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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舞雩 Corean Holy Places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논어 구절을 찾다가 변계량卞季良이 태종에게 교사郊祀 곧,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을 낸 글(≪태종실록≫31, 16년(1416) 6월 1일) 가운데 다음과 같은 주희의 딸림글(集註)을 인용하고 있어요.

 

무우는 하늘에 제사하여 비를 비는 곳이다[舞雩 祭天禱雨之處云爾].

 

무우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인데, 그 제사 대상이 하늘인 제사장이어요. 이 딸림글은 본디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 증석曾皙,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에게 자신들의 바람을 물어보는 가운데, 증석이 자신의 포부를 말한 내용에 대한 딸림글이지요. 증석의 바람은 다음과 같아요.

 

늦은 봄 봄옷이 만들어지면 갓쓴 이 예닐곱과 어린아이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면서 시를 읊고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既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_논어 선진

 

증석의 바람을 들은 공자는 기꺼이 찬동하고 있지요. 그런데, 주희의 딸림글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어요.

 

제단이 있는 제사장에는 나무가 있다[有壇墠樹木也].

 

무우라는 제사장에는 제단과 나무가 있다고 하고 있지요. 한편 ≪논어주소해경論語注疏解經≫(13경주소)에는 다음과 같은 딸림글이 있어요

 

무우는 하늘에 제사하여 비를 비는 곳으로 제단이 있는 제사장에는 나무가 있어 쉴만한 까닭에 무우 아래로 소풍을 가겠다고 한 것이다[舞雩 祭天禱雨之處 有壇墠樹木 可以休息 故云 風涼於舞雩之下也].

 

≪논어주소해경≫의 딸림글에 “쉴만한 까닭에”이라는 구절이 주희의 그것보다 생생함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이 무우라는 제단은 마치 환웅천왕이 신시를 열고, 또 웅녀가 환웅천왕에게 혼인을 빌던 제단과 신단수神壇樹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바로 ≪삼국유사≫의 다음 내용이지요.

 

환웅은 무리 삼천명을 이끌고 태백산에 있는 신단수 밑으로 내려왔는데 이곳을 일러 신시라고 한다. 이 분이 바로 환웅천왕이라고 불리시는 분이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날마다 단수 밑에 와서 잉태하기를 축수하였다. 이에 환웅이 임시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였더니 이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가 바로 단군 왕검이다.[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신단수]

_본디 그림이 있는 곳: [류병학의 1분 미술학교]공공미술의 기원, 신단수

_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8202136345&code=990000

 

웅녀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신단수는 하늘에 무엇인가 바람을 비는 곳, 곧 제사장이라 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저들의 제사장은 웅녀의 그것을 본뜬 것은 아닐까요? 곧, 옛날 중국이 하늘에 비를 비는 제사장의 모범이 조선의 제사장을 본떠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라 하겠어요. 그렇다면 당시 문화 흐름도는 바뀌어야만 하겠지요. 여기에 상상력을 더 한다면, 웅녀가 환웅에게 결혼하자고 할 적에, 단군왕검이 다스릴 적에는 조선이 중국보다 문명이 발달한 상국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역사의 흐름 속에 중국이 강력한 세습군주제를 바탕으로 넓은 영토와 건강한 경제력을 확보하면서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어요. 그래서 중세 조선에 이르러서는 조선은 당시 중국 왕조 명에 대해 제후국으로 자처하였기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변계량의 상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관의 평이 딸려 있지요.

 

변계량이 부처에 미혹하고 귀신에 아첨하며, 하늘에 배례拜禮하고 별에 배례하여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하늘에 제사하자는 이야기를 힘써 주장하니, 분수를 범하고 예를 잃음을 알지 못함이 아닌데, 한갓 억지의 글로써 올바른 이치를 빼앗으려 한 것뿐이다.

 

그런데, 변계량은 이러한 평가와 비슷한 주장을 자신의 상서문에서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자신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지요.

 

천자天子가 천지天地에 제사지내는 것은 상경常經이요, 하늘에 비를 비는 것은 비상非常의 변통에 대처하는 것이라… 일이 급하고 사정이 지극할 경우에는 직접 와서 신문고를 두드려서 임금에게 아뢰는 자도 있는데, 무엇이 이와 다르겠습니까… 비록 하늘에 비를 빈다고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이제 빌지도 아니하고 흡족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국가의 법은 제사祭祀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제사의 예법은 교천郊天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법은 옛 전장典章을 지키는 것이니, 이것이 그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이것에서 말미암아 말한다면, 우리 조정에서 하늘에 제사한 일은 선세先世에서 찾게 되니, 1천여 년을 지나도록 기운이 하늘과 통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고황제高皇帝가 또 이미 이를 허락하였고, 우리 태조太祖께서 또 일찍이 이에 따라서 더욱 공근恭謹하였으니, 신이 이른바 우리 동방에서 하늘에 제사하는 이치가 있어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이것 때문입니다.

 

변계량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말하고 있듯이 변통에 가깝지요. 그래서 조선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신문고를 두드리는 급한 사정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가뭄이 해갈되는 것 자체를 의심하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을 다시 하자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 주장 속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변통이 있지요. 곧, 태종의 등극은 엄격히 따지면 쿠데타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태종은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무지 노력을 하지요. 그러한 변통에서 비롯한 것이 바로 변계량의 제천 주장이라 할 수 있지요. 여러 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강호 제현의 엄하고도 사랑 가득한 채찍을 바랍니다.




덧글

  • 고리아이 2010/08/27 19:34 # 답글

    비록 한어漢語로 되어있지만
    무우舞雩_글자 그대로 새기면, 비를 빌고자 춤을 추는 곳 또는 비가 춤처럼 내리도록 비는 곳이라 할 수 있겠지요_와 관련한 귀한 자료가 있어 참고할 만한 곳입니다

    http://www.minlun.org.tw/old/350/t350/t350-5-3.htm
  • 도시애들 2010/08/27 20:25 # 답글

    우리민족은 정말 넘 멋져요..
    모든것을 즐거움과 애뜻함을 섞어..
    희로애락을 즐겼던...
    너무 슬퍼도 춤과 음악..
    넘 기뻐도...ㅎㅎㅎㅎ
  • 고리아이 2010/08/28 16:16 #

    지금도 남도 땅에 가면
    슬픔도 흥겨운 춤과 음악, 소리로
    이겨내는 슬기로운 인민들을 만날 수 있지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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