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이데올로기_크리스티안 치머Christian Zimmer Modern Corean Clio

 

이데올로기와 대결하는 것은 유령과 대결하는 것과 같다. 이데올로기는 육체도 없고, 얼굴도 없다. 이데올로기는 기원도 없고, 토대도 없다.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투쟁에서는 명확한 투쟁의 대상을 그려볼 수 없다. 이데올로기는 유동적, 산발적, 영구적 다형성(polymorphism)의 형태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은근하게 스며드는 방식으로만 작용한다. 이데올로기에는 이렇다 할 언어가 없으며, 특히 폭력의 언어가 없다. 이데올로기는 공격성이 전혀 없고, 무엇으로든 변형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무한히 바꿀 수 있고, 이로 인해 순진함과 중립성이라는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현실 자체 속에 섞여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의 최고 계략은 일종의 보호구역(secteur)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이곳을 오락(divertissement)이라고 부르며 현실과 단절된 곳으로 정했다. 나아가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차원, 곧 일상의 차원과 일탈의 차원_꿈, 상상계(the imaginary)_에서 동시에 작용한다. 따라서 오락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창작품이다. 오락은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소회다. 즐긴다는 것은 스스로를 무장해제한다는 것이다(Christian Zimmer, Cinéma et politique(Paris: Seghers, 1974), p.138.: 잭 자이프스 지음ㆍ김정아 옮김 2008 ≪동화의 정체 : 문명화의 도구인가, 전복의 상상인가≫, 문학동네, 71쪽에서).

 

이데올로기가 동화의 독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심리적 메커니즘에 주목해야만 한다면서,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을 밝히려면 현실의 사회적 구도에 상응하는 동화의 패러다임 패턴을 추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잭 자이프스는 치머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정리를 위와 같이 소개한다.

그러면서 잭 자이프스는 동화 문학이 처음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할 무렵에 동화 문학은 아이들의 내면적 본성을 주조하는 수단으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기 위해 쓰였다고 한다. 잭 자이프스는 이를 ‘재미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재미의 이데올로기가 언제나 그렇듯 동화 또한 무해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동화 문학은 서구의 문명화 과정(The Civilizing Process, Nobert Elias)에 관한 핵심적 사회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었으며, 그런 경우에 동화 문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관심과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동기가 좀 더 의미 있는 별도의 시기로 여겨짐에 따라, 교육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들은 ‘모범적’ 동화가 ‘무해함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사했다. 다시 말해 교육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들은 동화가 고전적 패턴을 따르고 가정과 학교에서 지배적 사회 규범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창작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언제나 신중한 조사와 검열을 동원했다. 고전 동화들과 보수적인 문화 수호자들이 모종의 일차원적인 문학적 플롯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명화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동화 문학의 복합적 패턴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동화 문학을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만, 사실 동화 문학은 우리에게 해롭고도 모순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우리는 동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해롭고도 모순적인 영향을 미쳤나를 추적해야 한다(잭 자이프스 지음ㆍ김정아 옮김 2008, 윗 책, 71∼72쪽).

 

치머가 친절하게 정리한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인용한 잭 자이프스의 핵심은 동화 문학을 바라보는 이의 자리매김이라 하겠다. 곧, 오락적이고도 무해한 이데올로기로 꾸며진 동화 문학의 또 다른_아니 전혀 다른!_모습을 찾아가려는 이에게 앞잡이가 되고자 한 노림수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이 글을 소개하고자 함은 잭 자이프스가 찾아가려는 ‘동화 문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이고도 역사적인 기록_요즘 뜨는 동영상을 포함해서_ 또한 치머의 안내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틈이 있다면_왜 이 글을 여기에 올렸냐는 물음에 변명할 틈이 있다면, 최근 천안함_삼가 두 손 모아 멀리서나마 명복을 빌며_사고 처리와 관련하여 미리내 별빛 마냥 쏟아지는 무수한 기록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치머의 안내는 아주 아름답고도 멋진 앞잡이가 되리라는 바람에서 비롯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많은 이들이 보았으리라 여겨지는 ‘갤럭시’님의 <천안함 사고전 최후 사진(사고해역으로가는사진) 및 음모론 업글>이라는 글 속에서도 충분히 나타나고 있고, 갤럭시님이 손에 베일정도로 예리한 시선으로 끌어다 쓴 베리타스님의 <‘친환경 녹색 어뢰’ 등장>이라는 제목의 글은 그야말로 치머의 안내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다. 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상할 틈이 있다면, 앎에 다다름[致知]에는 일을 온새미로 오게 함[格物]이 누리고름[平天下]의 바탕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모두 같은 것[格, 來也。 物, 猶事也。 其知於善深, 則來善物, 其知於惡深, 則來惡物, 言事緣人所好來也。 ; ≪附釋音禮記注疏≫卷第60 <大學>第42[鄭玄注ㆍ孔穎達疏ㆍ阮元校勘]]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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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sortKey=depth&bbsId=D003&searchValue=&searchKey=&articleId=3506700&pageIndex=1

 

베리타스님의 글 만나러 바로가기 주소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472196

 

▼ 다음커뮤니케이션 아고라 자유토론방에 실린 베리타스님의 글_다음에서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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