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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People과 국민Nation_김성보 Modern Corean Clio

김성보 2009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韓國史硏究≫144, 韓國史硏究會, 69∼95쪽.

 

1945년 8월의 해방 당시 한반도 주민 집단 또는 그 출신_국가를 구성할 주체_을 호칭하는 용어는 인민, 국민, 백성, 민족, 겨레, 동포, 민중, 대중 등 다양하였다.

일제하, 해방 직후에 한반도에서 인민이라는 용어는 특별히 어떤 편향의 정치색을 지닌 용어가 아니었다(대한민국임시정부 1919 <임시헌정>; 대한민국임시정부 1941 <대일선전성명서>).

중도 우파를 포함하여 범우익이 신국가 건설과 운영의 주체를 ‘국민’으로 호칭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반면, 범좌익은 ‘인민’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인 좌우대립이 본격화되기도 전인 9월에 이미 범좌익측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를, 범우익측에서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후 이러한 용어 사용의 차별적 경향성은 점차 강화된다. 다만, 좌우 어느 쪽도 이 시점에 ‘인민’과 ‘국민’ 각각의 의미와 양자의 개념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거나 설정하고 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해방 후 수립할 국가의 호칭으로 범좌익이 막연히 ‘조선’을, 범우익이 막연히 ‘(대)한’을 선호하는 경향성이 있던 것처럼, 인민과 국민 용어에 대해서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모호하지만 일정한 선호도의 차이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로서는 민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용어인 인민에 친연성이 있었다면, 국가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이 국가에 종속되는 개념인 국민을 선호했을 개연성은 크다.

국가 수립의 정당성의 원천을 인민위원회에서 찾게 된 범좌익은 국가의 주체를 그 국가에 선행하는 인민으로 설정하였다. 그에 반해 범우익은 정당성의 원천을 이미 존재하는 임정의 ‘법통성’에서 찾았으며 따라서 국가를 선험적인 전제로 하고 그 아래에서 형성되어야 할 존재로서 국민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서구에서는 국가에 선행하는 인간 보편 개념으로서의 ‘인민people’과 국가를 매개로 재규정되는 ‘국민nation’ 개념은 공존하는 것이지만, 한반도에서 좌우대립이 심화되면서 양자는 화해하기 어려운 배타적인 개념으로 점차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인민 또는 인민과 연관된 용어는 점차 남한에서 금기어가 되어갔다. 예를 들어 ≪광주민보≫라는 신문사는 ‘민보’라는 제호가 좌경 색체라고 하여 말썽을 빚어 1946년 7월에 ≪동광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어야 했다.

국가 건설과 운영의 주체는 인민 전체이지만, 특권적이며 제국주의와 연관된 민족반역자는 배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되었다(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1945 <시정방침>; ≪매일신보≫ 1945.9.19). 해방 이후 범좌익측은 인민이라는 개념을 단지 인민주권의 맥락에서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반역자를 배제하고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신국가건설 과정의 주체로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민 개념은 남한의 국민 개념과 공존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전반기에 민에 대한 일반적 호칭으로 사용되던 인민에서는 물론, ‘인민주권론’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온 근대의 보편적 인민 개념에서도 크게 벗어난 사회주의이념에 의해 재정의된 인민 개념이었다. ‘국민’ 만들기 과정 또한 반공주의적인 차별과 배제의 과정이었다. 좌우, 남북 모두 국가의 구성원을 정의하는 ‘인민’과 ‘국민’의 개념에서 이질적인 요소를 정치적으로 제외하는 ‘배제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 남한에서 인민의 개념이 완전히 배척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민주권론’의 영향으로 국가권력의 원천을 ‘국민’이 아닌 ‘인민’으로 보는 견해가 처음에는 우세하였다. 1948년 5월에 제출한 헌법초안에는 국가에 선행하는 권력의 원천을 ‘인민’으로 파악하되 그 국가에 의해 규정되는 ‘국민’은 법률에 의해 그 요건을 정하는 논리적 수순을 밟았다.

 

최근에 공산당측에서 인민이란 문구를 잘 쓴다고 해서 일부러 인민이란 정당히 써야 될 문구를 쓰기를 기피하는 것은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이 헌법초안의 불비와 보수성은 이러한 불필요한 완고하고 그 고루한 생각에서 빚어 나오기 때문이니 소위 입법자의 태도로는 용납할 수 없는 편견이다(조봉암 1948 ≪제헌의회속기록≫).

