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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끝나지 않기를_이의강 Corean Thought Clio

며칠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알맹이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지구 온실가스 감축 등의 문제를 놓고 약 2만 명의 세계 각국 대표들이 참가해서 열흘이 넘도록 진행한 회의였지만,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정의 체결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절박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인류의 생존 문제를 내년 말 열리는 16차 총회로 1년을 유예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또 되풀이하고 말았다. 회의에 참석한 선진국과 개도국 대표들이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각자의 입장을 한 걸음씩 양보하여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보여주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편에는 다음과 같은 우언이 설정되어 있다. 위(衛)나라로 들어가서, 폭정을 일삼던 임금을 바로잡아 위나라 백성들을 도탄에서 건지겠다는 안회(顔回)에게 공자(孔子)가 자상하게 가르침을 베푸는 내용이다.

  “길을 걷지 않는 것은 또한 쉽고, 길을 걷되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이 곧 어렵다. 인욕(人慾)에 부림을 당하면 거짓을 저지르기가 쉽지만, 천리(天理)를 따르면 거짓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너는 날개를 달고 날았다는 말은 들었어도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지식으로 사물 이치를 안다는 말은 들었어도 무지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저 문 닫힌 집을 보거라. 방을 비워 놓아야 햇살이 잘 비친다. 길상(吉祥)은 고요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길상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마음이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몸은 여기 앉아 있지만 생각은 멀리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좌치(坐馳)라고 한다.[絶迹易, 无行地難. 爲人使易以僞, 爲天使難以僞.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无翼飛者也;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无知知者也.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이번 회의를 이어 내년 말에 다시 멕시코시티에서 16차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여기에 참석할 각국의 대표들에게 인류의 일원으로서 간절히 당부한다. “선진국들이 산업화하여 이렇게 지구 온도를 높여 놓았다. 그동안의 모든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한다. 우리도 너희만큼 발전해야겠다.” “개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자제하라. 너희마저 우리처럼 발전하면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 각국 대표의 입장에서 서로 할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부디 명심해주기 바란다. 산업화라는 국가 발전의 길을 걸으면서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는 오염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또한 산업화라는 인욕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천리가 질서를 잃게 되어 인류의 파멸은 모면할 길이 영영 없게 된다는 것을.
  선진국 대표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문명의 혜택인 ‘날개’를 이제는 벗어버리고 날개 없이 날아보려는 새로운 생존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강구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개도국 대표들은 선진국들이 걸었던 파멸의 길을 굳이 뒤쫓아 가려 하지 말고 자연과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내는 참된 지혜를 발휘해주기 바란다.
  방안에 살림살이들이 가득 차 있으면 그 방은 빛이 차단되어 환하지 못하다. 세간을 덜어내고 방을 비워놓아야 햇살이 잘 비쳐 환해진다고 한다. 각국의 대표들은, 선진국이니 개도국이니 하는 각국의 입장만 고수하지 말고 걸림이 없는 환한 마음으로 회의를 진행해주기 바란다. 인류의 길상(吉祥)은 그대들이 가슴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으로 모색할 때 발견될 수 있다. 몸은 똑같이 회의장에 앉아 인류의 생존을 염려한다면서 속마음은 모두가 본국의 이해만을 돌아보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장자(莊子)가 말하는 좌치(坐馳)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선시대에 최한기(崔漢綺 1803~1879)라는 학자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모두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그러니 자기와 천리가 합하지 않는 점에 대해, 어찌 천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바랄 수 있겠는가? 본디 나로부터 변통해 천리에 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蓋古今功夫, 莫不以順天理爲主, 則其於不合處, 豈可望天理之從我? 固宜自我變通以合天理耳.]”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여, 최근 들어 갈수록 자연의 질서가 우리 인류와 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그 자리에 어렵게들 모이지 않았는가. 자연에게 우리 인류를 따르라고 더 이상 바랄 수 없다는 것을 현명한 그대들은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모두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말고 서로가 가슴을 비우고 머리를 맞대어, 우리 인류 스스로가 변화하여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방도를 모색해주기 바란다. 제발 크게 비운 마음이 크게 공평한 마음임을 깨달아,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자자손손 길상을 누릴 수 있도록 현명한 협약안을 꼭 도출해주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

 

글쓴이 / 이의강

*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중국 북경사범대학 문학박사

* 주요 저/역서

  두시언해 연구
  두공부초당시화 교감역주
  백거이 한적시선(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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