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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가벼운 발걸음

오늘 파주 광탄과 법원리, 장흥 주변에 일이 있어 갔다가

잠시 틈을 내어 근처에 있는 보광사를 들렀어요

보광사는 요즘 뜨고 있는 문화방송 <동이>의 주인공인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을 지키는 원찰로 알려져 있지요
마침 절에 재가 있어 이른 저녁 공양 한 쟁반 얻어 먹을 수 있었답니다^_^))

 

 

△ 보광사 일주문

 

 

△ 보광사 해우소

 
 

△ 공양 한 쟁반


△ 보광사 도솔다원

 

 

△ 범종각

 

 

△ 만세루에 걸려있는 목어

 

보광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을 지키는 원찰이지요

894년 도선 스님이 비보 사찰의 하나로 세운 절로 전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에 들어와 1622년과 1634년에 불사가 있었고,

아래 자료에 보이듯 숙종 년간에는 승군(僧軍)의 훈련소와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기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네요

그래서 이곳을 방문한 이덕무도 당시 스님들이 무예만을 이야기하고 절집에는 활과 화살을 비롯한 병장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네요

 

숙종 신묘(1711, 숙종 37)에 건치함…. 승창(僧倉) 각고(各庫)가 28문…. 보광사(普光寺)<2문 가운데 1문에는 군기(軍器)가 있음.> ; ≪만기요람≫ <재용편>6, ‘제창(諸倉)ㆍ관성소의 각 창고[管城所各倉庫]’

 

숙종 37년 신묘에 대신 이유(李濡)가 건의하여 산성을 쌓고 행궁(行宮)을 세우고 향곡(餉穀)ㆍ군기를 저장하여, 방위하는 곳을 만들었다<성의 둘레 7,620보, 성랑(城廊) 121, 장대(將臺) 3, 못 26, 우물 99, 대문 4, 암문(暗門) 10, 창고 7, 큰 절 11, 작은 절 3. 관성소(管城所)를 설치하였다>…. [치영(緇營)] 승병(僧兵)을 설치하고 치영이라 하였다…. 보광사(普光寺)는 대성문(大城門) 아래에 있다<75칸>. ; ≪만기요람≫ <군정편>3, ‘총융청(摠戎廳)ㆍ북한산성’

 

보광사(普光寺)<대성문(大城門) 아래에 있다. ○75칸이다.> ; ≪동국여지비고≫2 <한성부> ‘불우’;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3

 

보광사(普光寺)의 법당(法堂) 조정(藻井 : 화재를 예방하는 뜻으로 수초를 그린 천장.)에는 신사년(영조 37, 1761)에 유람한 3인의 성명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지? 다행히 거미줄을 쓸고 살피면 우리 3인의 얼굴을 보는 것 같으리라. 아, 자휴는 상을 당하였고 여수는 남쪽에 가 있어 세 사람이 멀리 서로 떨어져 회합하기가 쉽지 않다. 중오는 우리들 세 사람과 모두 좋아하는 친구이니 감개함이 나와 같으리라. ; ≪영처문고(嬰處文稿)≫1; ≪청장관전서≫3, <북한산(北漢山)으로 독서하러 가는 이중오(李仲五)를 보내는 서(序)>

 

날이 저물어 성문에 이르니 바로 산이 끝나는 곳이다. 성문의 아래는 지형이 약간 낮고 단풍나무ㆍ남나무ㆍ소나무ㆍ삼나무가 수없이 많으며, 텅 빈 골짜기에는 메아리가 잘 울린다. 찬 기운이 처음으로 사람을 엄습하였다. 드디어 보광사에 이르러 법당(法堂)의 오른쪽 조정(藻井)에 세 사람의 성명(姓名)을 크게 써 놓았다. 화상(和尙)들은 모두 무예(兵)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으며, 벽실(壁室)에는 창ㆍ칼ㆍ활ㆍ화살 등을 저장하고 있었다. 항혼 무렵에 태고사(太古寺)에 도착하여 투숙하였다. ; ≪청장관전서≫3, <북한산(北漢山) 유람기ㆍ보광사(普光寺)>

 


△ 보광사 대웅보전

 

 

△ 보광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

 

 

△ 응진전과 산신각

 

 

△ 원통전과 무영탑

 

 

△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는 어실각

 

 

△ 영조가 심었다는 어실각 옆 향나무 

 

 

이어 영조가 자신의 친모인 숙빈 최씨를 위한 원당으로 보광사를 점찍어 관리하였겠지만, 아쉽게도 조선왕조실록과 야사에는 보이질 않고, 정조가 소령원에 몸소 제사를 지낸 뒤 보광사 승려들에게 폐단을 물은 뒤, 그에 대한 조치가 ≪일성록≫에 간단하게 보이고 있고, 이어 고종 때 경기 암행어사 이헌영이 이곳에 머물면서 암행 결과 보고서를 정리하였다는 짤막한 보고가 ≪승정원일기≫에 보이고 있네요

 

소령원(昭寧園)에 나아가 친제(親祭)하고, 이어서 수길원(綏吉園)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다시 고양군(高陽郡) 객사에 나아가 도과(道科)를 설행하고, 이어서 사단(射壇)에 나아가 친히 활을 쏘았다. 다시 행궁으로 돌아와서 문무과(文武科)의 과차(科次)를 행하고 그대로 경숙(經宿)하였다.<승지 박천형(朴天衡)에게 명하였다: 보광사(普光寺)의 중을 불러 와 폐단을 물어서 아뢰라.

박천형이 돌아와 아뢰었다: 제향할 때 여섯 수복(守僕)이 짚신을 요구하는 폐단과 각읍에서 심부름 나온 교졸(校卒)들이 밥을 요구하는 등의 일이 폐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일렀다: 수복들이 짚신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예조에 분부하여 또다시 침해하지 못하게 하고, 교졸들이 밥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경기 감영으로 하여금 각별히 금칙(禁飭)하게 하라.> ; ≪일성록≫ 정조11년(1787) 8월 16일(신해)

 

보광사(普光寺)에 쌀과 무명을 제급(題給)하라고 명하였다.<○ 보광사 중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하교하였다: 본사(本寺)는 어가가 머물렀던 곳이어서 이미 승지로 하여금 중을 불러와서 폐단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게 하였다. 각각 쌀 3두(斗)와 무명 1필(疋)을 제급하라고 진휼청에 분부하라.> ; ≪일성록≫ 정조11년(1787) 8월 23일(무오)

 

경기 암행어사 이헌영(李[■;櫶-木+錫-易]永)이 암행과 관련한 서계와 별단을 이곳에 머물면서 정리함. ; ≪승정원일기≫ 고종15년(1878) 3월9일(기미)

 

△ 길 옆에서 만난 다람쥐보살

 

다음에 들리게 되면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

그리고 보광사 조정에 이름을 남긴

이덕무와 그의 동무들의 글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_^))


보광사와 관련한 정보를 더 보고 싶으신 님들은

아래 누리집에 들어가 살펴보셔요

보광사 누리집 바로가기 : http://www.bokwangsa.co.kr/




덧글

  • 도시애들 2010/07/20 00:12 # 답글

    정말 정감이 가는 사찰이었는데
    요즘에와서 많이 달라져 갑니다.ㅎㅎㅎ
    참 가까운곳 장흥에 소령원도 다녀오시지요...에효
    정말 좋은 곳인데..ㅎㅎㅎ
  • 고리아이 2010/07/21 13:29 #

    소령원은 깜박하고
    지나쳤어요
    술이라도 한 잔 올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한 뒤에
    담에 인연이 되면
    꼬옥 찾아 뵈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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