 

국민이라고 하면 국가의 구성문제로서 국가와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면에서 보는 호칭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2장(인민의 권리의무)에서는 국가라는 개체가 각개인에게 대하여 권리의무를 보장한다는 말하자면 국가와 개인의 면에서 입각해서 규정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제2장의 국민은 인민이라고 수정하면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중화민국헌법에도 다른 점에는 전부 국민이라고 했지만, 제2장 각조에 있어서는 전부 인민이라고 하였습니다(진헌식 1948 윗 책).

 

‘국민’이라는 것을 ‘인민’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절대로 반대합니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운운만 하드라도 나는 지긋지긋하게 들립니다. 나는 ‘인민’이라고 쓰는 데에는 절대 반대합니다(윤치영 1949 윗 책).

 

결국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좌익_북한에서 인민 용어를 쓰는데 대한 반감이 헌법에서 ‘인민’ 용어를 배격하고 ‘국민’ 용어 일색으로 만들게 한 요인이었다. 유진오는 훗날 헌법 제정과정에서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인민’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점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물론 그것은 단지 ‘단어 하나’를 빼앗긴 데 그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인민이란 용어가 금기시된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실제로도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민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고 오직 국가에 일체감이 부여되는 ‘국민’으로서만 살아갈 것을 강요받은 당시 현실 그 자체였다.

남한의 헌법에서 국가권력의 원천과 국가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국민’을 사용하였다면 북한에서는 이를 어떻게 규정하였을까? 북한의 헌법을 보면 권력의 원천을 언급할 때는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가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그와 별도로 ‘공민(公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인민은 주권의 원천이며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서 이해되는 추상적이며 정치적, 선언적인 개념이라면, 공민은 그와 달리 그 권리와 의무가 헌법과 법률로 규정되는 법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인민이라는 개념은 국가에 규정되기 이전의 보편적 인간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국가에 규정되어 구체적으로 법의 적용을 받을 개개인에게는 다른 개념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혁명의 주체인 민(인민)이 혁명 이후 세워진 국가 아래에서 현실적으로 법의 제한을 받는 통치의 대상(공민)이 되어야 하는 이중성의 반영이기도 하였다. 또한 남북의 ‘조선인민’ 및 ‘조선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경우와 실제로 북한 법의 적용을 받는 북한 주민 사이의 구별을 위해서도 ‘공민’ 개념은 필요하였다. 그런데,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시기에 ‘공민’의 기준은 소속 ‘민족’에 있었다. 곧, 혈통중심의 관점에서 공민을 가름하였다. 1948년 헌법에서는 이러한 혈통중심의 표현이 사라진다.

주권의 원천이 인민, 국민, 및 국가 중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기간 세계적으로 논의되어온 것이지만, 한반도에서 이 문제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논의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각각 남과 북에서 ‘국민’과 ‘인민’에 대한 그 원천이 있는 것으로 분열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런 점에서 국가에 앞선 본연의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전제로 하면서, 국가권력의 원천이자 실질적 주체가 될 민의 개념화와 사회적 실천을 위한 논의는 한반도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 문제를 더 깊이 고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아시아 헌법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인민과 공민의 복합적 규정, 소수민족을 포용하는 다민족적 연대의식 등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사회주의권의 헌법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인민의 개념을 배제하고 오직 국민의 개념만을 설정하며 혈통중심의 편향을 보여주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자본주의권의 헌법에 대한 비교 연구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덧글

  • 초록불 2010/06/14 08:45 # 답글

    80년대에는 국민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친 논문에서 "민인民人"이라고 쓴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기억이 있습니다. 몇몇 논문에서 "인민"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 8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네요. 저도 전 근대의 民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할 때 "백성"이라는 말밖에 쓸 수 없는 것이 답답했었지요.
  • 고리아이 2010/06/14 16:47 #

    <민중民衆>이라는 말조차 쓰기 힘들던 80년대였지요
    저도 그래서 제 석사논문에 <인민>을 비롯해서 <민중> <백성>을
    막 섞어 쓴 기억이 나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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