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잼아이 가벼운 발걸음

대학 동아리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
유럽 스타일 어린이 용품 온라인 판매점이어영 

놀이용품을 비롯하여 문구, 패션소품, 신발, 생활용품, 인테리어용품 등

다양한 물품이 있지영

무엇보다도 유럽의 엄격한 환경 기준에 의해 생산된 물품이라는 점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안심할 수 있지영
관심있으신 님들의 많은 애용과 격려를 바랄게영^_^))

 

잼아이 바로가기


http://www.jemai.co.kr/src/main/indexpage.php  

공유하기 버튼

 

우리나라 풍속을 살피다(여섯)/성해응 Corean Clio

令狐澄新羅國記曰。擇貴人子弟之美者。傅粉粧餙之。名曰花郞。

영호징의 ≪신라국기≫에 “귀인 자제 가운데 아름다운 이를 뽑아 화장을 하고 꾸지를 하는데, 화랑이라 한다.” 하였다.

今俗男巫之稱。

오늘날 풍속의 사내 무당을 가리킨다.

 

唐書高麗傳曰。嫁娶不用幣。有受者耻之。

≪(신)당서 고려전≫에 “혼인할 때 폐백을 쓰지 않는데, 이를 받으면 부끄럽게 여겼다.” 하였다.

今俗士夫家雖納幣。而玄纁兩端外有加者。稱爲助婚。受者耻之。中國則不然。

오늘날 풍속에 사대부 집에서 비록 폐백을 드리지만, 현훈과 양단 이외에 더하는 이는 ‘조혼’이라 하여 이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데, 중국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三國志韓傳曰。辰韓土地肥美。宜移種五糓及稻。

≪삼국지≫ 한전에 “진한의 토지는 비옥하여 마땅히 오곡과 벼를 돌려짓기 한다.” 하였다.

今俗亦移秧。國典雖有禁令。而自古已如此。葢其土宜也。

오늘날 풍속 또한 모내기를 한다. 국가 법률에서는 비록 금령이 있지만, 옛날부터 이미 이와 같이 하였다. 대개 토지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後漢書濊傳曰。養蚕作綿布。三國史亦然。

≪후한서≫ 예전에 “누에를 길러 면포를 만든다.” 하였고 ≪삼국사≫에도 또한 같은 내용이 있다.

綿布乃是今之綿紬也。今俗所謂綿布。卽艸綿布。俗稱文瑛者也。

면포는 곧 오늘날 면주다. 오늘날 풍속에 면포라고 부르는 것은 곧 초면포로 문영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後漢書挹婁傳曰。作廁於中。圜之以居。

≪후한서≫ 읍루전에 “변소를 한 가운데 짓고, 그 주위에 방을 둔다.” 하였다.

今北俗有稱高無舍者。作廁於屋內。而房堗厨竈。同在其中。

오늘날 뒤녘 풍속에 고귀하지만 집이 없는 이는 집 안에 변소를 짓고, 방과 굴뚝과 부엌을 짓고 그 안에 산다.

 

後漢書高句麗傳曰。大加著冠。如績而無後。小加著折風。形如弁。

≪후한서≫ 고구려전에 “대가는 드러나는 관을 쓰는데, 관은 실로 엮었지만 뒤쪽이 없다. 소가는 드러나는 절풍을 쓰는데, 고깔과 생김새가 같다.” 하였다.

大加貴官。小加卑官。如幘而無後。如今俗書吏所著蠅頭之類。折風卽今之笠子。而古制笠圍至小。幾如無故曰如弁。

대가는 귀관이고, 소가는 낮은 관리다. 두건과 같지만 뒤쪽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풍속에 서리가 드러나는 승두와 같은 것이다. 절풍은 오늘날 초립이다. 옛 제도에 초립의 둘레는 아주 작고 거의 유래를 알 수가 업기에 고깔과 같다고 한 것이다.

 

文獻通考。濊貊國俗多忌諱。疾病死亡。卽棄舊宅。

≪문헌통고≫에 “예맥국 풍속에는 꺼리는 바가 많아 질병으로 죽으면, 살던 옛 집을 버린다.” 하였다.

今都下俗往往如此。人家有喪變。謂之㐫家。輒賤沽。

오늘날 서울 성 아래 풍속에서 왕왕 이와 같다. 인가에서 상사가 나면 흉가라고 하여 문득 값싸게 팔아버린다.

 

文獻通考。堂上設席。升必脫履。性柔仁惡殺。信釋敎信鬼。拘陰陽。病不服藥。惟呪咀厭勝。至親有病。不相視殮。

≪문헌통고≫에 “집 위에 자리를 베풀었는데, 그에 오를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는다. 성격이 부드럽고 어질며 살인을 싫어한다. 불교를 믿고 귀신을 믿으며, 음양에 구애 받아 병이 나면 약을 먹지 않고 단지 주문을 외어 병이 낫기를 기다린다. 아주 가까운 인척이 병이 나면 주검조차 보지 않는다.” 하였다.

今俗如此。但病不服藥。以呪咀爲事。且至親不相視殮者。閭巷賤人爲之也。

오늘날 풍속 또한 이와 같다. 다만 병이 나면 약을 먹지 않고 주문을 외운다는 일과 또 가까우 인척이 병이 나면 주검조차 보지 않는 일은 근교의 천인들만 하는 일이다.

 

唐書高麗傳曰。每年初。聚戱於浿水之上。以水石相濺擲馳逐再三而止。

≪당서≫ 고려전에 “매해 설 즈음에 패수 위에 모여 노는데, 물가의 돌을 서로 던지고 좇기도 하여 두세 번 하면 그친다.” 하였다.

今俗上元石戰。亦此類。

오늘날 정월 보름에 돌싸움을 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종류다.

 

元制以腳力健捷者。每歲一試直抵御前。俯伏號萬歲。號曰貴由赤。葢謂快行也。

원 제도에 다리의 힘이 강한 자들을 매해 한 번씩 임금 앞에서 시험을 보고 (뽑힌 이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들을 귀유적이라고 하였는데, 대개 빨리 걷는 이들을 일컫는다.

我朝后妃動駕中貴人著紫巾綠袍。持烏棒。兩兩前導。名曰貴由赤。

우리나라 후비가 쓰는 가마 가운데 귀한 이들은 자줏빛 두건과 풀빛 겉옷을 입으며 검은 몽둥이를 가지고 둘 씩 짝지어 길을 인도하는데, 이름이 귀유적이다.

 

<少華風俗攷> ≪硏經齋全集外集≫53 故事類(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

  

공유하기 버튼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노무현대통령추모

김대중대통령추모

언론악법 원천무효