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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이 못 뛴다고요? 축지법도 쓴 임금인데^_^))_02 가벼운 발걸음

한편, 숙종이 ‘축지’는 안 했지만, 그와 비슷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보이고 있네요. 이제 소개하도록 할게요.

 

㉠ 이전에 숙종대왕이 말이여. 참 숙종때왕이 대축 한다 캤거든. 온 조선을 하루밤에 시 바꾸 돌았다카는 대왕이여.(강순천(경북 선산 옥성면) <숙종대왕과 병조참판 된 더벅머리 총각> ≪한국구비문학대계≫7-16, 393∼7쪽)

 

㉡ 이전에 숙종대왕이 야간을 하룻밤에 삼천리를 이래 딩기신다 카는데. 한군데 삼천리 갔다가 오는 도중에 어 보이끼네, 삼 모자간에 미느리하고 할미씨하고 아들 하나하고 서이가 앉아서 물로 버지기다가 한 버지기 떠서, 박재기를(1) 엎어 놓고, 어 아들은 박재기를 띠디리메, 에 박재기를 띠디리고 미느리는 퍽퍽 울어쌌고 아(2), 미니리는 머리를 깎고 춤을 나풀나풀 추고 나 많은 모춘은 훌쩍훌쩍 울아싸코 이래 싸이, 이 숙종대왕이 하룻 밤에 삼천리를 이래 댕기다가 아무도 이득을(3) 못하겠어.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숙종대왕이 거어 드갔어요.(이용수(경북 달성 화원면) <숙종대왕과 효부 며느리> ≪한국구비문학대계≫7-14, 114∼6쪽)

 

(1) 가지를 (2) 앞의 말을 정정함 (3) 이해를

 

㉢ 옛날에 숙종대왕이 하릿 저닉에 삼천리 강산을 돌그덩요. 하릿 저닉에. 한 군데는 가이께네, 가마 순행을 돌아 보이, 참 자미시러분 집이도 있어요.(이선재(경북 월성 현곡면) <숙종대왕이 순행을 하는데> ≪한국구비문학대계≫7-1, 406∼8쪽)

 

㉣ 숙종대왕이 하릿(4) 저녁에 우리 삼천리 강산을 전부 야경(夜警)을 다, 다 한 어른이거든.(손출헌(경남 밀양 산내면) <숙종대왕 기행> ≪한국구비문학대계≫8-8, 613∼6쪽)

 

(4) 하루

 

㉤ 이전 숙종대왕이 참말로 국태민안하고 시화연풍이라. 그때는 참말로 나라가 참 좋더랍니다. 요때 숙종대왕이 하로 저녁에 삼천리를 댕겼어, 삼천리로.(서진철(경남 김해 상동면) <숙종대왕과 촌부> ≪한국구비문학대계≫8-9, 881∼4쪽)

 

조선 땅을 하룻밤에 세 바퀴를 돌았다는 이야기(㉠)와 하룻밤에 삼천리강산을 다녔다는 이야기(㉡ㆍ㉢ㆍ㉣ㆍ㉤)가 바로 그것이지요. 이 세 이야기는 비록 ‘축지’라는 표현은 없지만, 숙종의 달음박질이 아주 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어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 속에는 숙종의 잰걸음에 대한 표현과는 관련이 없는 ‘삼천리 순행’ 또는 ‘전국 순행’이 보이기도 해요.

 

㉥ 여름에 그 다니면서 그걸 순행을 참 그걸 돌았다 하죠? 삼천리 강산을 돌아댕기면서 순행을 할 때에,[청중:대왕 하믄 숙종대왕 아이가?]참 그걸 할 때에, 한참 이 촌에 어데 참 산골짜기 들어가니께네(손기화(경남 밀양 산내면) <숙종대왕 기행>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8책≫, 546∼9쪽)

 

㉦ 숙종대왕이 삼천리 강산을 이래 야행으로 댕길 때게, 어떠한 산골에 이래 척 가니, 그래 인적은 고요하고 없는데, 어데 글 소리가 나는 기라.(손기도(경남 밀양 산내면) <숙종대왕 기행>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8책≫, 655∼61쪽)

 

㉧ 숙종대왕이 우리 삼천리 강산을 한 바꾸 돌 때, 참 저녁마짐 순례를 돌고 있는데(정택환(경남 거창 거창읍) <숙종대왕과 신 삼는 노인>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5책≫, 395∼8쪽)

 

㉨ 숙종대왕이 전국을 순행을 허는디, 하로는 경상북도 안동을 갔어.(박대열(경남 하동 악양면) <숙종대왕 암행>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14책≫, 550∼5쪽)

 

아마도 ㉥∼㉨의 이야기가 먼저 생기고 나서, 축지법을 쓰는 숙종의 이야기가 그려진 뒤, ㉠∼㉤의 이야기가 태어난 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런데, 민정 시찰을 목적으로 다닌 숙종의 잰걸음과 달리 숙종이 정치적 숙정으로 인한 애꿎은 죽음을 위로하고자 미행을 했다는 이야기가 보이고 있어요.

