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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의 발생론적 층위_이종철 장승나라를 보았니?

(1) 장승의 기원은 마을제사(洞祭)ㆍ제천의례와 관련, 솟대ㆍ선돌(menhir)ㆍ서낭당과 함께 고유 민속신앙에서 기원

 

 

▲ 거류면 은월리 정촌 마을 은정자 동제_http://goseong.newsk.com/

 

 

▲ 죽곡리 서낭목_http://news.khan.co.kr/

 

(2) 솟대의 새와 연관시켜 시베리아, 퉁구스 등지의 북방문화 기원

 

 

▲ Kerloas menhir

_http://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Kerloas_menhir.JPG

 

 

(3) 선돌에 맨 왼새끼 금줄, 선돌의 남부 집중 분포, 벼재배문화와 관련 남방문화의 기원

 

▲ 왼새끼와 장승_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찾아 정산리를 가다_http://blog.ohmynews.com/tradition/320211

 

 

▲ 왼새끼와 솟대_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찾아 정산리를 가다_http://blog.ohmynews.com/tradition/320211

 

▲ 장승과 솟대_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찾아 정산리를 가다_http://blog.ohmynews.com/tradition/320211

 

(4) 음양에서 풍요와 다산의 남성 상징인 링가숭배(男根信仰)

(5) 장생고*, 장생전**, 사찰장생 등 불사찰에서 기원설이 논의되고 있다.

 

* 장생고長生庫 : 고려시대 사원의 금융기구. 절에 딸린 사원전寺院田에서 수확한 소득을 자본으로 해서 이자 발생의 원칙에 따라 민간경제의 융통을 기하고 절 자체의 유지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결국 절의 부富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어 서민 금융경제의 폐해와 부패를 조장하였다. 절은 사속寺屬의 노비를 생산수단으로 부리는 동시에 자본의 주체인 곡물을 가공하여 양주釀酒·조면造麵을 경영하고, 나아가서는 차 재배·제차업까지 손을 대었다. 그리고 차와 주류의 판매까지 삼보三寶의 명령 아래에서 행하게 됨에 따라 국가에서 여러 번 금지령이 내렸으나,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뒤에 가서 절뿐만 아니라 왕실·귀족이 각각 장생고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_두산대백과사전ㆍ브리태니커백과사전 참조

 

▲ A Gitxsan pole (left) and Kwakwaka’wakw pole (right) at Thunderbird Park in Victoria, British Columbia._http://en.wikipedia.org/wiki/Totem_pole

 

** 장생전長生殿 : 당唐 때 절에서 행해진 금융업. 고질전庫質錢이라고도 하였다. 이 시기 절은 귀족과 부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장원莊園을 소유하는 장원의 영주領主였다. 절의 장원은 귀족·부호의 장원에서와 같이 빈민의 전지田地를 겸병兼倂하고, 내세來世의 공덕을 기대하고 내놓는 희사喜捨 등으로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장원에서는 노비를 농사일에 부리고 연개(碾磑: 탈곡·제분용 수력 연자매)를 설치하는 등 다각적인 경영을 통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모은 재산(곡물 등)을 저장하기 위해 무진장無盡藏이라는 창고를 짓고 이 재산을 자본으로 이자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장생전’이라 하였으며, 장생전을 대부할 때는 담보물을 받았다. 장생전으로 얻어지는 수익 또한 적지 않아 많은 사원이 장생전을 운영하였고, 본전이 이자를 낳고, 이자가 이자를 낳아, 그 이익이 끝이 없다 하여 ‘무진재無盡財’라고도 하였다._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 Totem poles in front of houses in Alert Bay, British Columbia in the 1900s._http://en.wikipedia.org/wiki/Totem_pole

 

이종철 1992 <장승의 문화적 의미와 상징> ≪역사민속학≫2, 한국역사민속학회,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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