의 견제로 어느 한 호족이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만큼 하위층 민과의 관계도 공동의 생존을 위해 타협하고 절제하는 방향을 취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끝으로, 고리시대 각 지역에 존재했던 지역공동체 단위의 향도나 축제 등도 그러한 것에 해당할 것이다. ‘남녀소장’이 그 순서에 따라 모여 앉아 마시고 즐기는 ‘향도연香徒宴’은 전국적인 풍속이었다(≪고리사≫심우경 열전). 지방별 특색을 갖는 제전祭典에서는 공동체 단위의 유대와 연대감을 새롭게 하며, 백희百戱의 놀이가 행하여지는 의례화된 과정 속에서 하층민들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표출됨으로써 그 자체만으로도 갈등을 순화시키고, 상하층 사이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기회를 열고 있었다. 염흥방과 이성림이 성묘를 다녀오다가, 인파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세도가들의 가노들이 백성들에게서 가혹하게 수조收租하는 형성을 연희하는 탈놀이를 목도하고, 염흥방은 별 생각 없이 즐거워하였으나 이성림은 부끄러워하였다는 것은 그 한 예다(≪고리사≫ 염흥방 열전).

고리시대 지역공동체 단위의 공동체적 질서는 이러한 내부 장치들에 따라 공동체 내부의 계급적 갈등 확대를 억제하고 해소하며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12세기 말 이후 중앙권력의 지방침투가 확대됨에 따라 지역공동체의 존립환경은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갔으나 13세기 후반 몽골과의 전쟁기까지 상당수 지역공동체들이 유지되었다. 그 뒤 14세기에는 급격히 해체되어 갔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14세기 말까지도 지역공동체로서의 체제가 남아 있었다.

 

노명호 2009 ≪고려국가와 집단의식 : 자위공동체ㆍ삼국유민ㆍ삼한일통ㆍ해동천자의 천하≫, 서울대학교출판부, 10∼17쪽.

 

# 유럽 역사에서도 봉건사회를 ‘장기지속’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연구가 일찍부터 있어 왔다. 고리와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한 왕조가 500년 가까이 지속할 수 있게 한 역사적 원인이 무엇일까 하는 관점에서 지역공동체의 견고한 유지가 한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도록 하는 글이라 여기기에 여기에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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