 

㉩ 숙종대왕 즉위 십년에 국태민안하고 과급인조 요지이도리요 순지근본이랬다. 그 숙종대왕이, [청중 : 국태민안은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안목한 걸….] 살행을 마이 했답니다마는 어질었답니다. 어질어가주고, 그래 숙종대왕이 조선팔도에, 대왕노릇을 안하고 헌 파립 씨고 댕기민서 순탐을 했다 말이라.(최귀식(경북 군위 효령면) <숙종대왕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7-11, 355∼62쪽)

 

㉪ 숙종대왱이 야행을 했다. 야행을. 야행한 원인이, 우째서 야행을 했는고, 거 인제 그 이얘기입니다. 숙종대왱이 사람을 마이 직있어요. 사람을 마이 직있기 때문에, 내 마음으로 직인 기 아이라. 간신들, 당파들이 저 간신질을 해서 사람을 마이 직있어. _억조창생이 날 어느 정도 원망을 하는고._ 하고 이래 야행을 했더랍니다. 숙종대왕마마가 십사 세 왕위에 앉은께, 당파가 당파들이 그저 저 파를 허비 뜯고(헐뜯고) 저 파는 이 파를…, 고마 그 옳다고 말 한 마디만 사람이 쓰러져요. 그래서 사람을 마이 직있더랍니다. 마이 직있는데 그 성군 숙종대왕께서 절대로 마음으론 사람 안 직었어요, 그러고 이십 칠 세 때 그때 또 장희빈 땜에 또 사람 죽는데, 그때 박태보겉은 그런 양반도 죽어. 사램이 마이 죽었어. 마이 죽고 나인께 자꾸 야행 자주 댕길 거 아입니까? _어느 정도 나를 원망하는고._ 이래 하다가.(김호준(경북 선산 선산읍) <숙종대왕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7-15, 350∼64쪽)

 

곧, 숙종 때 벌어진 정치적 상황인 환국(換局)_1680년(숙종 6)의 경신출척(庚申黜陟)을 비롯해서 ,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_그래서 숙종은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고자 붕당 연립 형태를 취하지 않고 붕당 교체 형태를 취해 이때를 정쟁이 가장 심했고, 그에 따른 살육이 많았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 인민들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표상이 이야기 속에 그려지고 있지만, “숙종은 어질었고”, “성군 숙종대왕께서 절대로 마음으로는 사람 안 죽였다”고 하면서 숙종의 정치적 행위를 두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이제 끝으로 숙종의 미행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야기 두 개를 소개할게요.

 

㉫ 숙종대왕이(1) 한 이십살 먹어가, 달은 환하고, 이기양양할 때에 마 힘을 감당을 몬 해, 마 문을 열고 나갔다.(손영호(경북 경주 황오동) <숙종대왕이 순행하다가 만난 사람들> ≪한국구비문학대계 7집 3책≫, 711∼20쪽)

㉬ 숙종이 그때 안죽 뭐 공부할 시댄데 숙종이, 숙종대왕이 공부할 시대 땐데, 심심해 달밤에 자고나 혼백을(2) 나갔단 말이래.(안두모(경북 예천 보문면) <죽을 뻔했던 숙종과 점장이> ≪한국구비문학대계 7집 17책≫, 411∼4쪽)

 

(1) 이하 녹음 (2) 산보를?

 

㉫은 숙종의 나이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마음 또한 의기양양할 때,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여 미행을 나갔다는 이야기이고, ㉬은 공부에 지친 숙종이 심심해서 잠이 들자 혼백이 몸을 떠나 미행을 나갔다는 이야기로 모두 ‘달빛이 환한 밤’이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지요. 마치 이 이야기에서는 숙종이 임금이 아니라 평범한 한 사내처럼 그려지고 있어서 오히려 인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와 닿게 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요.

 


▲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http://yoksa.aks.ac.kr/main.jsp) ‘숙종’ 검색 결과




덧글

  • 도시애들 2010/06/20 02:57 # 답글

    그래도 어미의 묘를 ...
    왕자를 낳은 희빈 정도나

    아님...능으로 만들자는 제의를
    안받아 들인것 만으로 그냥..
    좋은 군이었다고..ㅋㅋㅋ
  • 고리아이 2010/06/20 12:49 #

    영조의 검소함 땜이 아닐까요^_^))
  • 고리아이 2010/06/20 14:21 # 답글

    오늘 동이 재방 사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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