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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학의 과제_이인영 Corean Thought Clio

해방 직후 새롭게 이 땅의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인영ㆍ손진태를 중심으로 한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 사학이다. 그것을 정리하여 보인 이인영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의 현실은 진실로 역사적 소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구명할 역사학의 과제는 학문의 유희로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학적 방법론의 수립을 요망하는 바이다. 역사학은 과거의 객관적 사실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과거의 사실은 당연히 제외될 것이니 어데까지나 역사의 탐구가 현실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어서는 우선 역사를 신화나 전설의 형식으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역사는 신비적 기적적 현상이며 천국의 역사로 본 것이다. 다음에는 역사를 교훈적 실용적 재료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역사는 제왕의 연대기가 아니면 위인의 전기로서 권선징악의 역사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각종 지식 발달과 아울러 역사연구의 기술적 방면과 사관의 문제는 급속히 진전을 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역사학은 새로운 사관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역사를 엄정중립 절대공평 불편부당의 태도로 관찰하며 기록할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엄정중립이나 불편부당도 한 개의 입장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니 역사서술이 입장의 소유를 떠나서 성립치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서양에 있어서는 19세기 이래 역사에 있어서의 법칙발견의 가능여부가 문제이었었다. 역사법칙 부인론의 근거는 첫째 역사적 현실에 있어서의 반복치 않는 일회성의 지적, 둘째 역사적 현실에 있어서의 우연성의 시인, 세째 개인의사 급 행동의 자유성 긍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로 자연계의 제현상에 있어서 일정한 원인이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이 역사현상에 있어서도 자연적 사회적 특수성은 물론 고려치 않으면 안될 것이지만, 필경 유사한 원인은 유형적 현실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으며 둘째로 우연성이란 인간지능의 부족, 관찰의 불충분에 기인할 뿐으로 자연과학적 영역에서는 벌써 우연의 존재가 해소된 만치 역사적 현실에 있어서도 우연은 존재치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셋째로 개인 급 집단의 의사와 행동은 완전한 자유성을 가진 것 같이 보이기는 하나 실상은 자연적 사회적 제약 하에 비로서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무제한 행동성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역사에 있어서의 어떤 종류의 인과율 설정은 가능한 것이며 새로운 역사학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진행의 일반적 보편성을 시인할 것이다. 다만 보편성이라는 명목 하에 지역적 사회적 특수성을 전혀 무시하고 일률적 공식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상 문제되는 것은 일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의욕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그러한 집단은 과연 어떤 것인가. 현실에 관한 한 그러한 기본적 집단으로서 민족을 들 수 있으며 민족의 내용으로서 계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은 인류사회의 한 공동체로서 그 발생 시초에 있어서는 혈연적 요소를 토대로 한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다만 현대 이익사회에 있어서는 혈연요소가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구체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민족은 대체로 씨족 부족 종족의 발전과정을 거쳐서 그것을 포섭 또는 토대로 형성된 것이니 마치 단일종족으로 성립되였든 복수적 그것이든 간에 민족구성에 있어서 혈연적 요소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며 복수적이면서도 그 중의 어떤 하나가 주체적 역할을 하는 것도 틀림없는 것이다. 민족 표현의 특색으로서 언어의 공통, 지역의 공통, 경제의 연관, 문화의 공동, 급 전통적 심리의 공통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역의 공통이다. 이 지역 공통을 토대로 그 위에 혈연 언어 경제 문화 급 심리의 제현상이 구성되는 것이다. 일단 민족이 형성되면 그 형성과정이 장기간의 역사적 변천을 필요로 한 만큼 민족의 소명도 역시 상당한 기간의 역사적 과정을 요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바이다. 민족은 비단 자본주의시대에 국한한 존재가 아니다. 자본주의 발생 이전에 민족은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자본주의 체제 이전의 정치적 경제적 관련 하에 민족은 약동하였다. 다시 말하면 봉건주의도 민족의 구성과 해체에 작용하였으며 자본주의도 또한 민족이 재구성을 촉진시켰던 것이니 민족 자체가 언제나 고정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다만 민족의 흥망이 단시일에 용이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할 것이다.

계급은 원시 모계 씨족사회의 경제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결과한 역사적 산물이다. 원래 민족은 계급을 내포하면서 구성되었다. 민족의 존재가 민족의식을 초래하는 것과 같이 계급의 존재는 계급의식을 가져오게 되는데 계급이 존재하는 한 민족의 완전한 유기적 결합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급 타파는 피지배계급 자신의 이념일 뿐만 아니라 진실로 민족적 입장에서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자본가와 지주와 노동자가 삼대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지역적 민족적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시인할 수 있는 현상이며 계급이해는 계급투쟁의 노선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시대를 제외한 전 역사야말로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표현은 일면의 진리를 파악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민족단위의 생존경쟁이 지구상에서 특히 동양세계에서 과거에 발전되었고 현금에도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설명치 않으면 안 될 새로운 역사학은 계급투쟁의 이론과 아울러 민족투쟁의 전개를 망각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한 투쟁도 그 대전제로서 협조와 친선과 통일의 이념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당한 장래에 있어서 고도의 과학 문명 발전과 보조를 같이하여 민족과 계급을 초월한 하나의 인류사회의 출현은 우리의 이상으로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역사학은 현실적 민족적 입장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민족국가 상호 간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교류 관계를 명백히 하며 계급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역사적 현실을 일관하는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힐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역사학은 민족주의적 사관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나 재래의 민족주의가 다만 특권 계급의 용구로 이용되고 혹은 고루한 국수주의 배타독존사상으로 전락하고 혹은 침략적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전환한데 대하여서는 예리한 비판을 내릴 것이다.

끝으로 일언하노니 사관없는 사료 나열 목적없는 문헌 고증은 지도(紙塗)의 낭비뿐이다.

 

李仁榮 1947 <새로운 歷史學의 課題> ≪朝鮮敎育≫1-4, 朝鮮敎育硏究會, 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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